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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킴 Jan 19. 2021

07. 두려움에서 용기로

부모가 된다는 것

임신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영역이었다. 비키니를 입고 태닝을 하는 것도, 언제든지 훌쩍 떠나곤 했던 해외여행도, 주말마다 즐겼던 파티도, 아이가 생기면 당연히 못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는 내 삶의 짐이 될 것이고 이 모든 자유를 앗아갈 존재라고 믿었다. 


아이를 원했던 남편에게 임신을 무기로 남미 여행을 설득했다. 임신하게 되면 그렇게 먼 곳으로 런 장기간의 여행은 절대 못 가게 될 테니 우선 내가 하고 싶은 거라도 실컷 하고 나면 임신이 되든 안되든 후회가 적을 거니까. 그렇게 떠난 남미 여행에서 만난 두 가족은 내 안의 두려움을 서서히 용기로 바꿔놓았다. 


페루에서 만난 데이비드와 에이미네 가족은 두 아들과 일 년 동안 세계일주 중이었다. 우리 부부는 2층 침대만 4개가 있는 작은 방에서 그들과 2주 동안 동거 동락하며 지냈다. 에이든과 카이 형제는 엄마 아빠를 도와 공사현장에서 봉사하고, 자신이 먹고 난 그릇은 스스로 닦고, 하루에 1~2시간 정도는 부모님이 내주시는 홈스쿨링 과제로 공부한 후, 여가시간에는 현지의 아이들과 나가서 신나게 놀았다. 


그들은 일 년간의 여행 후 정착할 국가와 학교를 고민하고 있었다. 


데이비드: A 국가와 B국가 두 학교에서 교사를 채용하고 있네. 자기는 어느 나라에 살고 싶어?

에이미: A 국가는 이래서 좋고 B국가는 저래서 좋지. 나는 따뜻한 나라가 더 좋긴 하지만. 에이든과 카이는 어때? A 국가에서 갈 학교는 규모가 크고, B국가에서 갈 학교는 규모가 좀 작은데.

에이든: 난 일단 큰 축구장이 있는 학교가 좋아요! 각 학교의 홈페이지에서 부대시설을 조사해볼게요. 카이, 네가 B학교 찾아봐.

카이: 알았어, 형. 


엄마와 아빠가 서로 존중하고, 부모가 아이들을 먼저 존중했다. 그러니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부모를 존경했다. 함께 식사를 할 때마다 어른들과의 대화 속에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에이든과 카이를 보며 느꼈다. 아이들이 짐이 될지, 가족 구성원이 될지는 부모가 어떻게 양육하냐에 달려있었다. 


칠레에서 4주간 함께 한 리카르도와 히메나 가족도 두 아들이 있었다. 아윤과 블라스 형제는 벌써 하우스 파티를 즐길 줄 아는 흥 많은 아이들이었다. 한국의 파티문화는 주로 먹고 죽자는 음주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에 아이들과 함께 하는 건 상상할 수가 없는데 비해 남미의 파티는 어른도 아이들도 함께 어울리기 위한 시공간이었다. 그들과 주말마다 함께했던 하우스 파티를 통틀어 단 한 명의 고주망태를 보지 못했고 단 한 건의 드라마도 없었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즐겁게 놀다가 잠이 오면 어디선가에서 스스로 잠들었고, 부모들은 책임감 있게, 하지만 자유롭게 즐길 때까지 즐기다 잠든 아이들을 챙겨서 집으로 돌아갔다. 


히메나의 농장에 도착 한 날, 그녀가 우리에게 물었다.


히메나: (천진한 표정과 발랄한 목소리로) Do you smoke Marijuana? 너네 대마초 펴?

내 남편: .....???!!!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 (...헉? 이 여자는 그걸 무슨 의도로 묻는거지...) Uh... I don't. 음... 저는 안펴요. (남편을 쳐다본다)

히메나: Oh, just letting you guys know that if you like it, there are some growing in the pots outside. 아, 그냥 얄려주는거야, 너네 대마초 좋아하면 밖에 있는 화분에 있으니까 피라고

내 남편: (커진 두 눈으로 신이 나서) Where is it? 어디에 있어요?!


히메나는 심지어 대마초까지 소량 재배하고 있었는데, 하우스 파티를 열 때 마당에서 바비큐를 구우면서 사람들과 함께 피우기도 했다. 한국에서 명절 때 아이들이 뛰어노는 집에서 어른들끼리 고스톱을 치며 노는 것이 불법 도박판이 아니듯, 그들에게는 그 또한 불법 마약판이 아니었다. 


칠레가 와인 최대 수출국이니 어딜 가나 와인을 마실 거라 기대했는데, 와인은 식사 때나 곁들이는 것이지 파티 때는 수입주류를 즐겼다. 보드카, 럼 등으로 칵테일을 만들어 마셔줘야 파티인 것이었다. 문화충격이었다. '아 이런 흔한 것들은 한국에서도 캐나다에서도 마실 수 있으니 여기선 주말에도 와인만 마시겠어!'라고 선언하고 나는 와인만 마셨지만. 


내가 봐왔던 부모의 삶은 아이들의 취침시간에 맞춰 집으로 들어가서 재우느라 파티 같은 건 즐기지 못하고 지루하고 억압된 생활을 인내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야만 좋은 부모인 것은 아니다. 리카르도와 히메나는 자녀들 때문에 자신의 사회생활이나 자유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니 아이들을 통해 자신의 삶을 대리 만족하기 위해 공부하라며 압박하지도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더욱 자유로운 교육을 위해 지금 리카르도와 히메나 가족은 농장을 맡겨놓고 뉴질랜드에 이민 가서 즐겁게 살고 있다. 거기서도 주말마다 이웃들과 파티하며 재미있게 살고 있겠지. 데이비드와 에이미는 일 년간의 세계 여행 후 아프리카 대륙의 한 나라에 있는 국제학교에 취직해서 두 아들과 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을 여행하며 살고 있다. 


2017년 1월, 우리 부부는 4개월간의 여행을 마무리하고 부산으로 돌아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2021년 1월, 어느덧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신기하게도 우리 또한 두 아들의 부모가 되었다. 


남미를 여행하며 잠깐 동안 함께 지냈던 두 가족들이 우리 삶을 바꿔놓았다. 언젠가는 우리 세 가족이 지구 어딘가에서 만나 하우스 파티를 즐길 수 있을 것만 같다. 에이든, 카이, 아윤, 블라스, 로건과 링컨 6명의 아이들이 모이면 얼마나 시끌벅적 재미있을까? 


데이비드 &에이미네 가족과 (좌)쿠스코 유일의 한국식당 사랑채에서 (우)피칸테 한국 라면 파티
리카르도 &히메나네 가족 (좌)씨다른 형제 아윤과 블라스 (우)대낮부터 히메나 아버지와 와인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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