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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킴 Jan 21. 2021

08. 스무 살에 처음 타 본 비행기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2007년, 나는 대학교에 입학했고 학자금 대출로 학비를 대며 재학 중이었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도 형편이 어려워서 해외여행은커녕 비행기 한 번 타보지 못했었다. 이런저런 알바를 하며 용돈을 벌어 썼지만 비행기를 한 번 타볼 만한 돈은 모이지 않았다. 가지지 못하는 것이 더 간절한 법. 나는 어떻게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보고 싶었다. 


채용 웹사이트에서 돈이 좀 될 만한 알바를 찾다가 괜찮은 자리를 발견했다. 대형 여행사의 부산본점에서 주중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6개월 계약으로 사무보조를 보는 것이었다. 다른 알바에 비하면 월급도 많았다. 하지만 조건이 있었다. 4학년만 지원할 수 있었다. 나는 겨우 1학년 신입생이었다. 


'밑져야 본전이지 뭐, 일단 지원해보자.' 


난생처음 이력서라는 걸 써서 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력서에 들어간 내용이라곤 어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어느 대학교 1학년이라는 것 밖에 없었다. 


그 이력서를 보고 나에게 전화를 해보기로 한 사람이 있었나 보다. 아마 심심했거나 인심이 좋았거나 둘 중 하나였겠지. 어느 날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나름 정장을 차려입고 화장도 하고 갔다. 두근두근. 


지점장: 지금 1학년이지요? 4학년만 지원할 수 있다고 했는데, 왜 지원했어요?

나: 저는 해외여행을 꼭 한번 가보고 싶어요. 여행사에서 일하면 그 꿈에 더 가까워질 것 같아요. 저, 정말 잘할 수 있어요!

지점장: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해요~


인심 좋은 지점장님은 그렇게 흔쾌히 날 채용해주었다. 근무 첫날, 나는 전임자에게 항공팀 업무를 인수인계받았다. 항공 예약 프로그램은 모두 영어로 코딩되어있었는데 마치 암호 시스템 같았고 나의 영어타자는 두 검지 손가락으로 더듬더듬하는 수준이었다. 전임자는 같은 대학교 4학년 선배였다. 그녀는 나를 데리고 그 큰 사무실의 60여 명이나 되는 직원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했다. 60명의 이름과 내겐 너무 어려워 보이는 업무. 머리가 지끈거렸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아니야, 걱정하지 말자. 기회를 얻은 게 어디야? 6개월 동안 열심히 하면 되지. 그래서 이번 학기 마치고 겨울방학 때는 꼭 해외여행 가는 거야!'


나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그렇게 사무보조 일을 하고, 저녁 6시부터 밤 10시까지는 야간수업을 들으며 1학년 2학기를 다녔다. 심지어 주말에는 동네 호프집에서 서빙도 했다.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면 신기하게도 이런 문자메시지가 왔다. 


"00 투어에서 급여가 입금되었습니다" 


힘이 불끈 솟았다.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공부를 할 시간은 어디 있었는지 의아하지만 학점도 4.11이 나왔다. 대학생활 유일무이하게 학점 우수 장학금을 받은 때가 바로 1학년 2학기였다. 


6개월의 계약이 끝나 갈 무렵, 나의 영어타자는 한글타자만큼 빨라졌고 원하는 만큼의 돈도 모았다. 스무 살의 끝자락에 인생 첫 비행기표를 샀고, 방학 중 2주 동안 호주 시드니로 떠났다. 


호주의 하늘, 산, 바다 모두가 동화 속 그림 같았다. 오페라 하우스에서의 칸타타 공연은 여태 들어보지 못한 웅장한 사운드를 경험하게 해 주었다. 배도 타고, 기차도 타고, 5km 마라톤도 뛰었다. 울릉공 시골마을을 뛰면서 로컬 주민들을 보았다. 마당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노부부는 손을 흔들어주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십 대 아이들은 눈을 찢은 채 깔깔거리며 아시아인 비하를 하기도 했다. 듣기만 했던 인종차별을 처음 겪은 순간이었다. 기분이 상해야 하는데 모든 것이 새로웠기에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마음만 먹으면 이 넓은 세상을 다 가 볼 수 있겠구나'


호주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곧장 다음 출국을 기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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