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샤인킴 Dec 03. 2020

09. 가난한 미국 유학생, 트레이너가 되다

내 인생 터닝 포인트

이번엔 아예 휴학을 하고 1년을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유학은 너무 돈이 많이 드니 해외봉사라도 나갈까 알아보았다. 인기 좋은 국가에 지원하면 떨어질까 봐 비교적 한국 학생들에게 인지도가 낮은 국가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부키나파소라는 나라에 지원했다. 이 사실을 안 엄마는 슬 걱정하기 시작했다. 


'지가 돈 벌어서 2주 동안 호주 여행도 갔다 왔는데, 1년 해외봉사를 못 갈까? 이러다가 정말 아프리카 가는 거 아니야?' 


때마침 귀인이 나타났다. 엄마의 사촌오빠였다. 그는 미국에서 한인 목회를 하고 있는 목사였는데 볼 일이 있어 잠시 한국을 방문했고 할머니를 뵙기 위해 부산을 찾았다고 했다. 그 시각 우연하게도 엄마 역시 할머니 댁에 방문했고, 연락이 끊겨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몰랐던 서로를 수십 년 만에 그렇게 만난 것이었다. 


목사 친척: 명옥아, 그간 어떻게 살았니?

엄마: 휴, 힘들게 살았지. 술 귀신이던 애 아빠는 4년 전에 간암으로 죽었고, 혼자서 딸 둘 키우고 있다.

목사 친척: 딸들은 어때?

엄마: 작은애는 아직 고등학교 다니고, 큰애가 문제다. 주제 파악도 못하고 그렇~게 기어나가고 싶어 하네. 뭔 해외봉사로 1년을 나갈 거라고 준비하고 있는데, 얘는 진짜 갈 것 같다. 걱정돼 죽겠다. 

목사 친척: 음... 걔 좀 만나 볼 수 있을까?


엄마: (전화로) 현지야~ 니 지금 어데고? 할머니 댁에 좀 와볼래?


학교 다니며 아르바이트하고 틈틈이 연애까지 하느라 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날은 나도 마침 할머니 댁 근처에 있었고 별 일도 없었나 보다. 엄마의 전화를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 댁에 도착하니 웬 낯선 중년의 남자가 날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목사 친척: 현지야, 네가 그렇~게 외국 나가고 싶어 한다며? 근데 왜 하필 해외봉사야?

나: 1년 정도 나가 살아보려면 저한텐 그 방법밖에 없으니까요.

목사 친척: 그러지 말고... 미국에서 공부할래? 

나: (희둥그레) 네?! 


나는 그를 삼촌이라 부르며 따랐다. 삼촌이 시키는 대로 비자 서류를 준비하고 운전면허를 따는 등 일사천리로 미국 갈 준비를 해나갔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내가 해외봉사를 가려고 했던 기관은 소위 말하는 이단종교단체였다. 해외봉사라는 명목으로 대학생들을 모아서는 세뇌를 시켜 충성 교인으로 만드는 조직이었다. 삼촌은 그저 나를 그 구렁텅이에서 빼주기 위해 미국이라는 미끼를 던졌고 나는 다행히도 그 제안을 덥석 물었던 것이었다. 그 또한 가난한 이민자였고 나를 먹이고 재워 줄 형편은 못되었지만 인맥과 수완을 통해 학생비자를 받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대학교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그렇게 우연한 기회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휴학을 하고 가려고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 학기 등록금을 미리 내고 등록 휴학을 해야 했다. 그렇게는 학자금 대출이 진행되지 않아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자동으로 퇴학처리가 됐다. 돈 때문에 학생을 내쫓다니. 스물한 살에 돈의 치사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메릴랜드주 엘리코트 시티에서의 미국 생활은 그렇게 비장하게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영어도 잘 못했으니 한인 슈퍼마켓에서 캐셔로 일해서 월세와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몇 달 뒤에는 몰에서 헤어 액세서리를 파는 매대에 세일즈 잡을 구해 그나마 영어를 쓰면서 일을 할 수 있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커뮤니티 대학 부설 어학당에서 영어 공부를 하고, 오후 4시부터 밤 9시까지는 몰에서 알바를 하며 바쁘게 지냈다. 


밥은 밥 대로 먹고 온갖 신기한 미국 정크푸드도 호기심으로 사 먹다 보니 미국에 온 지 몇 달 만에 부쩍 살이 쪘다. 그래서 알바를 마치고 밤 10시부터는 집 근처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집에 들어갔다. 할 줄 아는 게 러닝머신 위에서 빨리 걷는 거나 사이클 머신에 앉아 페달을 밟는 것뿐이라 유산소 운동만 1시간 정도 하고 갔다. 


그러기를 세 달 정도 했을까? 그런 나를 쭉 지켜봐 온 40대 초반의 한국계 미국인 트레이너가 꾸준히 열심히 운동하는 것에 비해 별로 성과가 나지 않는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학생, 근력 운동도 좀 배워봐. 항상 밤 10시쯤 오던데, 나도 그때쯤 퇴근하니까 내가 하는 운동 같이 하면서 배우면 되겠네. 어차피 2주도 안돼서 나가떨어질 테니 선심 쓰는 셈 칠게.” 나는 그를 사부라고 부르며 따랐고 어느덧 6개월 동안이나 무료 피티를 받게 되었다. 


정말 첫 2주 동안은 매일매일 온몸을 두드려 맞은 듯한 극심한 근육통에 시달렸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가족도 친구도 없는 낯선 땅에서 무엇인가에 몰입한다는 것은 심적 위안을 주었다. 점점 근육이 붙고 살이 빠지니 재미도 있었다. 


사부의 독려로 나는 AFPA(American Fitness Professionals & Associates)이라는 협회에서 퍼스널 트레이너 자격증 공부도 시작했다. 영어로 관심분야를 공부하니 일석 이조였다. 6개월 후, 자격증을 취득했고 영어도 부쩍 늘었다. 


"샤인 너 한국 돌아가면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도 트레이닝하면 되겠네. Shine Kim Fitness를 설립하는 거지!" 사부가 신이 나서 말했다.


"에이... 이제 겨우 운동 배웠는데 설마 그런 일이요... 저는 전공이 경영학이니 졸업하고 적당한 회사에 취직하겠죠" 


2010년 1월, 미국에 간 지 1년 8개월여 만에 부산으로 돌아왔고 날 내쫓은 대학은 입학금을 한 번 더 내니 재입학시켜주었다. 그 당시 한국에서는 여성이 헬스클럽에서 근력운동을 하는 일이 드물었다. 운동하러 다니는 곳마다 이목을 끌었다. 


대학을 졸업한 2013년 8월, 운동하러 다니던 센터 관장님의 잡 오퍼로 본격적으로 트레이너로서 일하게 되었다. 센터에서 유일한 여성 트레이너였기에 수요가 많았다. 수많은 회원들을 일대일로 지도하며 데이터를 모아서 분석하고 배웠다. 그로부터 2년 후에는 더 큰 무대로 진출하기 위해 외국인이 밀집되어있는 해운대 마린시티로 가서 Shine Kim Fitness를 시작했다. 페이스북을 뒤져 그 지역에 살고 있던 국제학교 교사들과 학생, 엄마들까지 끌어모아 그룹운동을 지도했다. 사부가 심어주었던 꿈의 실현이 시작되었다. 


AFPA에서 기능성 운동전문가, 산전산후운동전문가 자격증을 차례로 취득했고, 캐나다 시댁에 방문할 때마다 Zumba Basic, Zumba Step, STRONG Nation도 하나씩 취득했다. 첫째 아이 출산 후에는 부산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소도구 필라테스 자격증을 취득해서 산전산후 운동에 접목시켰다. 클래스톡이라는 온라인 강의 플랫폼에서 출시한 샤인킴의 타바타 클래스를 통해 새로운 커리어의 판로도 열었다. 


우연한 기회에 떠난 미국 유학길에서 사부를 만나 내 인생은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늘 사부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보고 싶다. "사부 말대로 정말 샤인킴 피트니스가 탄생했어요!" 이렇게 자랑하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전화를 해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미국에서 함께 운동했던 친구들에게 그의 소식을 수소문했다. 


"샤인, 너 몰랐어?" 


한 친구가 페이스북 메신저로 구글 기사 링크 하나를 보내주었다. 사부가 2013년에 기소되어 협박, 갈취, 폭력으로 유죄 판정 후 17년형을 선고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그 기사 말고는 아무런 소식을 전해 들을 수가 없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2020년까지도. 


그러다 최근에 사부의 딸에게서 페이스북 메시지가 왔다. 


"Hey! I hope you are doing well. Dad wanted me to tell you that he sends his best and that he hopes you and your family are doing well!" 언니, 잘 지내고 있길 바라. 아빠가 나보고 언니에게 전해달라고 하길, 언니를 응원하고, 언니와 언니 가족 모두 잘 지내길 바란대


사부는 현재 텍사스에 있는 감옥에서 수감생활 중이라고 했다. 딸에게는 매일같이 전화하며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했고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는 주소도 받았다. 마침내 직접 쓴 손글씨로 감사를 전할 수 있게 되었다. 



2010년 1월 사부와 나



이전 08화 08. 스무 살에 처음 타 본 비행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