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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킴 Feb 17. 2021

23. 대체 집에서 놀면서 뭐하는데?

전업주부의 하루

사람들의 눈에는 프리랜서가 집에서 편안하게 돈 버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에게는 남모르는 고충이 많다. 하루 종일 집에 있다고 노는 것은 아닌데(전업주부가 나에겐 세상 가장 힘든 직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가사노동과 육아노동 위에 유튜브 활동, 온라인 클래스 관리, 홈트레이닝, 집필과 독서까지 하려니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다. 


24시간이 모자란 삶을 살고 있으니 첫째 로건이를 낳고 한창 24시간 육아에 찌들어있을 때가 생각난다. 산후 100일 무렵에 줌바 피트니스 수업으로 복귀하기 전에는 가사와 육아만 하는 전업주부의 삶을 살고 있었다. 만삭 때까지도 활발하게 수업을 뛰며 움직이다가 출산과 동시에 하루 종일 집에 있으니 정말 적성에 안 맞았고 우울감마저 느꼈다. 


어느 날 일찍 퇴근하고 들어 온 남편이 집안 꼴을 보더니 무심하게 툭 던진 말 “대체 집에서 놀면서 뭐하는데? 집이 왜 이렇게 엉망이야?” 억장이 무너졌다. 내 밥 세끼를 챙겨 먹으면서 밤낮으로 모유 수유하기도 힘든데 요리하고 청소하고 빨래까지 제때 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당시 나에게 소박한 소원이라면 4시간 이상 이어서 잠을 자 보는 것, 남이 해 준 세끼를 먹어보는 것, 수유 텀(3시간 정도) 보다 길게 혼자 외출해 보는 것이었다. 아기 앞에서 남편에게 소리를 지르고 울며 쌍욕을 퍼붓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생존 방법이 절실했다.  


“빨래 돌려놨으니까 끝나면 널어. 냉동실에 유축한 모유 있으니 때 되면 먹이고. 나는 좀 나갔다와야겠어.” 라며 선포하고 남편에게 아기와 빨래를 남겨둔 채 홀연히 집을 나왔다. 


금방 들어가지는 않을 작정이었기에 그 와중에도 3시간 만에 불어날 모유를 빼내기 위해 유축기와 젖병도 잊지 않았다. 딱히 갈 곳은 없었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어서 이 시각 홀로 육아를 하고 있을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의 남편은 퇴근이 늦어서 저녁 늦게까지 가 있을 수 있었다. 친구네 집에서 배달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해결하고 답답한 마음을 훌훌 털어냈다.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모유가 차오르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유축을 하면서 수다를 이어나갔다. 아기는 잘 있을지 걱정이 되었지만 휴대폰을 꺼놓고 잠시 잊어보려 애썼다. ‘아빠가 데리고 있으니 자기 자식 어련히 잘 돌보고 있겠지.’


5시간 만의 짧은 가출 끝에 집에 들어갔다. 남편은 그제야 겨우 아기를 달래서 재워놓고 빨래를 널고 있었다. 내가 없는 동안 평소보다 순하게 잠을 자 주지 않은 아들에게 새삼 고마웠다. 그동안 나 없이 식겁한 남편의 얼굴은 어두웠다. 속으로 생각했다. ‘애 보면서 빨래 하나 너는 것도 5시간이 걸리지? 내가 집에서 노는 게 아닌 줄 이제 알겠니?’ 그 날 이후로 남편은 두 번 다시 그런 소릴 하지 않았다. 


3년 동안 함께 육아를 하면서 남편은 갈수록 더 잘 해내고 있다. 결혼 생활 시작할 때부터 해오던 분리수거 및 각종 쓰레기 버리기 뿐만 아니라 매일 밤 쌓인 설거지를 도맡아 한다. 하지만 그건 전체 집안일의 최대 10% 일뿐이다(이 사실을 굳이 남편에게 말하지는 않는다). 거의 매일 해야 하는 요리, 정리정돈, 청소, 빨래 등 일상적인 모든 집안일은 내가 맡아하고 있다. 로건이 등원 시간부터 하원 시간까지 6시간 동안 단 1분도 편안히 앉아 쉴 틈이 없다. 그걸 잘 아는 남편은 육아와 가사에 최대한 참여하려고 노력한다. 나도 남편이 알아서 내 맘에 들게 해 주길 기대하다 실망하기 대신 구체적으로 요구한다. “나는 주방과 안방을 청소할 테니까, 거실과 작은방을 맡아줘. 로건이 하원 해 오기 전까지” 


남편이 쉬는 주말과 공휴일에는 육아를 도맡아 한다. 모처럼 쉬는 날인데 푹 쉬지 못하고 오히려 더 피곤해지니 의아한가 보다. 얼마 전 로건의 어린이집 방학과 겹치는 4일간의 여름휴가를 마무리하며 실망스러운 듯 내게 투덜거렸다. “모처럼 푹 쉴 수 있겠다 싶었는데, 너무 허무하게 흘러가버렸네.” 나는 진심 놀라서 답했다. “쉬는 날이 어디 있어? 애랑 집에 있으면 가사와 육아가 멈출 틈이 없는걸 아직 모르는 거야?” 


오히려 밖에서 수업을 하면 일 한 만큼 경제적인 보상도 있고 보람도 있는데, 집안일은 경제적 보상도 보람도 없고 안 할 때만 부각되어 보인다. 남편에게 집은 쉼의 장소인데 나에겐 일하는 곳이다. 로건을 등원시키고 집으로 바로 오면 눈에 밟히는 이것저것을 정리하고 청소한다고 2~3시간이 금방 허무하게 흘러가버린다. 그래서 등원 준비가 조금 길어지더라도 옷을 갖춰 입고 온라인 클래스 관리든 글쓰기든 독서든 해야 할 것들을 챙겨 나와서 등원시키고 바로 도서관이나 카페로 가서 일을 할 때도 있다. 그러면 점심시간 전까지 뭔가를 해낼 수 있어서 생산적이다. 나만의 근무시간인 셈이다. 그렇게 나름대로 근무 스케줄을 정해서 효율적으로 시간을 관리하지 않으면 프리랜서 워킹맘으로 살아남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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