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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킴 Feb 17. 2021

24. 가사도우미, 사치인가? 복지인가?

그런건 부자들이나 부르는 거 아니야?

남편과 결혼하기 전부터 함께 외국인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2014년에 결혼을 한 이후로는 부부 소모임에도 참석하게 되었다. 그 모임에는 남편은 영어 강사(호주 시민권자), 아내는 프리랜서 번역가(미국 시민권자), 그리고 아이가 둘이 있는 외국인 친구 부부가 있었다. 모임 중 얘기를 나누면서 그들이 주 1회 가사도우미를 이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살림살이 수준은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는데 가사도우미를 부른다고?'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기 전의 나는 그런 건 부자들이나 부르는 사치라고 생각했었다. 나의 엄마는 워킹맘이었지만 단 한 번도 가사도우미를 이용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4년 후, 첫째를 낳고 1년쯤 지났을까. 복직 후에도 육아노동과 가사노동이 줄어들지 않으니 피곤이 누적되었고 심신이 지쳐왔다. 그래서 나도 그 친구 부부처럼 가사도우미를 한번 이용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요리나 빨래 같은 일상적인 집안일은 필요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지만 화장실 청소나 베란다 청소 등 날을 잡고 시간을 빼서 해야 하는 일은 해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뭐? 청소를 왜 돈을 주고 남을 시켜? 손이 없어 발이 없어? 나도 할 수 있어" 남편은 반대했다.

"물론 우리가 할 수는 있지. 하지만 난 일하느라 애보느라 힘들어서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대청소를 도와줄 사람을 쓰면 좋겠는데..." 나는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남편은 "내가 하면 되지!"라고 했다. 말이 안 통했다.


시어머니 또한 워킹맘이었다. 아니, 슈퍼맘이셨다. 4남매를 키우며 풀타임으로 은행에서 일하셨다. 캐나다에서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급식이라는 게 따로 없어서 도시락까지 준비해야 했는데 말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도시락 4개를 싸 놓고 출근하셨다고 했다. 청소는 언제 다 하셨을까? 그러면서도 한 번도 가사도우미를 이용해 본 적이 없으니 남편의 반응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남편과 내가 생각하는 청소의 의미와 깨끗함의 기준은 너무 달랐다. 나에게 청소란 깨끗함을 유지하는 것인데 남편에게는 더러움을 더 이상 참지 못하는 경지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겨우 하는 것이었다. 남편은 일주일에 한 번 청소기를 돌리면 집안이 깨끗하다고 생각했지만, 매일매일 방바닥을 손걸레로 닦으며 아침을 맞이한 엄마를 둔 나에게는 택도 없었다. 남편은 화장실 청소를 좀처럼 하는 일이 없었는데, 변기가 물 때가 끼다 못해 거뭇거뭇한 곰팡이까지 껴서 악취가 나는 지경까지 가야만 청소의 필요성을 느꼈다. 배수구를 분해해서 닦아야 한다는 개념도 없었다. 화장실 청소 좀 하라고 닦달을 하고 싸우며 그 꼴을 보느니 차라리 내가 하고 마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결국 남편이 출근 한 동안 몰래 첫 청소 스케줄을 잡았다. 전화 한 통 없이 스마트폰 앱으로도 손쉽게 할 수 있었고 첫 청소는 할인까지 돼서 부담이 없었다. 비용은 내 용돈에서 지불했다. 약속한 시간에 가사도우미가 오셨다. 나는 필요한 청소도구를 준비해드린 후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밖으로 나왔다. 아이를 낳기 전에 조깅을 하곤 했던 강변을 따라 산책을 했다. 그러다 아이가 유모차에서 잠이 들어서 그 틈을 타 도서관에 들러 천천히 책도 빌리고, 식당에 가서 점심도 먹었다. 이런 여유를 가져 본 것이 얼마만인지!


3시간 후에 돌아와 보니 집이 반짝반짝했다. 특히 청소하기 힘든 화장실과 주방 싱크대가 깨끗해져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남편이 퇴근해서 집으로 왔다. 가사도우미를 불러서 청소한 걸 알아보는 건 아닌지 눈치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웬걸? 남편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그때서야 깨달았다. '아, 이 사람은 청소에 전~혀 관심이 없구나!' 남편은 방바닥이나 화장실 배수구 등이 더러운 지 깨끗한 지 구분하는 스위치를 일부러 꺼놓고 사는게 분명했다. 청소는 지극히 나의 만족을 위한 행위였던 것이다. 그러니 청소 때문에 남편과 싸우지 말고 조용히 내가 만족스러운 방법대로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월 1~2회 가사도우미를 이용하고 있다. 평소 일상적인 청소는 내가 하지만 도우미가 오시는 날은  대청소 개념으로 평소에 자주 하기 힘든 곳 (화장실, 주방, 베란다, 냉장고 등) 위주로 부탁한다. 월 1회 정도 청소비용은 외식 한 번 안 하면 충분히 지불할 수 있기에 남편이 굳이 반대를 한다면 내 용돈으로라도 이용하면 됐다. 카페에 가서 커피를 한 잔 하거나 패디큐어를 받는 것과 같이 이것 또한 나를 위한 일종의 복지서비스가 되었다.


가사도우미가 다녀가신 날에는 남편과 아이에게 유난히 친절한 나를 발견한다. 그래서 이제는 남편도 찬성한다. 청소에는 관심이 없지만 누군가가 청소를 해줘서 만족한 아내가 베푸는 온화함돈을 지불 할 가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이상 청소 때문에 싸우지 않게되었다. 그렇게 엄마가 조금 더 행복해지니 집안이 더 평안해졌고 우리는 싸움보다 더 가치있는 일에 에너지를 쓸 수 있게 되었다. 모화만사성(母和萬事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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