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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킴 Mar 11. 2021

평화로운 가정 출산, 집에서 만난 둘째

에필로그

어느덧 출산예정일인 2020년 10월 5일인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날 검진을 다니던 병원에 가서 보니 아무 문제는 없지만 아기가 4kg으로 추정된다고 하셨다. '에이... 설마 그렇게 크다고?' 첫째 로건이는 예정일이 이틀 지나서 3.48kg로 나왔기에 아기의 체중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을 하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아기가 너무 크면 둘째라도 난산이 될 수 있으니 담당의사가 있을 때 낳는 게 좋지 않겠냐며 오늘내일 중으로 유도분만을 하자고 했다. 나는 산모와 아기가 건강하고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아기가 준비가 됐을 때 보내는 신호를 기다리는 편이 좋다고 판단했고 조산사 선생님과 남편도 의견을 같이했기에 집으로 돌아와 편안한 마음으로 그 순간을 기다렸다. 


10월 8일, 예정일이 사흘 지난날 밤 로건을 재우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가벼운 자궁 수축이 나를 깨웠다. 단번에 느낌이 왔다. '엄마, 저 준비됐어요. 엄마도 준비하세요. 곧 만나요.' 마치 이렇게 아기가 나에게 보내는 신호 같았다. 진통 간격 체크 어플을 다운로드하여서 확인해보니 1분 정도의 수축이 5분 간격으로 규칙적으로 오고 있었다. 시각은 밤 10시였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링컨이를 곧 만나겠구나' 설레는 마음으로 조산사 선생님과 출산 영상을 찍어주실 감독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드디어 진통이 시작됐어요! 진통이 조금 더 진행되면 다시 연락드릴게요." 


아직 많이 아픈 진통은 아니라서 체력 비축을 위해 잠을 좀 자보려고 누웠지만 긴장 반 설렘 반으로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로건이는 방에서 곤히 잘 자고 있었다. 우리 가족 모두가 함께 있는 편안한 집에서 차분하게 호흡하며 오고 가는 진통의 파도를 하나씩 넘겼다. 미리 준비해두었던 출산 배경 음악을 잔잔하게 틀어놓고 나는 최대한 몸에 힘을 풀고 짐볼이나 쿠션을 이용해서 그때그때 편안한 자세를 취하며 이완했다. 남편은 파도가 올 때마다 골반을 조아 주기도 하고 허리를 마사지해주며 매 순간 함께했다. 


첫째 출산 당시 진통을 할 때에는 나의 통증에만 너무 집중했던 것 같다. 진통의 파도가 오면 '아, 배가 아파', '허리가 너무 아파'라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기에게 집중해 보았다. '아기가 나올 준비를 하고 있구나', '자궁이 수축되면서 아기가 조금씩 내려오고 있구나'. '아기가 보내는 신호에 내 호르몬이 잘 반응하고 있구나', '곧 아기를 만나겠구나' 이렇게 생각하며 파도가 올 때마다 아기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통증으로 경직되는 몸을 의식적으로 이완하고 길게 호흡했다. 


자정을 넘긴 10월 9일 2:45 am 진통의 강도는 점점 강해지고 있었고 진통과 진통 사이의 간격은 3~4분으로 짧아졌다. 조산사 선생님과 감독님께 다시 전화했다. "진통이 잘 진행되고 있어요. 이제 오시면 될 것 같아요." 전화를 끊고 5분밖에 안 지났는데 조산사 선생님이 뿅 하고 나타나셨다. 경산이라서 급히 진행될까 봐 우리 집 아파트 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이완에 방해가 될까 봐 차 안에서 쪽잠을 자며 나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뚝딱뚝딱 세팅을 하시더니 아기 심장소리를 들어보고 내진을 해보자고 하셨다. 아직 진통이 시작된 지 5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고(첫째는 출산까지 23시간이 걸렸다) 소리를 지를 만큼 많이 아프지도 않았기에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다. 


"얼마나 열렸게?" 내진을 하고 있는 조산사 선생님이 퀴즈 내듯 물으셨다.

"음... 한 4cm 정도?" 로건이 낳을 때 진통 강도를 되뇌며 대답했다. 

"80%!" 기특하다는 눈빛을 보내셨다.

"네?! 겨우 이 정도 아픈데 벌써 8cm가 열렸다고요?" 옆에 있던 남편도 깜짝 놀랐다. 로건이 낳을 때는 6cm 때부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굴러다녔는데, 비명 한 번 지르지 않는 차분한 상태의 나를 보며 신기해했다. 


미리 섭외해두었던 촬영 감독님도 도착해서 뚝딱뚝딱 촬영 준비를 하셨다. 있는 듯 없는 듯 우리 가족의 모습을 조용히 관찰하고 담아달라고 미리 요청했기에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우리는 본격적으로 출산을 촉진하기 위해서 거실에 준비해두었던 풀장에 따뜻한 물을 받아 들어갔다. 수중 감통이 몸을 이완하는데 도움이 돼서 아기가 내려오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엄마의 자궁 속 같은 따뜻한 물이 주는 편안함은 진통을 반으로 줄여주었다. 그러는 도중 양수가 터졌다. 자궁문이 다 열렸고 본격적으로 허리와 골반이 조여오며 몸에 힘이 들어갔다. 그대로 수중 출산으로 이어져도 무방하지만 감염문제와 후처치의 편의성 때문에 침대 위에서 힘주기를 하기로 했다. 


4:30 am 힘주기가 시작되었다. 억지로 힘을 주지 않고 아기가 보내는 수축 신호에 맞춰 기다려주며 천천히 진행했다. 수축이 오면 10초간 힘을 주고 재빨리 숨을 한번 갈아 쉰 다음 10초 더 힘껏 푸시했다. 쉬는 시간에는 남편 몸에 완전히 기대어 힘을 빼고 휴식했다. 로건이는 아직 잘 자고 있었다. 내가 지르는 소리에 이웃들이 깰까 봐 미리 경비실에 가서 집에서 출산할 계획이니 혹시 비명소리가 들린다는 민원이 들어와도 놀라지 말라고 당부해두었는데, 걱정과는 다르게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이번에도 아기 머리가 나왔다가 들어갔다 하면서 조금씩 내 몸을 열고 있었다. 조산사 선생님은 틈틈이 회음부를 마사지해주면서 열상을 최소화하도록 도와주었고 남편은 내 손을 잡고 나의 호흡 하나하나를 함께 했다. 그 시각 우리의 안방에는 나, 아기, 남편, 조산사 이렇게 4명이 조용히 호흡을 맞추고 있었고 그 모습을 조용히 담고 있는 감독님이 있을 뿐이었다. 


2020년 10월 9일 5:30 am 진통 시작 약 7시간 만에 우리의 둘째 아들 크루즈링컨이 탄생했다. 내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이번에는 내 배 위로 올려졌다. '응애~'하고 호흡하고는 이내 익숙한 엄마 품에서 안정을 찾았다. "안녕~ 링컨아, 엄마 아빠가 널 만나기만을 기다렸어. 반가워" 나와 남편은 미소로 링컨을 반겨주었다. 조산사 선생님은 내가 첫째 출산 때 회음부 절개한 부분이 조금 자연적인 열상을 입었다고 했다. 국소마취 후 회음부 봉합 시술을 받는 동안 내 배위서 꼼지락거리는 링컨을 남편과 함께 바라보며 도란도란한 시간을 보냈다. 병원의 밝은 빛도, 왔다 갔다 하는 의료진도, 각종 검사도 없었다. 변한 것 하나 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듯한 황홀감이 느껴졌다. 시간이 우리를 위해 멈춘 것만 같았다. 


회음부 봉합이 끝나고 태반까지 만출되었다. 출산의 모든 과정이 무사히 끝난 것이다. 그제야 양가 부모님께 전화를 하고 젖도 물렸다. 어쩜 갓 태어난 아기가 그렇게 힘차게 젖을 빨 수 있는지! 두 번째지만 여전히 신기했다. 모유수유가 끝나고 남편이 캥거루 케어를 하는 동안 친정엄마가 도착했다. 택시비 아까워서 못 타는 사람이 전화한 지 10분 만에 날아오셨다. 어떻게 집에서 애를 낳냐며 병원분만하라고 성화셨는데 집에서 낳았기에 갓 태어난 손자를 바로 안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별난 딸 걱정에 얼마나 가슴 졸이셨을까? 링컨을 품에 안고 안도와 행복에 젖은 엄마를 보니 뭉클했다. 


아침 7시가 되자 로건도 일어났다. 로건은 할머니 품에서, 링컨은 아빠 품에서 서로를 처음 만났다. "로건아, 형이 된 걸 축하해~ 자, 여기. 동생이 주는 선물이야." 우리는 미리 준비해두었던 선물을 로건에게 줬다. 작아진 나의 배를 만지며 신기해하는 로건이 참 귀여웠다. "로건아, 엄마 뱃속에 링컨이가 있다가 이렇게 나왔어. 그래서 엄마 배가 작아졌지~ 이제 우리 링컨이랑 같이 사는 거야. 괜찮겠어?" 로건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이후로 우리 가족은 링컨을 새로운 가족으로 맞이하여 집에서 함께 살고 있다. 나와 남편은 이제 두 아이의 부모가 되었고, 로건은 형이 되었다. 모두가 서툴지만 자연스럽게, 그렇게 새로운 삶에 적응해나가고 있다. 그 새로운 삶의 출발인 출산을 담은 영상이 감독님의 손길을 거쳐 완성되었다. 감독님의 눈으로 다시 보니 출산했을 땐 나지 않았던 눈물까지 찔끔 날 만큼 감동적이었다. 그 영상을 샤인킴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했고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시청하고 응원해주었다. 


임신 전 몸매로 못 돌아갈까 봐 주저했던 임신. 두 아이를 임신, 출산, 육아를 하면서 임신 전 보다 더 좋은 몸매를 가질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커리어도, 사랑의 용량도 큰 사람이 되었다. 훗날 로건과 링컨에게 이 책을 선물하며 전하고 싶다. "너희들을 낳고 기르면서 내가 더 성장할 수 있었어. 고마워 얘들아, 사랑해." 


출산 당일 저녁, 넷이 된 우리 가족의 조촐한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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