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잘 살고 있어 _에피소드 1
릴리의 겨울방학이 엿가락처럼 늘어지다 못해, 사상 초유의 온라인 개학을 맞이하게 되었다. 코로나 사태로 언제쯤 아이들을 학교에 다시 보낼 수 있을지 명확하게 알 수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어른들은 바짝바짝 속이 타들어갔다. 하지만 릴리를 보나 초등학교 에 다니는 조카들을 보나, 아이들은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문제는 꼼짝없이 집에 갇혀 삼시 세끼를 비롯해 간식까지 만들어(사실은 사다) 바치고, 아이의 일상부터 학업까지 챙겨야 하는 엄마들의 고통이 하염없이 늘어나고 있는 것. 얼추 다 컸지만 아직 아이 티가 가시지 않은 고3 릴리의 개학이 4월로 넘어간다는 교육부의 발표를 들은 그때, 나도 모르게 절규하고 말았다. 마침 방에서 공부하다 물을 마시러 나온 릴리가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
“왜 그래?”
“아, 개학이 연기 됐대.”
“그랬구나. 난 개학 연기돼도 별 상관없는데. 엄마도 그렇잖아. 안 그래?”
순간 말문이 막힌 와중에 안 돌아가는 머리를 정신없이 돌려서 간신히 둘러댔다.
“그렇지, 나도 아무 상관없지. 다만 이러다 여름방학이 없어지면 네가 학원 다니기 힘들까 봐 걱정돼서 그렇지.”
릴리는 급조한 나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어이쿠. 위험했다. 방학 전까지 하루에 한 끼만 챙겨주면 땡이었는데. 이제 삼시 세끼를 챙겨줘야 하는 엄마 마음을 네가 어찌 알리오?!’
릴리와 나는 가까운 것 같으면서 은근히 멀고, 할 말 못 할 말 다 하는 것같이 친하면서(그렇다고 믿고 있다) 한편으로는 쿨하게 서로 모르고(혹은 모르는 척) 넘어가는 일도 많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로 같이 있는 시간이 어쩔 수 없이 길어지면서 서로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하나둘씩 발견하고 있다.
한번은 오늘 또 무슨 반찬을 해야 하나(이건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인 양자 컴퓨터를 동원해도 절대 해결하지 못할 난제라고 강력하게 확신한다) 고심하다 하우스 카레와 닭고기를 사서 야심차게 카레를 만들어 식탁에 놓고 릴리의 표정을 살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릴리의 표정이 어두웠다! 하우스 카레(오뚜기 카레보다 부드럽고 단맛이 강하다)도 좋아하고, 닭고기도 좋아하니 천상의 조합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떨떠름한 반응을 보니 고민한 시간 + 요리한 시간에 비례해 빛의 속도로 힘이 빠졌다.
“왜, 맛없어?”
“카레에 닭고기는 좀 아닌 것 같아.”
“아니, 왜? 너 카레 좋아하잖아. 닭고기는 없어서 못 먹고.”
“내가 닭고기는 좋아하지만 카레는 안 좋아해. 거기다 카레에 들어간 닭고기는 정말 별로야.”
“뭐, 뭐라고? 너 카레 좋아했잖아!”
“그건 내가 초딩 때였잖아. 나 이제 고3이야.”
그렇게 따박따박 대꾸하고 식탁에서 일어난 릴리의 뒷모습을 보니 영화 <벌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주인공인 은희가 좋다며 수줍게 따라다니던 일 년 후배가 갑자기 그녀를 외면한다. 은희는 그 변심을 이해할 수 없어 섭섭한 마음에 불러내서 따진다. 후배는 이렇게 말한다. “언니, 그건 지난 학기잖아요.” 은희와 나의 사정이 같진 않지만(사실 굉장히 다르지만) 은희의 기분이 어땠을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그래, 릴리야. 그동안 내가 너의 기호에 좀 무 심했던 것 같구나….
누가 더 많이 사랑하나, 누가 더 상대에게 관심이 많나, 라는 유치한 애정 게임에서 부모는 언제나 자식에게 KO패 당할 수밖에 없다. 부모의 관심이란 자식에게 자석처럼 끌리기 마련인 반면에 자식, 무엇보다 한참 크는 사춘기 자녀의 관심은 하루키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오거나” 자신이 숭배하는 대상에게 가기 십상이니까. 그 숭배의 대상은 주로 연예인이나 친구지 부모일 확률은 제로다(생각해보니 자식이 부모에게 관심이 많다면 그것도 그리 좋은 일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이런 엄혹한 사실을 처절하게 깨닫게 된 일이 있었다. 나는 과로하면 단박에 눈이 알레르기 발작을 일으킨다. 번역이란 몸이 아픈 것은 물론, 몸의 일부인 눈이 거부하면 할 수 없는 일이다(눈이 아프지 않으면 비염이 도지고, 비염이 도지지 않으면 어깨나 허리가 찢어질 듯 아프지만 골골 타령은 이쯤 하고…). 『보물섬』에 나오는 미남 애꾸눈 선장처럼 안대를 하고 타자를 칠 수는 없으니까.
그날도 마감에 맞춰 정신없이 달리다 갑자기 왼쪽 눈이 심하게 쑤시고 가려웠다. 그래서 단골로 다니는 안과에서 안약 두 개도 모자라 안연고까지(안연고는 눈에 넣는 지옥이다) 받아와 넣고, 눈이 낫기를 기다리다 심심해서 <보이스>라는 스릴러 드라마를 정주행했다.
원래 스릴러 마니아인 데다, 드라마 속 연쇄살인마로 분한 배우가 딱 내 취향의 미남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시킨 대로 착한 아이처럼 왼쪽 눈에 아이스팩을 대고, 오른쪽 눈으로 하루에 예닐곱 시간씩 봤다. 오 분에 한 번꼴로 참혹한 비명이 온 집 안에 울려 퍼지자, 물 마시러 방에서 나온 김에 냉장고도 열어보던 릴리가 질색하며 말했다.
“눈도 아픈데 꼭 그렇게 잔인한 드라마를 봐야 해? 대체 어디가 그렇게 좋아?”
“나 원래 이런 드라 마 좋아하는데. 그리고 명색이 스릴러 번역가인데 이런 드라마는 필수지.”
“헉! 엄마가 스릴러 번역가였어? 난 몰랐어!”
“아니, 넌 엄마가 스릴러 소설을 번역해서 먹고사는 것도 몰랐어?”
“응. 그냥 영어책 번역하는 줄 알았지. 그게 스릴러인 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 그렇구나.”
릴리는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뭔가 실망스럽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해서 잠시 멍해졌다.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부터 내가 따발총을 쏘는 것처럼 타자를 치거나, 가끔은 글이 안 써진다고 머리카락도 얼마 안 남은 빈약 한 머리를 부여잡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면서 큰 릴리는 그게 스릴러인지 뭔지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사실 컴퓨터 매뉴얼이든 요리책이든, 스릴러 소설이든 무슨 차이가 있을까. 그걸로 우리 둘이 먹고살고 학원비와 용돈이 제대로 나오는 한, 릴리에겐 생업의 장르는 신경 쓸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스릴러 전문 번역가라는 사실을 알고도 반응이 신통치 않았던 이유는 또 있다. 스릴러라면 환장하는 나와 달리 릴리는 스릴러라면 질색한다. 정확히 말하면 잔인한 장면이나 비명을 끔찍해한다. 그런데 정말 희한하게도 스릴러는 싫어하면서 공포 영화는 개봉할 때마다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본다. 대체 왜 그런지 이유를 물어봤지만 쿨하다 못해 무뚝뚝한 딸은 “재밌잖아”라는 간결한 대답을 했다.
그렇지, 취향을 설명하라는 거 자체가 촌스럽긴 하지. 그래도 내게 스릴러를 좋아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열 개 정도는 너끈히 말해줄 수 있는데 쌩 하고 가버리다니. 그렇다고 물어봐달라며 붙잡기도 민망하다. 어렸을 때 그렇게 놀아달라고 애걸해도 일한다고 혼자 놀라고 했던 복수를 이제 와서 하냐! 있을 때 잘하란 말은 연 인에게만 하는 게 아니었다.
우리는 정녕 서로에게 쿨하디 쿨한 관계였구나. 앞으로도 쭉 이렇게 살 것 같은 예감에 조금 섭섭했다. 그렇다고 관심을 가져 달라고 애걸하기도 치사하고. 쿨한 인간처럼 굴기가 이래저래 쉽지 않다. 더 말하면 서러워 눈물이 나올 것 같고.
생각보다 잘 살고 있어: 이 시대 2인 가족의 명랑한 풍속화
2020년 12월 1일 출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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