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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May 13. 2024

돈벌레의 월세살이

만담 해풍소

(돈벌레)

요즘 먹잇감이 괜찮지?


(거미)

그런 편이야.

이 집주인 참 이상하지 않아?


(돈벌레)

왜, 자넬 죽이려드나?


(거미)

아니, 차라리 그게 정상이지.

이 집주인은 자네와 나를 살려두지 않나.


(돈벌레)

그거야 우리가 벌레들을 다 잡아먹으니 그런 거지.


(거미)

그렇다 쳐도 가끔 길치인 새끼들이 거실로 들어가도 죽이지 않는다네. 잡아서 다시 밖으로 내보내 주.


(돈벌레)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그 여주인 나 볼 때마다 자지러지게 소리 지르는 탓에 내가 고막이  터질 노릇이.


같이 산지 일 년이 다 지났구먼 아직도 그렇게 소리를 질러네. 등치는 나보다 더 크면서 나처럼 발 많고 귀여운 곤충을 보고 왜 소리 지르는 거야.


(거미)

그래도 자넬 때려죽인 적은 없잖은가. 내가 보니 모기는 생각도 안 하고 바로 잡아 죽이던 걸. 이 집에 모기 퇴치기가 몇  인지 아는가? 네 개라네. 모기 전파리 채는 두 개이고. 자네랑 나는 주인의 극진한 호의를 받고 있는 라고.


(돈벌레)

그렇긴 하지. 다른 층으로 가면 잡히자마자 죽지. 여기서는 베란다라도 살게 해 주니 나도 고마운 맘일세.


(거미)

주인이 우릴 베란다에서 왜 살게 해 주는지 아는가?


(돈벌레)

글쎄, 모르겠네.


(거미)

여기가 이층 아닌가?

 화초와 나무들이 이층을 넘게 올라오잖나. 목나무 가지가 이층까지 손이 닿고 말일세. 다리처럼 타고 건너오는 곤충들꽤나 지 아마. 그러니 베란다가 해충의 본거지가 되기 십상이지. 그래서 주인이 우리를 키우는 걸세.


(돈벌레)

아, 내가 집세를 잘 낸 보람이 있고만.

위아래서 올라오는 바퀴벌레 잡아먹어야지, 화단으로 오는 꼽등이, 개미에 모기알까지..

너무 많지 뭔가. 작년에는 결혼해서 아이들도 았다네. 이젠 입이 늘었으니 집세 걱정은 안 해도 된다네.


(거미)

그래서 주인이 거실에 들어간 자네 아기들을 빗자루로 살살 몰아 베란다로 데리고 왔구먼.


(돈벌레)

어쩐지 몇 놈이 자꾸 사라지더라니. 그 녀석집주인 닮아서 길치였고만. 우리 가족은 암튼 최선을 다하고 있네. 자네는 집세를 어찌 내고 있는가?


(거미)

난 초파리나 모기를 잡지. 이 집에 어항이 세 개에 이끼와 수초를 키우네. 그러니 파리들의 천국이지. 난 공중을 유영하는 날벌레들의 보이지 않는 감옥이지. 집주인이 의리가 있어 낮이고 밤이고 집에 들어가는 거미도 죽이지 않으니 내 믿고 일할 수밖에.


(돈벌레)

근데 거미. 가끔 이해 안 가는 게 있다네.

하얀 털뭉치 고양이는 왜 우릴 보고 자지러져 울며 넘어지는 건가?

자기가 더 무서운 이빨을 가지고선?


(거미)

아, 이 집 고양인. 그 고양이 겁보라네.

자기 물통에 빠진 날파리도 무서워서 못 건지고 집사 불러 건져달라는 겁쟁이 말일세.


(돈벌레)

세상 참 우습고만, 덩치는 큰데 겁쟁이인 것이 이 쥐에게 잡아 먹히는 행세 같구려.


(거미)

그러니 거미줄에 목을 맨다는 속담도 나왔지

않겠나.


(돈벌레)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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