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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석에 선 아버지

교대역 11번 출구

by 이음


흐린 하늘, 미세먼지 가득한 공기.

법정으로 들어가기 전, 아버지는 핸드폰 화면을 꺼내 봤다. 그 화면엔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링크 하나가 남아 있었다.


“친구 추천하면 +10만 지급. 5명 가입 시 본인 베팅금 *2.”


아버지는 그것이 아들을 무너뜨린 입구였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사건>


아들은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학교도 성실했고, 문제도 없었다.

어느 날 친구가 보낸 메시지 하나.


“이거 진짜야. 토토인데 꽁머니 10만 줌.”

“1000원만 넣어도 5만 원까지 배팅돼.”

“니가 친구 추천하면 넌 또 돈 받음. 개꿀이야.”


처음엔 장난이었다. 5000원을 넣었는데 2만 원이 됐다. 5000원은 다시 사라졌다.


아들은 말했다.

“근데... 다시 할 수 있을 거 같았어요.”

“이번엔 맞을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는 3일 만에 10만 원을 썼다.

일주일 뒤엔 50만 원. 그다음엔 친구들 계좌를 빌렸고, 아버지의 명의로 개통된 공폰을 썼다. 도박 사이트는 미성년인 걸 알면서도 환영했다.


“가입만 하면 꽁머니 지급.”

“친구 1명 추천 시 5만 입금.”

“학생은 무조건 환영. 부모 명의 만들기 안내 가능.”


지금 그 사이트는 없어졌다. 신고가 들어가면 바로 도메인을 갈아탔다. 관리자들은 텔레그램으로만 소통했고, 계좌는 늘 대포였다. 아버지는 아들의 통장을 뒤지다가 사이트 주소를 처음 발견했다. 그날, 아들은 자해를 했다.


<법정>

검사는 말했다.


“미성년자임을 알면서도 도박에 참여했고, 계좌를 조작했습니다.”

“부친 또한 자금 흐름을 알고도 늦게 대응했습니다.”

하지만 법정엔 아무 말도 없었다.


아버지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판사가 물었다.

“피고는 왜 경찰에 먼저 오지 않았습니까?”


아버지는 입을 열었다.

“저도 믿었어요. 애가 장난친 거겠지, 조금 쓰다 말겠지. 그런데 그 ‘조금’이 100만 원이 되고, 그 100이, 애를 무너뜨리더군요.”


“스스로 신고하신 건 맞습니까?”


“네.


아들 죽으려 하던 날, 그 손을 붙잡고 경찰서로 갔습니다.”


“고발장도, 부친이 직접 작성하셨다고요?”


아버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아들이 울었다. 한 마디도 하지 않던 아이가 말했다.


“아빠… 나, 그냥 죽게 내버려 두지 왜 살렸어.”


법정은 고요해졌다. 슬픔도, 분노도 지나가고 남은 건 조용한 고백뿐이었다.


<판결>

아들은 보호관찰과 치료명령.

아버지는 벌금형.

하지만 판사의 말은 무거웠다.


“이 사건은 청소년 도박이라는 새로운 사회 병리의 축소판이다. 지금도 누군가의 핸드폰 알림 속, 또 다른 누군가의 자녀가 유혹당하고 있다. 이건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 포식이다.”


<출구>

재판을 마친 후, 아버지와 아들은 교대역 11번 출구 앞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오래 침묵이 이어졌다. 갑자기 아들이 입을 열었다.

“진짜 고발한 사람… 아빠였어?”


아버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이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왜? 어떻게 부모가 자식을 고발해?


그 말에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후, 아버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은 나를 원망하겠지만 너도 부모가 되면 , 언젠가 네가 깨달을 날이 올 거야. 아빠가 널 망치려 한 게 아니라, 널 지키려 했다는 걸.”


아들은 아무 말 없이, 뒤돌아보지 않고 출구 계단으로 내려갔다.


아버지는 그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여기는 교대역 11번 출구.

누군가는 죄를 짓고,

누군가는 스스로를 고발하고,

누군가는 마지막으로 손을 잡는다.

법은 처벌을 말하지만,

그날 누군가에겐

다시 살아볼 수 있다는 선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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