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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이야기

교대역 11번 출구

by 이음


“저… 이거 고소장 맞죠?”

서류를 내민 건 중년 여성이었다. 눈 밑은 부어 있었고, 손등엔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나는 접수대를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어떤 도움 필요하세요?”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이걸 썼다가, 찢었어요. 그런데 다시 써야 할지 모르겠어서요.”

그날, 그녀는 폭행 피해자로 상담을 신청했다. 가해자는 남편이었다. 열세 살 된 아들 앞에서 머리채를 잡혔고, 문에 손가락이 끼였다고 했다. 병원 진단서와 사진을 들고 왔지만, 말은 조심스러웠다.

“아이가… 아빠를 좋아해요. 그래서…”

상담 변호사는 조용히 물었다.
“지금도 같이 사시나요?”

“아뇨. 분리된 지 두 달 됐어요. 그런데 어제 전화가 와서요.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저도… 미련이 없는 건 아니에요. 아이 때문에라도.”

나는 뒤에서 조용히 메모를 하며 그를 바라봤다. 상담이 끝나갈 즈음, 변호사가 물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정말 고소하시겠습니까?”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말했다.
“네. 이번엔 해야 할 것 같아요.”

이틀 뒤, 나는 그 여자를 다시 마주쳤다. 그녀는 고소장을 들고 다시 왔다. 그런데 이번엔 뭔가 달랐다.
종이 위 이름이 달랐다.

가해자: 박윤재.
그녀의 아들 이름이었다.

“어제 아이가요… 저를 때렸어요.”

나는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죄송해요. 말이 안 되죠. 열세 살짜리를… 제가 고소하겠다는 게.”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근데요. 윤재가 그러더라고요. ‘엄마도 맞고 가만있었잖아. 나도 해도 되잖아.’라고.”

그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건 분명 누군가에게서 배운 태도였다.

그녀는 서류를 찢어버렸다.
이번엔 망설임 없이, 완전히.

“이젠 누구도 고소 안 할래요. 나부터 다시 해야겠어요.”

그날 상담일지를 정리하며, 나는 혼잣말을 적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사람, 그들 사이에서 자란 또 다른 피해자. 이건 누구의 이야기인가.’

그날 이후 나는 매 상담마다 자주 묻게 되었다.
“지금 이 이야기는 정말 당신의 이야기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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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목,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