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대역 11번 출구
그날도 평범한 하루였다.
누군가는 출근을 했고, 누군가는 퇴근을 준비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아무도 곁에 없는 병실에서 생의 마지막 숨을 쉬었다.
2021년 12월. 서울의 한 병원에서 78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코로나19 확진자였다. 가족들은 병실 앞에도 못 갔다. ‘전염 위험’이라는 이유로 시신조차 보지 못한 채, 병원으로부터 한 통의 문자만 받았다.
“고인의 시신은 방역지침에 따라 화장 예정입니다.
유골함은 화장 당일 이후 전달될 예정입니다.”
아들 민석 씨는 그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유골함을 받기 위해 예약된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지만, 관계자는 말없이 서류만 뒤적였다.
“죄송합니다. 유골함이… 목록에 없습니다.”
가족은 당황했다. 병원은 질병청을, 질병청은 위탁 장례업체를, 업체는 다시 병원을 탓했다. 며칠 뒤 받은 답변은 이랬다.
“화장 후 유골 전달 과정에서 동일 성씨의 다른 고인과 혼동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정확한 확인이 어렵습니다.”
민석 씨는 물었다.
“확인이 어렵다는 게, …돌아가신 아버지가 어디 계신지 모른다는 뜻입니까?”
그 누구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 황당하고 있을 수 없는 일에 민석씨는 국가를 상대로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피고는 질병관리청과 보건복지부였다.
재판은 감정을 배제한 언어로만 흘러갔다.
“2021년 10월 개정된 ‘감염병예방법 시행령’ 제7조에 따라 고위험 감염병 사망자의 시신은 방역기관의 판단에 따라 직접 격리장례 또는 화장 후 전달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 피고 측 변호인
“문제는 방역이 아니라, 그 방역이 한 사람의 마지막을 잊어 버렸다는 점입니다. 이건 실수가 아닙니다. 확연한 사고입니다.”
– 원고 측 변호인
민석 씨는 증언대에 섰다.
“우린 아버지를 본 적이 없습니다. 목소리도, 얼굴도, 마지막 손도 없었습니다.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걸…
우리는 ‘한 통의 문자’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유골함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국가는 아버지를 어디에 묻었는지도, 아니, 묻었는지조차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판결 당일.
법정은 잠시 침묵에 잠겼다가 재판장이 차가운 목소리로 결론을 낭독했다. 재판장의 목소리는 피 한 방울 안 묻은 서류처럼 깔끔하고 메마른 톤이었다.
“국가는 해당 시기 감염병 위기 상황에 따라 고인의 시신을 직접 인도하지 않고 화장 후 유골함 전달을 선택한 바, 이는 [감염병예방법 시행령 제7조]에 따른 정당한 조치로 판단됩니다.”
“또한 유골 전달 과정 중 발생한 혼선은 위탁 업체의 과실 가능성은 있으나, 국가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보긴 어렵습니다.”
“따라서 원고 측의 위자료 청구는 법률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므로 이를 기각합니다.”
“국가는 본 사건에 있어 사과의 의무는 있으나, 법적 책임은 없음을 명확히 합니다.”
민석 씨는 웃었다. 입은 웃고, 눈은 뜨거웠다.
“사과는 없고, 책임은 서류가 지나보죠.”
기자들은 판결문을 받아 적었다. ‘사과의 의무는 있지만, 책임은 없다.’
그 말은 마치 “미안하지만, 내 탓은 아니다.”
법정은 정리됐고, 국가는 돌아섰다.
그리고 아버지는, 여전히 어디에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