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대역 11번 출구
한겨울이었다.
코끝이 시릴 만큼 찬 공기 속, 중앙지법 앞 인도에 한 여학생이 서 있었다. 까만 롱패딩 속에 앙다문 입술과 하얗게 질린 얼굴. 그 아이는 오늘 법정에 설 수 없었다.
이미 세상에 없기 때문이었다.
법정 204호.
오늘은 다이어트약 ‘나비약’ 과다복용 사망 사건에 대한
의사 최민섭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1심 선고공판이었다.
재판부 앞엔 하얀 셔츠를 단정히 입은 중년 남성 하나.
피고인석에 앉은 그는, 서울 강남의 1인 의원 원장이었다.
검사는 기소 요지를 천천히 낭독했다.
“피고인은 2025년 2월부터 6월까지 청소년 및 미성년자를 포함한 다수에게 진단 기준 미충족 상태에서 향정신성 식욕억제제 일명 ‘나비약’을 과다 처방해 왔습니다.”
“피해자인 고 이나영 양(당시 만 17세)은 SNS 광고를 통해 해당 병원을 찾았고, 3분도 안 되는 문진 끝에 펜터민과 플루옥세틴 병용 처방을 받았습니다.”
“이나영 양은 해당 약 복용 3일째 급성 빈맥과 실신 증세를 보였고, 5일째 새벽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어 병원 이송 중 사망하였습니다.”
“피고인의 행위는 명백한 과실이며, 의학적 윤리와 청소년 보호 의무를 심각하게 위반한 것으로, 업무상 과실에 의한 치사 혐의가 성립됩니다.”
피해자의 부모는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법정에는 아이의 친구가 방청석에 앉아 있었다.
그는 판사의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고개를 숙였다.
피고인 최민섭 원장의 변호인은 변론에 나섰다.
“피고인은 유족에게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고, 조문과 손해배상 의사도 밝힌 상태입니다. 다만 유족 측에서 모든 접촉을 거절해 정식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말씀드립니다.”
“당시 처방은 당시 유효했던 비만 진단 기준과 환자 진술을 기반으로 한 것이며, 환자의 복용 후 이상반응에 대해서는 고지된 바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사건은 고의가 아닌 과실이며 피고인 또한 지금껏 모든 진료 행위를 자의적으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피고인은 처벌을 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진심으로 사과하며 개선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이를 참작하여 관대한 판결을 부탁드립니다.”
검사는 반박했다.
“의사는 환자의 말만 듣고 약을 처방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특히 향정신성 식욕억제제는 체중 감량이 아닌 생명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약물입니다.”
“피해자는 SNS를 통해 ‘대면 없이도 처방 가능한 병원’이라며 해당 병원을 소개받았고, 그 병원은 사실상 **청소년 사이에서 유명한 다이어트 약 ‘픽업 장소’**였습니다.”
“피고인은 의료인 이전에, 미용시장의 공급자로 기능했습니다. 법과 윤리, 둘 다 어긴 것입니다.”
공판 중 증거로 제출된 SNS 캡처에는
이나영 양이 친구들과 나눈 메시지가 있었다.
**- 약 받았어?
응. 3분만에 끝남
ㅋㅋ부작용 없어가슴이 두근두근해…
근데 살 빠짐.부럽다…
나도 내일 간다.**
정신과 전문의는 법정 증언에서 말했다.
“식욕억제제의 주요 부작용 중 하나가 불안, 불면, 빈맥, 심장 쇼크입니다. 특히 청소년은 약물 대사 능력이 성인보다 떨어져 같은 양을 복용해도 더 큰 위험에 노출됩니다.”
“문제는 약이 아니라, 약이 ‘예뻐지는 통로’가 되어버린 사회입니다.”
판결은 오후 3시.
재판부는 최민섭 원장에게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추가로 의사면허 자격정지 1년이 부과되었다.
“환자를 고객으로 본 순간, 당신은 의사의 길을 이탈했습니다.”
“청소년의 죽음 앞에, 합의가 불발되었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덜어낼 순 없습니다.”
기자가 묻는다.
“판결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피고인은 짧게 답했다.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며칠 후,
교대역 11번 출구 앞,
하얀 국화 한 송이가 벤치 위에 놓였다.
편지 한 장이 접혀 있었다.
‘나비는 날지 못했어.
날개 없는 나비는 날 수 없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