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대역 11번 출구
법원 안으로 들어가기 전, 여자는 휴대폰을 꺼내 녹음기 앱을 눌러봤다. 거기엔 자신이 울면서 경찰에 말했던 통화 녹음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거기 도착하자마자 여권을 뺏겼어요. 나갈 수가 없어요. 저 좀 제발, 꺼내주세요…”
<사건>
서른을 앞둔 김다희 씨는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갖고 있었지만, 계약직 인생 4년 차였다. 하루 10시간 일하고도 월급은 150만 원. 언제 잘릴지 몰랐다. 그러다, SNS 광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일본 요양병원 정식 채용.
월 600만 원, 숙소 무료, 항공권 제공.
병원 내부 사진, 위치 링크 확인 가능."
불신도 잠시, 다희는 안내받은 링크를 눌렀다. 깔끔한 병원 홈페이지에 직원들 사진, 소개 영상까지 있었다.
그래도 의심스러워서 구글지도를 켜봤다. 병원 주소를 검색해 보니 건물도 실제로 있고 블로그 후기도 있었다.
“이건 진짜구나.”
그녀는 70만 원을 입금했고, 김포공항에서 만나 받은 비행기표와 비자서류 복사본을 들고 출국했다. 하지만, 일본에 도착하지 마자 여권을 뺏겼고, ‘프리미엄 요양원’이라던 곳은 시 외곽의 허름한 2층 건물이었다. 그곳은 성매매 알선업소였던 것이다. 다희 씨가 확인한 ‘병원’은 바로 페이퍼 컴퍼니였다.
어떻게 그렇게 속을 수 있었나?
병원은 실제로 존재하는 곳인 것처럼 만들어진 복제 웹사이트였고, 구글지도에 등록된 병원 주소까지 그대로 복사돼 있었다. 도메인은 실제 병원과 한 글자만 다른 주소였다.
“경력자 우대”, “비자 절차는 병원에서 대행” 같은 말로 신뢰를 줬다.
후기 블로그 역시 대부분 조작된 티스토리·네이버 블로그 같이 계정이었다. 공항에선 실제로 ‘병원 직원’ 복장을 입은 사람이 나와 더 속을 수밖에 없었다.
※누구도 속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
<법정>
한국에 돌아온 뒤, 김다희 씨는 경찰에 모든 자료를 제공했다. 자신을 속인 텔레그램 채널, 입금계좌 내역, 받은 PDF 비자서류, 녹음된 전화 내용까지. 하지만 검찰은 그녀 역시 불법취업 시도자로 입건했다.
“피해자인 동시에, 법 위반자일 수 있다.”
그녀는 법정에서 말했다.
“저는 속았어요. 근데... 그걸 증명하는 게 너무 어렵더라고요.”
“아직도 믿는 사람이 많아요. 그 병원 홈페이지는 지금도 열립니다. 전화번호는 바뀌었고요. 그 병원 주소는, 지금은… 그냥 허허 들판이에요.”
<판결>
판결은 무죄였다. 그러나 그녀는 출입국관리청 블랙리스트에 등록되었고, 2년간 비자 신청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더 이상 병원 일은 다시 할 수 없었다.
판사는 판결문에 이렇게 적었다.
“페이퍼컴퍼니와 디지털 정보 조작에 기반한 해외취업 사기는, 개인의 분별력을 넘어서는 ‘전문적 기만’이다. 피해자가 무지해서 당한 게 아니다. 속지 않기 위해선, 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출구>
재판을 마친 날, 김다희 씨는 교대역 11번 출구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폰을 꺼내 그동안 저장돼 있던 블로그 후기 캡처, 모집책과의 채팅 캡처, 병원 사이트 스크린숏을 모두를 지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녹음 앱을 열어 자신의 녹음을 삭제했다.
여기는 교대역 11번 출구.
누군가는 살아 돌아오고,
누군가는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다.
이곳은 정의의 건물이 있는 곳이지만,
세상은 아직 정의롭지 않다.
해외취업 사기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구글지도, 병원 홈페이지, 후기 블로그,
그 무엇도 진짜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회사 사업자등록번호를 국가정보공시에서 직접 확인하고, 외교부·고용노동부 등록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십시오.
공식 해외취업 경로(KOTRA, 월드잡, HRD센터)를 제외한 채널은
우리는 속지 않을 방법이 거의 없습니다.
그렇기에 “신중함”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