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대역 11번 출구
그날 아침, 회사 통장 잔고를 보며 결정했죠. 이삿짐센터 6군데에서 받은 견적서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다.‘싼 데로 하지 뭐’라는 판단. 하지만 그 판단이, 이사를 한 달 늦췄다.
스타트업 ‘에이블위크’는 사무실 확장을 위해 기업 이사를 준비했다. 대표 김부장은 이삿짐센터 6군데에 견적을 의뢰했지만, 결과는 이상했다.
“가격이 거의 비슷했어요. 다 290만 원대. 그런데 하나같이 ‘추가 요금 생길 수 있다’는 조건이 붙었죠.”
한 곳은 말했다.
“직원이 적으니 대표님도 좀 도와주셔야 해요.”
또 다른 곳은 말했다.
“엘리베이터가 좁으면 사다리차 추가될 수 있습니다.”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결국 김부장은 가장 저렴하고 응대가 빠른 A사를 선택했다. 그 선택이 회사를 흔들 줄은 몰랐다.
이사 당일 오전 9시. 예정보다 1시간 늦게 도착한 트럭, 기사 두 명. 김부장은 당황하고 말았다.
“5톤 트럭 3대 보내기로 했잖아요? 그런데 왜 5톤 1대, 2톤 3대가 왔죠?”
리더 기사는 태연했다.
“2톤이 두 대면 5톤보다 더 많이 실려요. 요즘 다 이렇게 합니다. 걱정 마세요.”
“그럼 다 합쳐도 11톤 아닌가요? 15톤 오기로 해놓고…”
“고객님, 원래 5톤 트럭도 실제로는 3톤밖에 못 실어요.
2톤이 오히려 실용적입니다.”
말은 그럴듯했지만, 속은 뻔히 보였다. 애초에 받은 5톤 3대 견적은 ‘허풍’이었다. 실제 이삿짐은 A사가 아닌, 견적만 받아 중개하는 알선 업체가 받았고, 그들은 여러 소규모 업체에 일을 나눠 하청을 줬다. 현장에 도착한 기사들도 다른 업체 소속이었다. 짐은 예상보다 더디게 옮겨졌고, 공간은 비좁았으며, 사람은 부족했다.
짐을 나르던 중, 컴퓨터 케이블이 마구 헝클어졌다.메인 서버 겸용 로컬 PC를 들고 옮기던 기사 손이 미끄러졌다.컴퓨터가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겉은 멀쩡해요. 원래 소리 나는 모델 아니었나요?”
그날 오후, 부팅은 되지 않았다.
하드디스크 오류.
그 안엔 해외 클라이언트와의 계약서 수정본, 발표 자료, 실적 보고서가 들어 있었다.백업 서버는 구버전이었다. 결국 다음 날 회의는 취소되었고, 해외 클라이언트는 말했다.
“기업 이사가 계약을 망칠 줄은 몰랐네요.”
어렵게 맺은 계약은 결렬되었고, 에이블위크는 클라이언트 신뢰와 파트너십 연장을 모두 잃었다.
피해액 약 5억 원.
법정에서: 싸다고 다 좋은 건 아니었다
김부장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우린 단지 회사를 옮기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회사가 무너졌습니다.”
A사는 발뺌했다.
“컴퓨터가 손상됐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포장 전부터 고장났을 수도 있고, 옮긴 뒤 직원이 떨어뜨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자 김부장은 당일 사진, CCTV 영상, 기사와의 통화 녹취를 제출했다.
“이건 단순한 실수가 아닙니다. 시스템과 장비에 대한 고려 없이 일감을 뿌린 ‘하청의 하청’ 구조가 낳은 결과입니다.”
판결문: 책임까지 싼 서비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피고 A사의 과실을 인정했다.
“피고는 기업 이사의 특수성과 장비 중요성을 사전 인지하고 있음에도, 인원 부족 및 안전조치 미비로 인해
손해를 유발했으며, 원고의 손해 일부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피고는 원고에게 6,800만 원을 배상할 것을 명한다.”
김부장은 새로 들인 서버 앞에 앉는다.
이젠 클라우드 백업도 이중으로 설정했다.
그렇지만 계약 실패의 후유증은 아직 남아있다.
싸다고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책임까지 싸다면… 그건 기업이라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