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담 해풍소
(대벌레)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연기하며 보냈군.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여야 진짜 안전하지.
살아있다는 걸 들키는 순간, 쓸모없는 벌레 취급을 받는 법이니깐
(다육이)
근데 너 너무 안 움직여.
3일째 보고 있는데, 진짜 나뭇가지인 줄 알았잖아.
(대벌레)
그게 내 전략이야.
세상엔 튀는 자보다 튀지 않는 자가 오래 살거든.
지구의 생존 철학이지.
(다육이)
그럼 넌 왜 사는 거야?
그렇게 아무도 안 알아보게?
(대벌레)
살았으니 사는 거지.
누가 사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사니.
넌 물만 줘도 서 있잖아.
난 움직이지 않아서 살아있고,
넌 움직이지 않아도 예쁘대더라.
이건 차별이야. 식물미학주의.
(다육이)
그래도 넌 가끔 나뭇가지로 오해도 받고
인간 손가락에도 매달려봤잖아.
난 한 번도 산책 가본 적 없어.
(대벌레)
그건 납치였어.
나한테 인간은 고양이보다 더 천적이야.
고양이는 날 무시하지만, 인간은 날 ‘징그럽다’고 잡아.
이말은 ‘죽인다’는 뜻이야.
(다육이)
그래도 넌 전세계에 팬클럽도 있잖아.
‘세계 최장 벌레’, ‘걷는 막대기’.
나는? ‘물만 주면 안 죽는 식물’. 그것도 가끔 주는.
야, 이제 그만 내려와.
그러다 굶어 죽겠다, 대벌레야
(대벌레)
응 안그래도 어두워져서 앞산에 식사 갈거야.
얼른 다녀올게
(다육이)
응. 잡히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