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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러 Apr 28. 2021

주말, 낭만이 충전되었다

왜 쓰냐면 잊히니까

지난주엔 남편이 산으로 낭만을 찾아 주더니, 이번에는 바다였다. 남편에게도 절대원칙이 하나 있다 했는데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을 넘는 곳은 안 가는 거랬다. 전철 안은 다행히 한산했으나 지 밖에 모르는 남편은 유튜브로 공부를 했고, 은율인 기어코 주문하고 만 초딩 핫템 팝잇을 들고 와, 같이 하자며 나를 잠 못 들게 했다. 팝잇에 지쳐 갈 때쯤엔 문장 이어가기, 단어 맞추기로 입에서 단내가 날 것만 같았다. 버스로 갈아타는 와중에는 2 행시를 한다며 운을 띄우랬다. 우선, 아빠를 한대네.


- '아!' 아빠 배는

- '빠!' 빠방 해


우리는 킥킥댔는데 남편은 웃지 않았다. 이번엔 엄마를 한단다.


- '엄!' 엄마는

- '마!' ...


그러자 남편이 불쑥 튀어나와 이랬다.


- 마찬가지


이번에는 셋 다 웃었다. 난 뭐 대인배니까.


막상 도착한 오이도의 날씨는 흐렸으나 역시 물결의 일렁임은 숨을 트이게 하는 멋이 있었다. 해안을 따라 좀 걷다가 배고파 죽겠다는 은율이의 재촉에 일단 먹기로 했다. 난데없이 연어 타령하는 아이. 게다가 아무 데나 좀 들어가자며 엄마 아빠는 왜 그리 결정을 못하냐고 따지네. 너 그렇다고 우리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부터 시작해서 결국 애도 삐치고 나도 삐치는 상황이 됐는데, 화해는 예상 밖으로 아이가 시킨 삼치구이가 선전하면서 물꼬를 텄다. 이런데 오면 바지락칼국수지! 극구 주장했던 우리의 큰 소리가 무색하게 면발은 좀 불었고, 겉절이 대신 파절이가 유일한 김치로 나와 투덜댔으나 물론 다 먹어 치우기도 했다. 청하도 한 병 시켜 낮술도 한 잔 하고.


아주 오랜만에 갈매기와 벗이 될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바다를 보았다. 은율은 밀물 때 쓸려 왔다가 차마 따라가지 못해 남은 소라를 주워 바다에 던지고, 나는 남편의 어깨에 기대어 뻑뻑해진 눈을 오래 감았다 뜨거나 노래를 흥얼거렸다. 좀 더 오래 있고 싶었으나, 씻지도 않은 딸기를 자꾸 건네는 취객의 노인이 등장하여 자리를 떴다.


하지만 해안을 따라 꽤 많은 거리를 걸었다.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을 무렵, 빛그물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불멍과 물멍 중에 하나를 택한다면? 하고 질문을 던졌다. 남편은 '불이지'라고 답했는데 은율은 물이랬다. '물은 자연이 준 그대로의 것이잖아. 자연보다 아름다운 건 없어'라면서. 토를 달면 말이 길어지므로 아 그렇구나, 했다. 아이 입장에서는 어디 가자, 어디 가자 하며 끌고 다니는 게 개 귀찮을 텐데 잘 다녀줘서 고마왔다. 난 집에 있을게, 둘이 다녀와,라고 할 날도 머지는 않겠으나.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렀다. 그리고 우린 은율이 멕일 연어를 신중하게 골랐다.








일요일엔 가까운 공원에 소풍을 갔다. 은율이 도시락을 싸자고 하길래, 그녀가 원하는 대로 계란말이를 하고 소시지를 구웠다. 브로콜리 다음으로 좋아하는 오이를 썰고 나머지 칸은 방울토마토로 채웠다. 지나가던 남편이 보더니 코웃음을 치며 '와. 다음 생엔 나도 은율이로 태어날래' 했다. 아 그래? 난 다음 생에 결혼 안 할 건데.


우리 몫으로는 생와사비김밥과 야채듬뿍김밥을 샀다. 둘 다 은율이가 싫어하는 버전. 커피 대신 에이드를 두 개 샀는데 청포도 에이드를 한 모금 먹어 본 은율이가 오만상을 찌푸렸다. 오예, 이것도 우리 꺼. 밥 먹으면서 전날 침대에서 은율과 둘이 했던 이구동성 퀴즈를 아빠와 해보라 했다. 일테면 '은율이가 제일 좋아하는 색은?' 같은 걸 내고 답하는 거다. 나의 전적은 초록색, 수박, 여름, 고양이, 브로콜리로 5승이었는데 역시 남편은 딸과 핀트가 자꾸만 어긋났다. 파란색 아니었어? 딸기 아니었어? 따지기나 해대고.


도서관에서 이슬아의 책을 빌려 왔다. 이슬아의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처음 읽을 때, 나의 이러한 글쓰기가 절대 하찮을 리 없다는 믿음이 생겨 났었는데 이번에 <부지런한 사랑>을 읽으면서는 뭐랄까, 이미 그 믿음이 나에게 신념처럼 자리했구나 알아차리게 되었다. 글쓰기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 데에는 그녀의 힘이 크다.


어쨌든 <부지런한 사랑>을 또 볼 요량으로 펼쳤다. 적당히 햇살이 비추는 나무들 사이로 어쩌면 개미들이 내 옷의 어딘가로 기어 다닌다 해도, 딱 누워 보면 천국일 것 같은 찰나였다. 하지만 한 장을 넘기기가 무섭게, 캐치볼을 하던 남편과 딸이 달려들었다. '엄마 우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하자.'


한 번만 더,를 간곡하게 외치는 딸아이 덕에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무궁화 꽃을 피우다가 딸의 친구를 만났다. 역시 어른과 놀 때 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땀을 배출하면서 아이들은 뛰고 점프하고 웃었다. 길어진 해가 오후 여섯 시를 향해 갈 때쯤, 부랴부랴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일기를 쓰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도 내일 일기를 써야지, 지금을 기록해야지 마음을 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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