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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러 Jun 30. 2021

여자끼리만 데이트

에블바디 슈파슈파

하루는 비, 하루는 쨍쨍한 변화무쌍 초여름이 이어지고 있다. 아연실색했던 아홉 살의 멋 부림도 이제는 꽤 자리를 잡아 굳이 내가 지적할 일이 많지 않게 되었다. 티셔츠를 반바지 속에 기어코 넣어 입겠다며 꾸깃꾸깃 넣거나, 컨셉에 맞아야 한다면서 가방과 신발을 고르는 모습을 보면 하아 한숨이 깊어질 때도 있지만 말이다. 피아노 학원 가는데도 열나 절. 헌데 참 신기한 건, 밖에 나와 멀찌기서 보면 너무나 사랑스러운 소녀라는 거다. 정말 많이 컸다, 느껴진다는 거다. 그렇지만 보통의 일상에선 그런 성장 찾을 겨를 없이, 째깍째깍, 시간에 맞춰 움직여지는 삶일 뿐.


그렇다고 매일이 같을 수는 없지. 어제는 남편이 회사 동료와 저녁을 먹고 온다길래, 은율이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 고르곤졸라 먹고 싶다 말할 때마다 그건 아빠랑 같이, 주말에 먹으러 가자며 다독였었는데 흥이다! 우리도 맛있는 거 먹을 줄 알거든요? 나는 로제 스파게뤼를 시키고 은율은 작은 사이즈의 고르곤졸라를 시켰다. 오왓. 은율이 크긴 정말 컸는지 피자 4조각을 먹는다. 올초까지만 해도 기껏해야 3조각이었는데. 별 차이 아닌가 봉가. 조금 먹고 많이 움직이는 너의 식습관은 늘 본받고 싶다. 물론 스파게뤼를 남기는 건 반칙이기에 님은 그릇까지 핥아먹었다.


평소 같으면 남편이 공부한다고 유튜브 크게 틀어놓고 애는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볼 저녁 시간인데, 집에 돌아온 은율이 그런다. 오늘 같은 호사가 어딨겠어, 엄마 제발 나랑 브레드 이발소 같이 보자 응응? 글의 양이 꽤 많은 동화책을 읽어줘서 이미 목이 쉬고 기력도 쇠한 나라 좀 쉬고 싶었는데... 간절한 척하는 딸의 부탁엔 항상 진다. 에블바디 슈파슈파 헬로 초코. 에피소드 하나씩 끝날 때마다 나오는 노래를 씬나게 따라 부르며 같이 봐줬다. 도중에 핸드폰을 살짝 봤는데 은율이한테 걸려서 뺏기기도 했다.


그나마 규칙은 잘 지키는 아이라서 열 시가 되기 전에는 잠자리에 들었다. 자기 이불 놔두고 꼭 나랑 이불을 같이 덮는 아이의 살결은 닿을 때마다 보드랍다고 느낀다. 몸이 대체로 찬 나는, 뜨뜻한 아이의 손과 다리를 차갑게 식혀줄 수 있다. 엄마 몸 진짜 시원해서 좋다. 그래 내 기꺼이 너에게 냉장고가 되리.






아빠 없으니까 좋다,라고 말한 딸아. 오늘 아침 아빠가 갱장히 귀찮음 무릅쓰고 출근했거든? 이따 퇴근해서 집에 오면 점프해서 안아줘. 우리 아빠한테도 사랑을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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