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출신 동거인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말하다
고개를 한쪽으로 깊이 떨군 자세가 이상해보였다. 옆 사람이 그러면 꼭 체크해야 한다.
“오늘 하루 어떻게 지냈어?” 내가 물었다.
“우크라이나 일 때문에 마음이 너무 안 좋아. 하루종일 할 일에 집중을 못했어.” 안나는 숨을 크게 뱉으며 힘들게 입을 열었다.
그 날 낮에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 ‘평화유지군’을 배치했다는 뉴스가 나왔었다. 안나의 커다란 눈에는 정말로 불안과 걱정이 담겨 있어서 그걸 본 순간 내 속도 출렁거렸다. 이름만 ‘평화유지군’이지 사실상 침공이라더니, 사태는 계속 악화되어 11일째(3월 6일)에 벌써 150만 명 이상이 전쟁 피란민이 되었고, 우크라이나 여러 지역에서 병원, 학교, 아파트 같은 민간 시설들도 폭격을 당했다. 유럽에서 제일 큰 핵발전소에도 사고가 날 뻔 했으며, 결국 러시아 군대가 점령했다.
우리 집에서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까지는 자동차로 2천 킬로미터. 22시간 정도 달리면 가닿는다.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 아닌가.
안나는 작년 가을에 모스크바에서 우리 도시로 와서 뇌과학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나의 동거인이다. 우리는 2월 1일부터 같이 살고 있다. 거실을 비우고 동거인을 들이기로 하면서 원래는 ‘독일어가 모국어인 30대 직장인 여성’을 구하려고 했다. 나는 ‘독일어가 모국어가 아닌 30대 비직장인 여성’이지만 동거인이라도 그런 프로필이면 좀 더 안정감이 들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논리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지원자 20명 중 대부분이 20대 초중반의 외국인 대학생이었고, 안나를 포함해 4명이 ‘캐스팅 면접’에 초대되었다.
느리지만 또박또박한 말씨와 상대방에게 귀 기울이는 대화 태도, 약속 시간에 늦지 않은 것, 무엇보다 나의 반려견 누룽지와 원래 알던 사이처럼 구는 친근함에 마음이 놓여 안나와 계약서를 주고 받았다. 모스크바에서 나고 자랐지만 대도시 생활이 늘 껄끄럽고 힘들었다는 얘기도 서울에 대한 나의 마음과 비슷해서 호감을 더 느꼈다.
입주를 기다리면서는 조금 설레기까지 했다. ‘앞으로 러시아에 대해서 많이 배울 수 있겠지?’ 내 방 벽에 붙은 유럽 지도를 볼 때마다 오른쪽에 그려진 러시아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지도의 거의 1/3을 차지하는 러시아 영토는 ‘정말 크다’ ‘춥겠다’는 것을 빼고는 내게 많은 생각이나 감흥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만큼 아는 것, 경험한 게 적어서 그랬다.
이후로 나는 바라던 대로 러시아에 대해서 가랑비 맞듯이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좀 더 정확히는, 오랫동안 모스크바 주민이었으며 정치적 성향이 진보적, 반정부적인 97년생 과학도 여성의 관점과 기억과 손맛을 통해, ‘러시아’라고 불리는 곳 일부의 생활상에 대해 듣고 상상한다. 뭔가를 아직 잘 모르는 사람이 흔히 그렇듯 나는 짧고 투박한 질문밖에 못하고, 안나는 길고 복합적인 대답을 하는데, 이 배움의 과정이 참 귀하다.
돈바스에 군대 주둔 소식에 출렁거렸던 내 안은 이제 지속적인 멀미 상태가 되었고, 우리 집에서 웃음소리는 사라졌다. 서로 드문드문 이야기를 나누며 특히 두 가지가 안나를 괴롭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는 주변 지인들 중에 러시아 방송의 프로파간다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정부가 검열하는 방송에서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고 상황을 왜곡한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반전 시위이다. 3월 6일 기준으로 러시아의 53개 도시에서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반전 시위를 하다가 체포되었다는데, 시위에 못 나가서 마음이 무겁고 체포된 사람들의 안위도 걱정된다고 했다.
“적어도 내 주변에선 푸틴을 지지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 이번 침공도 대다수가 반대하는데 푸틴이 무서워서 공개적으로 많이 나서지 못하는 거야. 무기력이 학습됐어. 저러다 곧 끝날 거라고 믿고 싶어들 하는데 아닐걸. 아는 교수님의 18살 딸이 정치 활동을 활발히 하다가 경찰 수배를 당했는데, 거리에 감시카메라들로 동선을 추적하고 이웃 사람까지 잡아가서 취조했대. 그러다 잡혀가면 제대로 재판도 못 받고 고문 끝에 수감될 수도 있어. 인터넷 검열도 심하고. 몇 년 새 더 심해졌어. 우리 같은 사람들은 푸틴 죽기만을 기다려.”
슬퍼하고 분노하고 자포자기 심정도 되었지만, 결국 두건을 쓰고 거리로 나가는 러시아 시민들의 얼굴이. 그래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와 같은 표현은 더 이상 쓰지 않기로 했다. 극소수 전쟁광들의 권력 남용이 ‘러시아’라는 이름 뒤에 숨지 않도록. 대신 ‘푸틴의 전쟁’이라는 말이 있고, 전쟁 자금을 대는 친-푸틴 고위층의 계좌를 동결하고 자산을 압수하는 서유럽 금융기관들, 영업 손해를 감수하고 러시아 내 서버와 매장을 급히 닫은 다국적 기업들이 있다.
동맹이냐 적국이냐, 파병이냐 무기 지원이냐, 경제 제재냐 영토 협상이냐 – 이런 군사 제국주의적, 국가 중심적인 접근은 전혀 미덥지 않다. 두더지 게임처럼 전쟁은 곳곳에서 계속 튀어나오는데, 분쟁의 불씨를 일부러 남기고 바깥불만 끄는 것 같다.
이번 사태의 배경 중에도 지난 2014년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령 크림반도자치공화국을 무력 합병하자 그에 대한 대응으로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추진하면서 긴장이 고조됐던 일이 있다. 그러니까 그런 불씨들이 기어이 다시 커져서 사람을 죽이고 있다.
나토는 서유럽 30여개 국가와 미국이 가입해있는 국방 조직으로, 소련의 공산주의 팽창을 막던 냉전시대의 산물이다. 7천만 명을 죽인 세계 2차 대전의 이념 논리로 아직까지 영토 싸움을 하는 이런 국가중심체제를 우리는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납세와 노동력과 각종 재생산으로 도리어 지탱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지긋지긋하다.
다른 보통 사람들의 얼굴을 더 많이 발견하고 상상하고 자기 얼굴도 옆에 나란히 놓는 수밖에 없다는, 뻔한 답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뻔하지만 비겁하지는 않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고 희망이다.
이를테면 지난 일요일 동네 무가지 1면에는 유니콘 인형을 손에 들고 마스크를 쓴 아이가 고속버스에서 내리는 사진이 실렸다. 키예프의 한 보육원에 살던 1-17세 사이 아동.청소년 159명이 우리 도시에 도착하는 장면이다. 적십자, 소방서, 민간 응급 수송 회사 두 곳에서 110명의 봉사자들이 먹을 것을 들고 마중을 나갔고, 피란 온 아이들은 난민 숙소 세 곳으로 나누어 보내졌다.
그 소식을 포함해서 물품 기부처와 후원 계좌와 캠페인 포스터가 동네 단톡방에 연일 수시로 떴다. 다른 도시들에도 피란민 그룹들이 속속 도착했는데, “엄마와 아이 둘 씩 6주 동안 숙박 가능”과 같은 피켓을 든 시민들이 기차역에서 환영했다. 한인들이 모인 페미니즘.생태주의 그룹의 멤버들도 자기 집을 숙소로 내놓고 싶다고, 같이 입장문을 쓰고 기부금을 모으자고 한다.
이곳 독일은 우크라이나 바로 옆 나라인 폴란드의 옆 나라이기 때문에 피란민들에게 접근성이 좋고, 2015년 시리아 내전 때 100만 명 넘게 난민을 받았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사람과 시스템 모두 기민하게 움직이는 느낌이다.
그래, 나는 무엇을 하면 될까?
찍고 싶은 대통령 후보가 없어 차악들 사이에서 내내 괴로워한 한국 사람들, 체포 위험을 감수하는 러시아의 반전 시위자들, 그리고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을 맞이하는 독일 시민들이 내게는 얼마간 서로 닮아 보인다.
사회 현실의 부당함을 못 견디겠어서, 자기 삶을 불편하고 불안하게 흔들어서 라도 뭔가 해보겠다는 그 모습들이 닮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알아봄과 물어봄에 합류해서 ‘우크라이나 사태 때문에’ 주식과 비트코인 값이 떨어지고 대러 수출 시장에 타격이 있는 건 그저 사소한 문제가 되기를. 이 글을 다시 읽을 때에는 폭격이 끝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