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리타 Sep 16. 2022

예쁜 여자가 되고 싶은 올리비아

성전환 중인 친구에게 고백할 속마음을 적다

어느 날, 올리버에게서 페이스북 메시지가 왔다.

그는 몇 년 만에 연락하며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진정으로 퀴어를 지지한다는 걸 알아 달라”고.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황당했는데, 갑작스런 이야기는 더 쏟아졌다.


            “지난 금요일에 오랜 친구한테 드디어 커밍아웃을 했어요. 끝없는 자기 부정과 기만 끝에 이제 mtf  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한 거예요. 이름도 바꿀거예요. 올리비아로. 지금 트랜지션 관련해서 전문 상담을 받으러 가는 길이에요.”


올리버, 아니 올리비아는 애인의 예전 직장 동료여서 몇 번 어울린 적 있는데, 그게 벌써 4-5년 전에 일이고 당시에도 딱히 친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런 메시지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내가 자기한테는 커밍아웃을 하는 불과 세 번째 사람이고, 요새 감정적으로 심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고 했다. 행복했다가도 겁이 나서 몇 시간씩 운다고 했다. 나는 얼른 답장을 보내, 당신의 용감한 결정을 지지한다고, 원하는 정체성으로 사는 즐거움이 다른 어려움보다 크길 바란다고 했다.


이런 '지지 행동'은 나로서는 어렵지 않다. 내가 성적 지향을 퀴어로 정립한 것, 퀴어 인권 문제를 처음 인지한 것은 고등학교 때이고 그 때부터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한 사람들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했으니까. 다른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자신있다고 생각했던 '트랜스 친구 지지하기'는 예상치 못한 난관을 만났다.


이후 올리비아와 틈틈이 메시지를 주고 받는데, 그녀는 매번 자신의 트랜지션에 관한 근황과 심경 고백, 계획이나 다짐을 아주 길게 써 보냈다. 딱히 내 답을 기다리지도 않아서 대화라기보다는 그녀의 일기장을 엿보는 것에 가까울 지경이였다. 그만큼 속에 맺힌 얘기가 많은가 싶어서 나는 가만히 들어주고 있었는데...점점 껄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에서 감지되는 관념들, ‘여자가 된다는 것’ ‘여자로 산다는 것’에 거부감이 들어서.


이를테면 이런 것. 현재 호르몬 요법과 심리 상담을 받고 있는 올리비아는 외모를 ‘여자답게’ 만들고 꾸미는 것에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쏟고 있었다. 거울이나 사진으로 보는 자신이 싫다면서 ‘제대로 여자가 되어야만’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녀가 말하는 ‘제대로 된 여자’는 날씬하고 예쁘고 메이크업과 패션에 능숙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인상을 바꾸기 위해 코수술을 했고, 키가 178cm이니까 75kg 미만을 목표로 다이어트 중이라고 했다. 이미 바지는 거의 안 입고 옷, 액세서리, 화장품을 잔뜩 사면서 네일아트와 메이크업에도 열을 올린다고. '이제 집도 꾸미기 시작'했다고도 했다. 처음에는 ‘에고, 애를 많이 쓰네. 힘들겠다’ 싶었는데 이런 얘기만 쭉 계속되자 나는 정말이지 이렇게 묻고 싶어졌다. “ㅇ씨에게 여자는 다 그런 존재예요? 자신을 예쁘게 꾸미고 자기 주변도 예쁘게 꾸미는 사람. 예뻐지지 않으면 여자가 되어도 소용없는 거예요?”


ㅇ가 외모에 집착하는 것을 이해 못한 것은 아니다. 트랜스젠더가 타인에게 새로 정체화한 성별로 인지되는 것을 뜻하는 ‘패씽(passing)’은 아주 중요한 문제란 걸 알고 있다. 내 주변에 mtf 트랜스젠더 친구들은 모두 패씽에 신경을 많이 쓴다. 모발 이식, 목소리 트레이닝, 성형 수술 등 가능한 다양한 도움을 받고 시스 젠더 (cis gender; 태어날 때 지정받은 성별) 여성들보다 더 보수적으로 ‘여자다운’ 스타일을 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 다수가 대개는 스스로가 충분히 여자답지 않다고 생각하며 슬퍼하고 불안해한다. 그리고 이건 트랜스 젠더들만의 고민이 아니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에 신경 쓰는 생활은 누구에게나 피곤하고 불안하다. 누구나에게 조금씩 그렇지만 여자들이 더 많이 감당하고 산다. 외모 강박, 자기 혐오. 내면의 괴물 같은 그 피곤과 불안에, 여자들은 평생에 걸쳐 힘겹게 싸운다.


그런데 행복해지고 싶어서, 본래 자신을 찾고 싶어서 여자가 되겠다는 올리비아가 제일 먼저 얻게 된 ‘여자다움’이 자기 안에 그런 괴물을 들이는 것이라니. 이 무슨 지독한 아이러니인가...이거 정말 응원할 일 맞나?


사실 그녀가 올리버였을 때, 나는 '여자의 외모에 집착하는 사람'이라고 그를 판단했었다. 날 만나면 “오늘 예뻐 보인다”고 내가 바라지도 않은 칭찬을 했고, 어디에 놀러갔더니 예쁜 여자가 그렇게 많았다는 둥, 자기는 태닝한 금발 여자가 취향이라는 둥 떠벌리고 다녔기도 했기 때문이다. 애인과 나는 “ㅇ는 왠지 집에서 포르노를 많이 볼 것 같다”며 뒤에서 그의 흉을 본 적도 있다. 물론 이제는 그때 그 비상한 관심과 찬양이 자신도 그런 존재이고 싶은 선망 때문이었나 보다, 하고 새롭게 해석된다.


그런 한편, 의심을 떨칠 수 없다. 보여지는 존재, 꾸밈에 애쓰는 존재로서의 여성 외에 그가 갖고 있는 여성에 대한 이해와 공감은 어느 정도일까. 뭘 알고 트랜지션을 한다는 것일까.


트랜지션. 젠더를 바꾸는 것. 젠더는 사실 아주 복잡하고 다층적인 삶의 경험이다. 여자로 살면서 이 세상에서 괴롭고 힘든 일이 많이 감내해야 한다. 이 사회에 여자로서 존재하게 되면 어떤 일들을 겪게 될 지, 올리비아는 제대로 대비를 하고 있는 걸까. 그래도 그녀는 몸집이 큰 여자이니 밤길이 무섭지는 않으려나. 고연봉 커리어가 있으니 임금 차별은 안 당하려나. 거기는 남초 업계라 트랜스 혐오가  없지 않을텐데...나는 한껏 오지랖을 부리며 온갖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의 생각은 여기까지 닿아버린다. 그래, 어쩌면 그녀의 트랜스 욕망은 얼마간 오해와 환상에서 비롯된 지도 몰라. 40대 중반의 컴퓨터 공학자인 올리비아는 올리버로서는 늘 남초 사회에 있었고, 이성애자로서 변변한 연애경력도 없었다. 여자들의 사생활이나 깊은 내면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 기회가 별로 없었을 거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영화나 드라마, 책에 나온 여자의 삶이 실제라고 믿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럼 곤란하다. 비현실적이고 기만적이고 부정확한, 가짜가 수두룩하니까. 여자를 그 무엇보다도 '꾸미는 존재', 그러면서 '관찰당하고 평가당하는 존재'로 그린다. 신데렐라 판타지나 성녀-창녀-악녀 구도를 끝없이 반복하는 게 바로 문화콘텐츠이다.


그래도 잠깐, 이걸 내가 판단해선 안 돼. 생각에 또 제동이 걸린다. 젠더는 꼭 앎의 영역은 아니니까. 감각의 영역, 경험의 영역이 더 크니까 누구보다 스스로가 잘 알아. 질문을 바꾸자. 그는 왜, 어떤 ‘성별 불일치감’ 때문에 자신의 진정한 성별 정체성이 여성이라고 결론 내리게 되었을까.


아, 정말 궁금하다! 그래, 이제야 궁금하다. 이런 걸 잘 알지도 모르면서 나는 여태껏 트랜스를 존중하고 지지한다고 했어. 부끄럽다. 이제껏 나의  퀴어 윤리는 좀 안이하고 낭만적이었다. 올리비아 덕분에 깨친다. 내 세계가 또 쩍 갈라진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또 다시 날아오는 올리비아의 메시지.
“앞으로 이마 수술도 받을 거예요. 난 벌써 패씽이 잘 되고 공중 화장실 쓰는데도 문제없어요. 꿈에서도 여자예요. 지금은 바디 디스포리아(신체불쾌감)가 크지만 호르몬 요법만 끝나면 영영 사라지고 그냥 행복하게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겠죠?”


희망차고 해맑은 올리비아의 말에, 나는 걱정과 번민을 또 시작한다. 마음에 먹구름이 잔뜩 몰려온다. 일단 만날 약속을 잡자. 나는 그의 이 순진무구한 말에 답할 수 있을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할 수 있으려나.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올리비아, 내 말 좀 잘 들어봐요.

여자들은요, 사실 불행해요. 예뻐도 불행하고 안 예뻐도 불행하다고요. 태어나서부터 여태까지 온 세상이 예뻐야 된다고 떠들어대서요.

뭘 사고 뭘 넣고 뭘 빼서라도 무조건 예뻐야 된다고 계속 노력하라고 해요. 하도 세뇌당해서 다들 스스로가 못마땅해요. 근거도 없이 죄책감에 시달린다고요. 많이 먹어도 안 꾸며도 불안하다고요. 너무 너무 지겨운데 다 그만두기는 또 어려워요.

그러다가 폭발하는 거예요. 요즘 여자들, 열에 서넛은 페미니스트가 돼요. 자기 나름의 탈코르셋을 해요. 그러면 좀 자유로워지긴 해도 또 다른 싸움이 시작돼요. 낙인찍히고 눈총 받는다고요.

이게 여자들의 삶이에요. 그나마 올리비아는 월경통이나 출산 같은 건 안 겪으니 다행인데요. 다행이긴 한데요, 바로 그래서 다른 여자들이 같은 여자로 인정을 안 해줄지도 몰라요. 네가 여자의 고통을 아냐면서. 그러니 레즈비언으로 사는 것도 쉽지 않을지 몰라요.

그래도 난  지지해요. 올리비아가 원하는 거니까. 당신이 행복하길 바라요.
34년 동안 여자로 살고 있는 내가 몇 마디 해도 돼요?

‘예쁜 여자’를 목표로 하지 말아요. ‘행복한 여자’가 되어야죠. 그러려면 이렇게 자기 말만 하면 안 돼요. 다른 여자들 말도 잘 듣고 궁금해 해봐요. 나에겐 남과 잘 소통하고 공감할 줄 아는게 여자다움이에요. 여자들끼리 눈 맞추며 깊은 대화를 할 때 나는 인생이 살 만하다 느껴요. 여자 친구들을 많이 만들어요.

그리고 예쁘지 않고도, 꾸미지 않고도 잘 살아야 해요. 내가 누군지, 왜 사는지 예쁜 것과 상관없이 이유를 찾아야 돼요. 무진장 어려울 거예요. 껍데기와 상관없이 자신을 사랑해야 된다고요.

아, 그리고 페미니스트가 되세요. 그래야 세상이 날 공격할 때 스스로를 지킬 수 있지 않을까요?  
세계 최초로 수술적인 성전환을 시도한 남자의 실화를 다룬 영화 <대니쉬 걸>.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지했다던 그 아내의 마음으로, 나는 친구 올리비아를 응원하는 중이다.


이전 09화 모든 것이 질서 안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