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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타 Oct 30. 2022

모든 것이 질서 안에?

특수학교 저학년 교실에서 낯선 내 모습을 만나다

Alles in Ordnung?* 


        *괜찮아요? 문제 없습니까? 라는 뜻으로 흔히 쓰이는 독일어. 직역하면 모든 것이 질서 안에 있습니까? 라는 뜻.

 

그걸 또 어느 틈에 봤을까. E는 자신이 책상에 그린 색연필 낙서를 내가 물걸레로 닦는 것을 본다. 정말 짧은 순간이었는데도 놓치치 않았다. E는 색연필 얼룩이 물에 닿아 번지다가 희미하게 사라지는 것을 본다. 작은 것을 이리도 잘 보는구나. 그 순발력과 관찰력이 놀랍다. 

우연히 일어난 물감의 번짐이 마음에 들었는지, E는 물걸레를 달라고 헛손질을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안 돼 (Nein)”여야만 한다. 그러자 그 애는 별로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손에 침을 묻혀 색연필 얼룩을 문지르기 시작한다. 급하고 열띤 반복 동작. 흡사 작업에 몰입하는 화가처럼 보이지만, 나는 다시 한 번 말해야 한다. 


        “안 돼 (Nein).” 


이곳은 특수학교 저학년 교실. 

나는 근 5년 만에 조직 생활을 다시 하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학교이다. 그것도 특수학교. 미션의 난이도가 높다. ‘학교동반자(Schulbegleiterin)’라는 직책을 맡아 일하게 되었는데, 온전히 내 선택이었다. 해외 생활 10년이 가까워오지만 정착의 감각은 영 느껴지지 않아서, 음, 프리랜서라서 그런가, 그럼 취직을 해볼까, 어떤 일이 좋을까, 이러 저리 궁리하다가 이 일에 지원했다. 시급도 세고 의미도 있고, 내가 자신 있어 하는 ‘가르치는 일’ 언저리에 있는 돌봄 노동. 평일 오전에 특수학교로 출근해 장애 학생을 일대일로 돕는 일이다.  


회사에서 내게 E를 배정할 수 있다기에, 참관 절차를 먼저 밟는다. 사전에 보고서를 꼼꼼히 읽었지만, 훈련된 사회복지사가 규격대로 쓴 독일어 보고서가 와 닿진 않았다. 

직접 본 E는 단정한 밝은 갈색 머리에, 뺨에 혈관이 다 비쳐 보이는 창백한 피부를 가진 아홉 살 아이. 등교부터 쉽지 않아 보인다. 교실 앞 벤치에 고개를 푹 떨구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여러 번 시키는 말소리에 마지못해 실내화를 신고 교실로 떠밀려 들어간다. 담인 선생님은 노래 형식으로 아침 조회를 한다. 


        교사:

        “지금 학교에 있는 나는 안나라고 해요. 오늘 나는 기분이 좋아요.”

        “오늘은 2022년 2월 14일 월요일” 

        “9시 아침 공부, 9시 반 바깥 놀이, 10시 아침 식사...” 


둥글게 둘러앉은 아이들과 교사, 학교동반자들이 손뼉으로 장단을 맞추며 아침 조회를 하지만 E는 전혀 참여하지 않는다. 교실 뒤편에서 몇 번 왔다 갔다 하더니, 닫힌 문 앞에서 손가락을 잘근 잘근 씹기 시작한다. 아이의 검지 셋째 마디와 손등에 붉게 부르트고 튀어나온 여분의 살점들은 그렇게 해서 생겼다는 걸, 나는 알게 된다. E는 또한 양 팔을 새처럼 파닥거리고 발에 용수철이 달린 것처럼 통통 튀어 다닌다. 단어가 되지 않는 소리들만 내지른다. 문득 찡그리고, 문득 웃다가, 문득 눈물을 떨군다. 누구와도 눈을 맞추지 않는다. 좁은 실린더에 구슬을 넣는 섬세한 교구를 곧잘 다루지만 집중 시간은 5분 정도이다. 카프리썬에 빨대를 직접 꽂진 못하지만 쪽쪽 다 마신다. 


‘정도가 심한 자폐 증세를 보임.’ 보고서의 이 문장. 이 문장을 상기하면 E의 행동들은 쉽게 이해되고 정리될 수도 있다. 학교 규칙을 빨리 숙지하자. 전임자가 아이를 어떻게 대하는지 보자. 내 책임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인지만 잘 확인하자. 나도 보고서처럼, 규격대로 참관의 목적을 되새기면 된다. 그런데 그게 너무 안 된다. 어어, 이게 아닌데. 자꾸 딴 생각이 끼어든다. 


이 애들이 오늘 날짜를 아는 게 그렇게 중요해? 자폐아들이 시간을 그렇게 인지할까? E는 독일에 온 지 반 년도 안 됐잖아. 누구라도 낯설고 힘들지. 이렇게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애를, 울부짖고 자해하는 애를 2분이 덜 됐다고 붙잡아 둔다고? 책상에 색연필 좀 칠하면 어때? 나중에 지우면 되잖아. E가 눈을 반짝인 건 그 때 딱 한번 뿐이었어. 안 된다는 말을 한 시간 새 벌써 10번이나 들었어. 


        나: “저기, 선생님. E이 갑자기 우는데, 혹시 아까 안나가 피 흘리는 거 보고 놀란 것 아닐까요?” 

        보조 교사: “아니, 그럴 리가 없죠. E는 다른 사람한테 전혀 관심 없어요.” 


정말, 정말 그래? 아닐 수도 있잖아. 

이름표, 트레이, 이케아 정리 상자, 시간표, 종소리. 열쇠로 잠기는 문들. 허리춤에 열쇠 꾸러미를 짤랑이는 어른들. 안겨오는 아이를 밀쳐내며 엄하게 다그치는 목소리. 

E를 집에 못 가게 하려고 구석에 숨긴 신발. 이게 다 내가 그렇게 숨막혀 했던 독일 사회의 축소판이네. 규칙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Alles in Ordnung? 

젠장, 독일만 그런가, 학교가 다 이렇지. 학교가 어떤 곳인지 잊고 있었네. 19년이나 당해놓고 그새 까먹었어. 규칙, 규격, 규율, 통제. 인간을 ‘사회화’시키는 곳. 


나는 내 속에서 연이어 터지는 의문과 반발에 충격을 받는다. 내가 어느새 이렇게 됐지? 정해진 틀을 이렇게나 갑갑해하고, 동네에서 평판 좋은 학교를 부조리하고 불합리하게 느끼는 인간이 되다니. 당혹스럽다.


게다가 나는 정말로, E와 내가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이곳에 비장애인 어른들보다는 E가 나와 비슷한 존재라고 느낀다. 자폐는 ‘자기 안에 갇혀 있음.’ 나는 현지어가 아닌 언어로 혼자서 정신노동을 많이 하고, 내 노동의 결과는 이곳 사회엔 별 쓸모가 없다. 일에 필요한 소통이나 교류를 비대면 디지털 재택근무로 거의 대체하면서 해가 갈수록 말수도 줄고 있다. 내가 열심히 나를 표현한다고 온전히 이해받을 거라는 기대도 이제 하지 않는다. 나도 어떤 면에서 자폐 상태일 때가 잦다.


뿐만 아니라, 문화와 소비의 블랙홀 같은 서울을 떠나 독일의 소도시로 이주하면서, 적어도 겉으론 주류 엘리트처럼 보였던 내 삶에는 전혀 다른 얼굴도 생겨났다. 동화구연대회와 백일장에서 상을 휩쓸던 아이는 자라서 말과 글로 벌어먹고 있지만, 한편으로 틀린 문법으로 어눌하게 말하는 외국인이기도 하고, 특목고 졸업생에 고학력 유학파이면서도 저소득 프리랜서 외국인 노동자이며, 커밍아웃한 퀴어이고, 길가는 남자들이 ‘니하오’라며 추근대는 작고 만만한 아시아 여자이기도 하다.


 내 삶의 새로운 얼굴은 나를 편견과 오해에 취약하게 하고, ‘감각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니 함부로 평가절하하지 말라’는 윤리와 인권의 문제가 된다. 

그러니까 나는, 꽤나 다른 존재가 되어 오랜만에 학교로 돌아간 것이다. 

내 안에도 E가 있다는 것을, 어쩌면 언제나 있어 왔다는 것을 이렇게 해서 알게 되는 것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일본의 한 청소년이 자신의 내면 세계를 묘사한 수필집 <The Reason I Jump>를 바탕으로 제작한 동명의 다큐멘터리 포스터


E와 나는 결국 매칭되지 않았다. 

다음 학생이 배정되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그동안 관찰자로서 외부인으로서 바라본 학교에 대해 기록해두고, 동네 극장에 걸린 다큐멘터리 <The Reason I jump>를 보러간다. 누구보다 민감하게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일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자폐인들 내면의 분노와 좌절, 고통과 혼란을 묘사하는 영화이다. 

인도, 영국, 시에라리온, 미국의 자폐아들이 자기만의 표현법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알파벳 문자판을 사용해 마침내 영어를 쓰게 된 한 아이는 ‘내 친구 엠마는 나의 북극성이다’라고 쓴다. 다른 아이는 그림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터득해 좀 편안해졌고, 지역에서 작은 전시회를 연다. ‘악마가 씌였다’고 손가락질 받던 시에라리온의 자폐아들은 그 부모들이 세운 학교를 다니며 결국은 동네 사람들에게 다정하게 이름 불린다. ‘문명의 바깥에서 태어나 제도에 속하지 못하지만 그 누구보다 지금을 살고 있는 이들’은 영화 끝에서 문자판에 알파벳을 하나씩 가리켜 말한다. ‘자폐증에 대해서 자폐증과 말하기를 시작한다면 나의 미래는 당신의 미래와 연결될 수 있어요.’ 


나는 머지않아 어떤 학생의 학교 동반자가 될 것이고, 그러면 달리 어쩌지 못하고 그 일에 진심일 것이다. 

닿고자 애쓸 것이다. 

내게 정착의 감각이 절실하듯, E와 같은 아이들에게도 그렇다는 걸, 학교에 다른 어떤 어른보다 내가 잘 안다는 걸 알아버렸으니까. 역설적으로 자폐아를 돕는 나의 일은 나 자신을 자폐 상태에서 끌어내보려는 시도가 아닐까. 


그렇게 다시 한 번, 

나는 내 세계를 고통스럽지만 충만하게, 

혼란스럽지만 의연하게 넓혀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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