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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툇마루 Sep 15. 2022

꿈틀리 인생학교 이야기, 8

모든 십 대가 맘껏 놀 수 있는 세상이 꿈으로 머물지 않길

흔히들 나이대별로 느끼는 시간의 속도가 그 나이의 숫자와 비슷하다고 하는데, 꿈틀리에 있는 십 대들이 느끼는 속도는 적어도 10km대는 아닌 듯싶다. 특히 2학기의 하루하루는 그 속도가 남달리 빠른 것 같다.

아이에게 전해 듣기로, 우선 한 학기를 함께 지낸 친구들과의 2학기는 그 분위기부터 판이하다. 서로에 대한 긴장감은 더 이상 꺼낼 필요가 없이 편안해 보인다. 더군다나 2학기는 함께 만들어가야 할 큰 프로젝트가 많아 더욱 뭉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2주간의 덴마크 이동학교, 벼농사 추수, 김장(예정) 그리고 1학기부터 해오던 개인 프로젝트 마무리를 하다 보면 어느새 졸업이 코앞에 다가와 있을 테니.


2학기를 시작하고 첫 의무 외박은 1주일 만이었다. 새로운 수업들이 생겼고, 선택 수업 중엔 한국사와 손다룸을 선택했다며 조잘조잘 지난 일주일에 관한 이야기 해주었다. 1학기 때 하던 동아리 중에 변경이 가능한 것은 변경해가면서 자신의 관심사를 찾아가는 듯했다. 아이는 새로운 학기에 대한 기대감으로 약간 흥분 상태였고, 목소리에서 열정마저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들른 동네 마트에서 이제 커피를 시작해야겠다며 다디단 커피 한 팩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일주일 중 가장 졸리는 시각인 월요일 오후가 한국사 수업인데 그 시간이 너무 흥미로워서 졸 수 없다는 이유였다. 자신에게 펼쳐질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기대감이 이렇게 표현되었다.


실내에서 진행된 수업 외에 2학기 4주간의 바깥 활동을 정리해보면.

방학 동안 쑥쑥 자란 고구마 밭의 잡초 제거, 농사 활동 후 학교 뒷마당에서 흠뻑 젖도록 물장난하며 놀기.

낙조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강화도에 있는 꿈틀리, 낙조 보러 갔다가 물놀이로 변경된 나들이.

선택 외박 주말 학교에 남은 아이들에게 선물 같은 추억, 학교 마당에서의 캠핑.

잠 많은 10대들의 대단한 새벽잠 포기, 친구들과 함께 연미정에서 일출 보기.

추석을 앞두고는 송편 빚고 쪄서 배불리 먹기.

2017년 tvN에서 방영된 프로그램 <행복 난민> 1-6회를 보고 덴마크에 대한 이야기 나누기.

덴마크 자유여행 계획을 짜면서 같은 팀 친구들과 의견 조율하기.

덴마크에서 만날 친구들에게 줄 선물 만들기.


농사 활동 후 물놀이


친구들과 함께 낙조 속에서 물놀이


선택 외박 주말에 남은 친구들에게 아카쌤이 만들어주신 캠핑 추억


새벽잠을 포기한 아이들에게 선물 같이 떠오른 해


추석을 앞두고 송편 빚기


덴마크에서 만날 친구들을 위해 만든 선물/ 2학기의 어떤 날 전해온 아이의 마음




서로를 맞추어 가는데 에너지를 가장 많이 쏟았던 1학기를 지내고, 편안한 공동체가 가능한 2학기를 지켜보면서 뾰족이 돋아나는 한 가지 생각이 있다. 십 대들도 놀아야 한다는 것. 

어린아이들만 놀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도 놀아야"만" 한다. 하지만 이 나라의 교육 현실에서 너무나 동떨어진 생각이라 마음이 아플 뿐이다. 꿈틀리 인생학교의 일정은 대부분 오전에 하나 오후에 하나 그리고 저녁 모임 후 묵학 시간이다. 여전히 공교육의 짠내가 덜 빠진 엄마로서는 쉬는 시간이 더 많아 보이는 날은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이번 의무 외박 주말을 보내고 학교로 아이를 데려다주는 길에 물었다.

"안아, 꿈틀리 시간이 반 이상이 지나갔는데 달라진 점이 있을까?"

"응, 내가 이제 적응력 하나는 씹어먹지." 다소 과격한 표현으로 자신 있게 말해주었다. 공동체 생활은 어지간해서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리고 책임감과 자신감도 자랐다고 말해주었다. 그 답변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놀아야 하는구나. 함께 놀면서 성장하는 부분이 있구나.' 

밖에서 보기에 노는 시간이 많아 조바심 나는 그런 날도, 아이는 자신의 시간에 대해 의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는 나름 잘 보낸 날에 대한 뿌듯함을 점점 자주 표현했다. 비단 우리 아이만 그럴까. 아이들은 모두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들었다. 다만 아이들은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운용해볼 기회가 없을 뿐이다.


아이들이 덴마크로 출국하는 날이다. 그곳에서도 아이들은 또 다르게 자신의 시간을 운용해볼 기회를 가질 것이다. 새로운 곳에서의 하루하루가 "우와!" 감탄이 터지는 날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곳에서의 시간이 언젠가 필요한 순간 필요한 모양으로 아이에게 거름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사진 출처: 꿈틀리 인생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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