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에 걸친 꿈틀리 인생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아이들이 1년 동안 해온 개인 프로젝트를 발표, 1년을 돌아보며 꾹꾹 눌러쓴 아이의 에세이 낭독과 부모의 소감을 나누는 간담회 시간 그리고 졸업식.
졸업장을 전달하는 동안 여기저기서 화장지가 바삐 오갔다. 7기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떠올리며 아카쌤(교장)의 긴 고민 끝에 만들어진 단 하나뿐인 졸업장 글귀. 그것을 읽고 전달하는 아카쌤도, 받아 드는 아이도, 바라보는 부모도 눈물을 참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졸업장을 받아 든 다 큰 아이들이 선생님과 진한 포옹을 나누는 모습에서 그간 어떤 시간을 지나왔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기념 촬영으로 모든 순서가 끝난 후 기숙사에 남은 짐들까지 모두 차에 실었지만, 정작 아이들은 쉽게 차에 오르지 못했다. 본인들의 오만가지 감정과 예상치 못한 경험이 진하게 베인 곳을 떠나는 것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쉽지 않은 듯 보였다.
꿈틀리에서 '달리'라는 별명으로 살았던 아이의 1년. 마찬가지로 오만가지 감정과 예상치 못한 경험을 했을 아이가 간담회 시간에 낭독했던 에세이를 (아이의 허락을 받아) 그대로 옮겨본다.
‘1년이 지났다고?’라는 말은 일 년을 마무리하는 말로 자주 사용하죠. 이제까지는 이 말을 ‘(별로 한 게 없는 것 같은데) 1년이 지났다고?’라는 의미로 사용했다면, 이번에는 ‘(2년 정도 지난 것 같은데) 1년이 지났다고?’라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꿈틀리는 저에게 미디어를 벗어난 아날로그적인 추억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저는 그 도움을 받아 같은 시간을 놀았지만, 전혀 다른 차원의 생동감과 뿌듯함을 선물 받을 수 있었어요.
‘놀다’라는 건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 강렬한 순간들을 체험한 것만으로도 저는 꿈틀리에 오기 정말 잘했다!라는 생각입니다.
이곳에서 놀면서 ‘어떻게 쉬는지’에 대해 깊이 있게 배울 수 있었어요. 열심히 무언가를 학습하고 일하는 만큼 쉬는 것도 중요하더라고요.
그 균형을 맞추는 게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꿈틀리에 오기 전 제가 상상했던 쉼은 그저 침대에 누워 맛있는 젤리를 먹으며 유튜브를 보는 장면이었어요.
1년이 지난 지금엔 바로 생각나는 장면은 없지만 아마 설명하자면 한여름에 앞뒤 재지 않고 물놀이를 시작하던 꿈틀리에서의 추억이 지금 제가 생각하는 쉼과 가장 가까울 듯해요.
그때 당시에는 나름 물속에서 치열했을지 몰라도, 그 순간이 계속 제 속에 남아있어요. 무엇이든지 깊이 이해할수록 정의하기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제가 쉽게 문장으로 쉼을 표현하지 못했던 것처럼요. ‘정의를 내리다’라는 개념은 그 대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봤을 때 이루어질 수 있는데, 그 대상과 가까워질수록 주관적이어져서 객관적으로 될 수 없는 게 당연한 수순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쉼을 정의하기 어려워졌다는 사실은 더할 나위 없는 희소식이에요.
그리고 꿈틀리의 친구들이 모두 한번쯤은 고민해봤을 주제를 꺼내보고자 해요. 저는 꿈틀리에 오기 전 홈스쿨링을 하며 나 자신에 대한 고민을 이미 실컷 해 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의 정체성보다는 관계에 초점을 맞추며 지냈어요.
홈스쿨링을 하며 제가 놓친 건 흔히들 걱정하는 사회성이 아니라 남과 거리를 둘 줄도 아는 기술이었어요.
진짜진짜진짜진짜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인간..이라는 것에 대해 기약 없는 기대도, 이유 없는 실망도 하지 않는 안정적이고 방어적인 타입이에요. 그래서인가 감정의 폭이 크지 않게 별생각 없이 넘겨버리는 편입니다.
때문에 친구들과의 관계를 맺는 건 수월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와 정말 맞지 않는 사람과의 인연은 거리를 둘 줄도 아는 게 현명하더라고요.
물론 저의 뚜렷한 변화도 있었습니다. 꿈틀리에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수많은 배움과 깨달음, 변화의 연속이었어요. 부모님 외에 이렇게 까지 가까워졌던 사람들도 처음이라 저도 저에게 많이 놀랐구요. 이런 저의 변화와 기쁨을 알기에 더욱 친구들의 변화를 도와주고 싶었어요.
음.. 남의 변화를 기다리는 데에 뿌듯한 적이 많았지만 정말이지 질리기도 했어요. 그런 저의 모습에 조금의 자괴감에 빠진 적도 있었네요..ㅎㅎ
친구들의 변화에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는지는 잘 모르겠어요ㅠ
1학기 초반에는 친해지기에 여념이 없었고, 2학기 후반에는 ‘내가 이상한 건가?’ 하며 나 자신을 되돌아봤어요. 2학기 초반에는 ‘다 그렇구나’를 깨달았고 2학기 후반에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연습했죠.
부끄럽지만 우리는 아예 다 다른 사람이라는 걸 1학기가 끝나갈 때야 알았던 것 같아요. 나와 너의 균형은 아마 제 평생의 숙제로 남지 않을까 싶네요. 모두가 좋은 면도 가지고 있었던 친구들이었기에 더 많은 고민이 필요했어요.
아예 나빴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등을 돌렸을 테지만, 오히려 그 친구들의 좋은 점도 너무 잘 알았기에 더 힘들었어요. 그런 고민들 속에서 인간의 양면성에 감사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했었네요…
이렇게 제 이야기를 하다 보니 꿈틀리에서의 배움이 정리되는 느낌이네요! 많은 걸 배웠지만 가장 기억에 남은 건 쉼과 관계에 대한 배움이었어요.
그리고 그 두 개의 배움에 모두 등장하는 중요한 키워드는 균형이에요. 일과 쉼, 나와 너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균형을 맞추는 일은 인생의 목표라고 해도 될 정도로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꿈틀리는 제게 ‘균형’을 알려주었어요.
꿈틀리에 지내면서 많은 분들께 꿈틀리는 너에게 어떤 곳이야?라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는데요, 그럴 때마다 얼버무리는 말로 자리를 모면하곤 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자신 있게 저의 꿈틀리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꿈틀리는 ‘시소’ 였습니다. 저에게 처음으로 균형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즐거운 추억을 선사해 주었던 시소 위에서 여러분 덕분에 정말 즐거웠습니다!
1년 동안 함께 했던 완수쌤, 파도, 보름, 오곡, 동묘, 아카, 민들레, 라니 선생님과 15명의 친구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어요! 모두가 제 최고의 스승님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꿈틀리 인생학교는 갭이어 기숙학교의 형태는 당분간 쉬어가고 있습니다. 대신 프로젝트의 형태로 이어간다고 하니 많은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