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열두 살 아이와의 책수다> 그 이후
아이가 열여섯 살이 되던 해 2월 서른세 번째 책수다를 끝으로 서른네 번째는 이어지지 않았다. 아이가 1년 간 기숙학교(꿈틀리인생학교)에서 지내면서 함께할 시간이 짧았던 탓도 있지만, 우리 셋 모두 처음 책수다를 시작할 무렵의 열정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 대신 작년 한 해는 "디지털 디톡스 데이"가 잘 정착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염이 어느 정도 진정되고 다시 여행이 시작되면서 좋아하던 여행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속초나 강릉 여행을 자주 하는데 그쪽으로 갈 때면 어김없이 첫 스케줄은 문우당서림이다. 시간을 넉넉히 갖고 그곳에 들러 그 여행 동안 각자 읽고 싶은 책을 한 권씩 고른다. (다른 때는 조금이라도 더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온라인 서점을 이용하지만 여행지에서 들른 서점에서는 가능한 구입을 하는 편이다.) 여행 동안 그 책을 다 읽든 한 챕터만 읽든 자유롭지만, 디톡스데이로 정한 날 스마트폰 사용은 엄격하다. 점심 식사 전후 30분, 저녁 식사 30분으로 서로 양심껏 지키려 애를 쓴다.
열여섯이 된 아이와 책의 관계는 이 정도로 유지되었고, 올해 열일곱이 된 아이는 자의 반 타의 반 책을 다시 가까이 두게 되었다. 올해부터 시작한 거꾸로캠퍼스에서의 배움은 자료를 찾을 일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책이나 논문, 기사 들을 찾을 일이 잦아졌다. 그간 책수다를 하면서 같이 나누고 싶은 질문을 정리하고, 받은 질문에 답을 하고 했던 것이 자료를 찾고 정리하는 것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솔직히 뿌듯한 마음이 든다.
올해 1월쯤, 장난스럽게 요즘 우리 중에 책을 가장 많이 읽는 사람이 누구냐 떠들다가 결국 메뉴 선택권을 가지는 내기로 이어졌다. 매월 마지막 날에 읽은 권수가 가장 많은 사람이 그다음 주말 저녁 외식 메뉴를 정하기로 했다. 읽기 시작한 시기와 상관없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은 날짜의 해당 달을 기준으로 정했다. '이러다 안이가 일부러 빨리 읽는 거 아냐?' 하는 걱정이 살짝 생기기도 했지만, 현재까지 즐겁게 이어져오고 있다. 기분 좋은 부담감을 살짝 가지고 선의의 경쟁을. 저녁 메뉴 그게 뭐라고.
모든 부모가 그렇듯 잔소리는 최대한 피하고 싶은데, 이 게임(?) 덕분에 아이에게 책 읽으라는 잔소리는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엄마 아빠가 읽은 책 목록을 적는 행위가 잔소리를 충분히 대신해 준다.
또 하나의 장점은, 가족들이 서로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 읽을 책을 정할 때 참고하기도 한다. 책수다처럼 날짜와 시간을 정해서 모여 앉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게 그 책에 대해서 묻게 되는 것도 장점이다.
이렇게 4년 간의 책수다는 세 식구 틈 사이사이에 숨어 들어서 필요한 타이밍에 적절히 존재감을 드러낸다. '우리 그런 시간이 있었어'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