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툇마루 Jul 08. 2021

아이와의 갈등을 견딜 수 없다면


홈스쿨을 시작하기 전 주변 사람들이 힘들지 않겠냐고 자주 물어왔다. 그럴 때마다 "난 내 생활을 할 거야. 아이는 큰 줄기만 같이 의논해주면 알아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라고 대답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은 어마어마한 착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홈스쿨의 주체는 아이고, 우리 부부는 옆에서 지지해주고 도움을 요청할 때만 도와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홈스쿨의 주체는 아이"만"이 아니었다. 아이가 더 이상 등교를 하지 않기로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가족 전체를 흔드는 더 큰 변화가 요구되었고, 구성원 모두가 주체가 되어야 했다. 

온 가족이 아이의 스케줄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홈스쿨로 인한 기본적인 생활방식 변화에서부터, 아이에게 얼마만큼의 독립이 적절하고 부모의 개입은 얼마만큼이 적절한지에 대한 것 등이었다. 예를 들어, 아이가 하루 일정 계획하고 본인에게 맞는 생활 패턴을 찾아 정착하기까지 기다림이 필요했다. 아이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 아이의 경우 자신의 패턴을 찾아 안착하는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었고, 부모는 그동안 기다리며 때로는 모른 척 때로는 알은 척해야 하는 타이밍을 잘 구별해야 했다. 그리고, 아이와 같은 공간에 있으나 아이에게 향하는 안테나 접기, 삼시세끼 차리기와 정리하기에 당번 정하기 같은 세세한 것들이 많았다.

 

홈스쿨을 하면서 내 아이지만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중에 하나의 경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더 더 느긋한 아이라는 것이었다. 생활 패턴을 찾아가는 동안 아이의 느긋함이 어찌나 답답하던지 참지 못하고 버럭 하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없는 의지를 끌어모아서라도 지켜야 할 것이 두 가지 있었다. 첫째로, 아이도 선택한 이 길에 대해서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 놓지않기. 두번째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으니 보기좋은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는 욕심 내려놓기. 나도 모르는 사이 높아지는 기대치를 수시로 깎아내면서 아이를 향한 믿음을 지키는 것이 가장 에너지를 쏟아야 할 부분이었다.     

아이의 느긋함 외에도 또다른 의외의 모습을 만나거나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기도 했다. 사회가 정해둔 길을 갔더라면 부딪히지도 않았을 동시에 모르고 지나갔을 것들이었다. 당시에는 힘들게 느껴지는 시간들도 오히려 정답이 없으니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길이 되는 경험도 하게 된다. 서툰 걸음에 부딪힘도 흔들림도 생기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손을 꼭 잡게 되기도 한다. 부모는 아이의 다음 스탭을 예상해보기도 하지만, 중심을 잘 잡고 바라만 보는 인내가 필요하다. 

흔들리며 가야 하는 길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더 대화하고 더 도전하는 가족이 되어간다는 홈스쿨의 큰 장점이다. 그리고 아이는 수동적인 학교생활보다 스스로 하루하루를 책임지는 것에 미약하게나마 연습이 되어간다.




"함께 있는 시간이 긴 만큼 아이와 다투는 횟수도 더 많지 않아?"라는 질문에 '음...' 생각해본다. 초반에는 정말 많이 그랬다. '차라리 매일 학교 보내고 (부모에겐 단점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안보는 게 낫지...' 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 그 기간 또한 필요한 과정이었고, 그 과정을 지난 지금은 오히려 서로를 이해하는 방법을 각자 찾은 것 같달까. 얼마 전 아이가 문득 그런 말을 했다. "엄마, 내가 엄마 존경하는 거 알아요?" 사랑 고백은 자주 하지만 이런 류의 고백은 잘하는 편이 아니어서 놀라 물었다. "몰랐지. 근데 쑥스럽지만 어떤 면이 존경스러운지 궁금한데?" "엄마는 삶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아요." 이 말을 듣는데 코끝이 시큰하면서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 동안 내가 못난 모습만 보인 게 아니구나 싶어 안도감이 들었다.

1년 하고 6개월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점점 그 부딪힘이 줄어들면서 요즘은 그조차도 아주 드물다. 또한 우리의 부딪힘을 잘 해결해갈 수 있는 건, 어쩌면 "수다"의 힘일지도 모르겠다. 정기적으로, 비정기적으로 갖는 우리 가족의 수다 시간.

이전 01화 간절히 바라는 게 아니라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