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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툇마루 Aug 05. 2021

부모가 변하기 싫다면



아이가 초등 저학년 때 있었던 일이다. 아이는 학교에 가고 한참 뒤, 같이 학교에 가있어야 할 신발주머니가 현관 앞에 그대로 놓여있는 걸 보게 되었다. 아이가 다니던 학교는 실내화가 없을 경우, 교실과 복도는 물론 화장실까지 양말만 신은 채로 다녀야 했다. ‘학교에서 곤란할 텐데 어쩌지?’ 하는 걱정에 신발주머니를 들었다 내렸다 했지만, 결국 가져다주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준비물을 하나씩 빼먹는 일이 잦은 아이를 위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참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육아 문제의 대부분이 참고 기다리는 것이 해결책 같다.- 


다른 날보다 아이의 하교시간이 기다려졌고, 어떤 표정으로 들어설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엄마의 괜한 걱정이었다고 말해주듯 하교하고 돌아오는 아이의 표정에는 어떤 그늘도 없었고 오히려 웃는 얼굴이었다. 가방을 푸는 아이에게 나는 실내화 없이 괜찮았냐고 물었고 아이는 그 즐거운 표정의 이유를 풀어놓았다. 교문에 들어 서고 나서야 손이 빈 것을 알았고, 교실로 들어가자마자 실내화를 대충 만들어 신었단다. 교실에 있던 마분지 위에 발을 대고, 그대로 그려 오리고, 그것을 슬리퍼처럼 발바닥에 붙여서 다녔단다. 아마 투명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였던 모양이었다. 그 종이 실내화 덕분에 친구들과 오히려 재미있었다고 전해주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남편이 자주 하던 말이 생각났다.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미리 도와주진 말자.” 


엄마의 특징인지 나의 성향인지 모르겠지만, 아이의 필요를 미리 알아채고 곤란을 겪지 않게 챙겨주고 싶은 안테나가 늘 세워져 있다. 그 안테나를 접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일상의 사소한 것에서부터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주자는 남편의 말이 옳다는 걸 알기에 아직도 미리 챙겨주지 않기를 훈련 중이다. 


이래서 홈스쿨을 할 때 부모 두 사람 모두의 비슷한 힘이 필요하다. 주양육자 혼자서도 균형을 잘 잡을 수 있으리라 믿고 애써보지만 균형을 잃어버리는 건 순식간이다. 너무 멀리 가고 나서 돌이키기보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조율해가며 방향을 잡아가는 것이 아이와 부모 모두 지치지 않고 오래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미리 챙겨주지 않기보다 훨씬, 어쩌면 홈스쿨 이후 가장 힘들었던 참기 훈련은 아침잠 참기였다.

홈스쿨 이전의 나는 그 무엇을 준다 해도 망설임 없이 아침잠을 선택하는 사람이었다. 아이가 학교에 다닐 때는 어쩔 수 없이 일어나 챙겨 보낸 뒤에 꼭 다시 누워 한 시간 정도 뒤늦은 아침잠을 채웠다. 하지만 아무리 아침잠을 사랑한다 하더라도 홈스쿨을 시작한 이상, 5분만 더 자고 싶은 유혹을 매일 아침 이겨내야 했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말로만 아이에게 지시하지 말고 생활하는 것으로 보여주자는 생각 했고, 그렇게 해왔기에 아이를 깨우고 나만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아이는 아이대로 홈스쿨에 '등교'해서 스케줄을 시작하고, 남편은 남편대로 회사에 출근해서 주어진 일을 감당하고, 나는 나대로 개인적인 일정을 감당하는, 삼박자가 맞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각자 역할은 다르지만 하루를 보낸 후의 뿌듯함을 가지고 저녁에 만나서 웃고 떠드는 그림이 아침잠을 이겨내도록 도와주었다.    


홈스쿨 초기에 아이는 자신에게 맞는 생활 패턴을 찾아보느라 느지막이 일어나서 하루를 살아보기도 하고,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살아보기도 했다. 오전 내내 책을 읽고 오후에 검정고시 준비를 해보기도 하고, 일어나서 바로 공부를 시작하고 오후를 자유롭게 보내기도 했다.-코로나로 인해서 바깥 활동은 운동, 도서관, 서점 정도로 국한되었다.- 느지막이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던 기간에는 나도 내심 좋긴 했지만, 아이는 하루가 금방 가버리는 느낌 때문에 결국 그 패턴을 선택하진 않았다. 아쉽게도.


다양한 경우를 거치고 느긋한 아이의 성격에 맞춰 결국 정착한 오전 생활 패턴을 소개하자면, 7시 40분에 스스로 일어나서 (깨워주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홈스쿨 등교 준비를 하고, 아침식사 준비를 돕고, 여유롭게 식사한 후 양치를 하고 책상에 앉으면 9시가 된다. Q.T 시간을 잠시 갖고 수학 수업을 시작한다. (학습에 대한 구체적인 부분은 따로 정리 예정.)

아이의 오전이 이렇게 정리된 덕분에 나의 기상 시간도 7시 40분으로 정착이 되었다. 아이보다 더 일찍 일어날 자신은 없었지만 아이보다 늦게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나름의 규칙을 정하고 같은 시각에 일어나 아이와 함께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처음엔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하루하루 지나면서 아침 정해진 시각에 이불을 박차고 나옴으로 인한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시작한 규칙적인 생활이었지만 체력적인 면뿐 아니라, 시간 사용에 있어서도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어쩌면 홈스쿨의 가장 큰 수혜자는 아이보다 내가 아닌가 싶다.      

이제는 아침잠을 참는 힘겨움보다 새롭게 시작할 하루에 대한 기대감이 항상 한 발 더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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