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책수다가 계속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시간들이 쌓여온 때문일지 생각해본다.
그 시작을 따져보자면, 다양한 주제의 수다가 취미인 남자와 쌓이는 생각들을 내뱉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가 만나 부부를 이룬 것일 수도 있겠다. 우리 부부가 수다가 많다보니 처음 책수다를 시작할 때 아이가 말을 많이 하지 않더라도 엄마 아빠의 수다를 듣는 중에 말이 쌓이고 생각이 쌓여 언젠가 자발적인 수다가 가능하리라 믿었다. 그리고 지금은 감사하게도 셋의 수다량은 거의 비슷하다.
그리고, 여섯 살 무렵부터 열 다섯 살인 지금까지 매일 잠들기 전 아빠의 책읽어주는 시간 30분. 그 시간이 쌓여온 덕분인 것도 같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는 엄마가 그림책을 읽어주며 아이를 재우다가 여섯 살 무렵부터 아내의 “퇴근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남편이 아이를 재우기 시작했다. 처음엔 책을 읽어주는 톤도 분위기도 영 어색했지만, 어느새 책 읽어주기 고수가 되어 밤 10시부터 30분간은 아이와 아빠에게 필수 일과가 되었다. 그 덕에 아이는 밤 10시 이후엔 모든 것을 아빠와 상의한다.
하나 더 꼽아보자면, 경청이 아니었나 싶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엄마를 부르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아이와 눈을 맞추어 이야기를 들었고, 어른의 입장에서가 아닌 아이의 입장에서 들어주려 노력했다. 평소에 진심, 진정, 솔직 이러한 것에 무게를 두는 편이라 대화에 집중하기 힘든 상황일 때는 대충 듣고 넘기기 보다 엄마가 지금은 네 말을 잘 들을 수 없겠노라고 말하고, 상황이 바뀐 다음을 약속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대한 약속은 지키려 했고. 억지로가 아닌 즐겁게 대화하며 놀다 보니 어느새 아이도 맘껏 떠들게 된 것이 아니었나 싶다.
두 번째 책수다는 지난 수다에 이어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말글터) 2장이었다. 첫 책부터 부담을 느끼지 않기 위해 1,2,3장을 나누어하기로 했고, 이 책 속의 풍성한 수닷거리가 한 번으로 끝내기엔 아쉽게 만들기도 했다. 두 번째 책수다 시간은 이 책 170페이지 “지옥은 희망이 없는 곳”이라는 소제목이 특별하게 들려 우리도 “지옥은 OO이 없는 곳”이라는 문장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것 하나만으로 두 번째 책수다를 꽉 채웠다. (쏟아져 나온 그대로 옮겨보았다.)
안: 지옥은 음식이 없는 곳
안: 〃 엄마 아빠가 없는 곳
안: 〃 배려가 없는 곳
화: 〃 포옹이 없는 곳
화: 〃 자유가 없는 곳
안: 〃 기쁨(행복)이 없는 곳
훈: 〃 쉼이 없는 곳
훈: 〃 죽음이 없는 곳
안: 〃 친구가 없는 곳
화: 〃 감동이 없는 곳
안: 〃 이유가 없는 곳
화: 〃 질문이 없는 곳
안: 〃 사랑이 없는 곳
안: 〃 “내”가 없는 곳
화: 〃 시작과 끝이 없는 곳
안: 〃 음악이 없는 곳
화: 〃 대화가 없는 곳
안: 〃 크리스마스가 없는 곳
화: 〃 구원이 없는 곳
안: 〃 기다림이 없는 곳
안: 〃 나무가 없는 곳
화: 〃 아침이 없는 곳
안: 〃 봄이 없는 곳
화: 〃 배움이 없는 곳
안: 〃 매력이 없는 곳
화: 〃 아름다움이 없는 곳
훈: 〃 공감이 없는 곳
화: 〃 상상이 없는 곳
안: 〃 추억이 없는 곳
훈: 〃 용기가 없는 곳
화: 〃 지켜야 할 것이 없는 곳
훈: 〃 고향이 없는 곳
(남편이 끼어들지를 못한 건지 아이와 나만 계속 나눴다는 걸 몰랐는데, 막상 정리해보니 틈을 주지 않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다.) 어찌 되었건 이 두 번째 책수다는 우리 가족에게 손에 꼽히게 기억되는 수다 시간 중 하나이다. 정말 즐겁게 떠든 시간이기도 했지만, 특별히 발제가 훌륭하지 않아도 충분히 서로를 알아가며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세한 책수다 내용은 아래 매거진에서 정리하고 있습니다.
열두 살부터 시작한 책수다 매거진 (brun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