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첫 번째 PT 수다
"수다스러운 홈스쿨"을 지향하는 우리 가족이 정기적으로 가지고 있는 수다시간이 있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책수다 - 월 1회 정도로 하고 있고 현재까지 스물여덟 번.
두 번째로 시작해서 가장 편하게 즐기고 있는 수다시간이 영화수다 - 비정규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최소 격월에 한 번씩은 가지려 하고 현재까지 일곱 번.
2020년 가장 늦게 시작했지만 인기리에 진행되고 있는 PT수다 - 월 1회 현재까지 여덟 번 진행되었다.
(지난 여름은 검정고시 집중 준비 기간으로 수다시간들을 잠시 멈추었다가 이제 책수다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같은 책을 읽고 있는 중이다.)
작년 초 우연히 TV 프로그램의 짧은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한 방송인의 두 딸이 엄마 앞에서 준비한 파워포인트를 화면에 띄워 발표하는 장면이었다. 그 영상을 보자마자 남편과 아이에게 제안을 했고, 우리 가족에 맞게 바꾸어서 해보면 재미난 시간이 되겠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시작하게 되었다.
방송에서 보았던 것과는 다르게 우리는 아이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준비하기로 했고, 평가는 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집중해서 잘 듣고 질문하는 것으로 발표자에 대한 예의를 보이기로 했다.
각자 관심 있는 주제를 선택하고, 그에 관련된 자료를 찾아 ppt를 만들어서 15-20분 분량의 발표를 준비했다. 무엇보다 주제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오래 걸렸고, 이것은 첫 발표뿐 아니라 그 이후로도 가장 쉽지 않은 부분이었다. 준비하는 기간 동안 서로 진행이 얼마나 되었냐고 물으며 서로의 진행상황에 킥킥거리기도, 발을 동동거리기도 했다.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과 자료 만들기에 익숙한 남편은 늘 아이와 나에게 좋은 긴장감을 주었다.
2020년 6월 주말, 첫 PT수다. 우리는 파자마를 벗고, 깔끔한 복장에 머리도 빗고 약간의 의도된 긴장감을 가지려 했다. 거실에 모여 빔을 켜고 스크린을 내리고 손에는 원고와 포인터를 들고 발표를 시작했다.
첫 발표자는 안.
아이가 준비한 주제는 <해리포터: 호그와트 이야기>였고 내용은 네 명의 호그와트 창립자들과 그들이 가진 각각의 이념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이는 후플푸프의 차별 없는 교육이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는 의견과 함께 "창립자 네 명을 조사하며 각자의 생각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편견 없는 시선을 가질 수 있는 제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는 소감으로 발표를 마무리했다.
두 번째 발표자는 훈. 남편의 주제는 <인공 지능의 역사>였다. '딥블루, 왓슨, 알파고 리, 알파고 마스터, 알파고 제로, 알파 제로'를 소개하며 인공 지능의 주요 사건 위주로 정리해 주었다. 평소 SF소설을 즐겨 읽고, 과학 팟캐스트도 즐겨 듣던 남편의 발표는 깊이가 달랐고, 그 덕분에 아이에게도 내게도 몰입해서 들을 수 있었다.
세 번째로 발표한 나의 주제는 <커피의 역사>였다. 커피라는 이름의 유래와 커피 열매에 대한 전설, 커피와 와인, 최초의 커피하우스, 우리나라의 첫 커피에 대한 내용을 간략히 소개했다.
좋아하는 것으로 주제를 선택한 덕분에, 준비하는 과정부터 발표하고 질문하는 시간까지 셋 모두 즐기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고, 수다시간 내내 '공부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준비하는 동안도, 발표하는 날도 아이는 한 달에 두 번씩 하자고 우리를 계속 설득할 만큼 신나 있었다. 남편도 나도 구경꾼이나 평가자가 아닌 아이와 동등한 입장으로 함께한 만큼 아이의 그 마음을 잘 알 수 있었다. 아이의 바람대로 격주로 PT 수다시간을 가질 순 없지만, 격월 1회 하기로 했던 원래 계획을 수정해서 아이는 매월, 남편과 나는 격월로 번갈아 발표하기로 결정했다.
책수다는 약속된 날이 되기 전까지 각자 책을 읽고 발제자는 수닷거리를 준비해야 하고, 영화수다는 셋 모두의 취향에 고려해 보고 싶은 영화를 정하기만 하면 된다. 그에 반해 PT수다는 특별히 1-2주 전부터 준비할 것이 꽤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이 계속 즐겁게 유지되는 이유가 뭘까 아이에게 물어보니, 평소 관심 있었던 것을 좀 더 깊이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내가 아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공유하는 기쁨이 있다고 말해준다. 공유는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동일하게 즐거움을 주는 행위인가 보다.
_ 그리고 차후에 정리되어 덧붙이는 PT수다 주제들
https://brunch.co.kr/@@bi6L/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