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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툇마루 Dec 07. 2023

장난감에 대한 개똥철학

외동아이와 장난감 없이 놀기

아이들 장난감 가격이 삼사 만 원은 예사다. 게다가 시리즈로 이어 만들어지는 장난감이라면 감당하기 쉽지 않다. 아이가 장난감이 한창 필요했던 시기(십이삼 년 전)에도 장난감이 너무 고가이기도 했고,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에 (내가)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 양육자도 흥미가 있는 장난감이어야 아이와 제대로 놀 수 있다는 생각이다. 아이가 하나이다 보니 양육자가 같이 노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는 데 같이 즐거워야 금방 질리지 않고 오래 즐길 수 있다. 나의 경우, 대부분의 놀이는 같이 즐겁게 할 수 있었는데, 인형 놀이만큼은 같이 해주지 못했다. 그게 그렇게 하기 싫고 어려웠다.- 이런저런 이유로 집에 있는 집기류를 이용해서 노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아이와 즐거운 놀이 추억이 하나둘 쌓였고, 나름 장난감에 대한 철학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장난감 구입에 대한 개똥철학

장난감을 사주더라도 어떤 성취에 대한 보상으로는 사주는 경우는 거의 없았다. 성취감은 그 자체로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성취한 것에 대한 기쁨은 엄마아빠의 "진심 리액션"이 전부였다.

장난감은 평소 아이가 관심 있어하는 것을 봐두었다가 서프라이즈로 아무 날도 아닌 날 가끔 사주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아이가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사랑을 받는 것을 느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독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크리스마스에도 아이에게 특별한 선물은 없었다. 대신 가족의 행복한 시간에 집중했다. 그리고 주변에 힘든 사람들을 돌아보아야 하는 날이라고 일러주었다.


장난감의 조건에 대한 개똥철학

"예외 없이 반드시 지켜야 해!"는 아니었지만, 가능하다면 지키고 싶은 조건이었다. 아이의 취향을 무시할 수 없으니 아이가 선호하는 범위 안에서.

1) 이왕이면 활용도가 높은 장난감 위주로 사주었다. 블록처럼 몸을 쓰면서 놀 수 있는 것, 본인이 멋대로 만들었다 부쉈다 반복이 가능한 것

2) 성별이 나뉘지 않는 장난감을 가능한 선택 했다. 핑크색이 가득한 장난감은 선물 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3) 자주 사주지는 않았지만 한 번 사줄 때는 무조건 저렴한 것을 찾기보다는 재질을 많이 고려했다. 모든 부모가 그렇겠지만 아이의 안전이 일 순위이므로.


장난감 대신 늘 준비해 두었던 것

1) 양육자와 만들기가 가능한 시기:

우리 집 주요 장난감은 다 쓰고 남은 휴지 속, 갑 티슈 빈통, 신문지 같은 재활용품들과 다양한 컬러의 시트지, 색종이, 골판지, 수채화 물감, 투명 비닐우산 등이었다. 만들기 놀이는 아이의 성장 발달 단계마다 양육자의 도움의 정도가 많이 달라진다. 가위 사용, 풀이나 테이프 등의 접착제 사용부터 해서 어떤 것을 만들지 정하는 것도. 아이가 자랄수록 양육자의 역할에 힘을 점점 빼는 것도 만들기 놀이의 중요한 부분이다.


투명 비닐우산은 아이가 특히 좋아하는 놀이였는데, 비싸지 않은 아동용 비닐우산을 사두면 여러모로 유용하다. 가위질이 어려울 때는 매직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고, 가위질이 가능한 연령일 때는 매직에 시트지를 추가해서 나만의 우산을 만든다. 세상에 하나뿐인 우산을 만들어두면 비 오는 날 아이의 등굣길이 즐거워진다. 또 친구의 생일 선물로도 아주 좋다.


2) 유아 시기:

단순한 (아이 혼자 가능한) 놀이로는 주방의 집기류를 많이 이용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주방에는 위험한 물건이 많은 편이라 싱크대의 서랍을 잠금장치를 이용해서 잠가둔다. 우리 집의 경우, 주방에 수납공간이 많지 않았지만 다른 서랍들을 빡빡하게 채워 사용하고, 한 군데만 아이가 열 수 있도록 했다. 무겁거나 깨지기 쉬운 것들은 치우고 가볍고 안전한 것들만 두었다. 아이가 발등에 떨어뜨려도 다치지 않는 것이 기준이었다. 가벼운 볼이나 채반, 얼음트레이, 유아용 컵이나 그릇 등과 말랑한 실리콘으로 된 조리도구, 스텐 손거품기와 같은 것이었다.

조리기구를 작은 손에 쥐고, 엎어놓은 그릇들을 두드리는 것이 주된 놀이였다. 아이는 지겹지도 않은지 한동안 눈 뜨면 싱크대를 열어 두들기는 이 놀이가 일상이었다. 정신없이 시끄럽기도 했지만 더없이 신난 아이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너무 시끄럽다면 500ml 재활용 페트병을 활용하면 두드리는 소리가 훨씬 들을 만 해진다.) 어떤 날은 다른 놀이를 하다가 갑자기 싱크대로 가서 자기가 필요한 것을 꺼내어 노는 확장이 일어나기도 한다.


미안한 마음을 장난감으로 대체하지 않기를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서 아이가 사달라는 대로 장난감을 사주는 상황을 어렵지 않게 본다. 아이와 놀아줄 시간이 너무 없어서, 아이와 놀아줄 줄 모르는 양육자라 미안해서, 아이가 하나라서 외로울까 봐.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장난감의 역할에 너무 무게를 두지 말자. 장난감이 많을수록 아이는 가지고 노는 시간이 짧아질 뿐이다. 애착을 갖는 건 그중 한 두 가지.

잘 놀아주지 못하더라도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눈을 마주치고 피부를 비비며 웃는 시간을 갖자. 새벽에 줄 서서 사온 장난감보다 더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그 10분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아이가 말이 줄어드는 시기에 서로에게 더없이 훌륭한 장난감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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