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건 몰라도 이것 만큼은 내 생각이 옳다고 생각했다.
"본질이 중요하다."
종교, 교육, 권리, 의무 등등... 사회에 속해 살아가다 보니 많은 것들이 본질을 알아볼 수 없게 덕지덕지 붙은 것들이 많다고 느껴졌다. 우선은 나를 무겁게 하는 껍데기들을 하나씩 떼어내고 싶었다. 본질이 드러나 보이게 만들고 싶었다.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 생각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조금씩 집착에 가까워진 것 같았다.
그러다 브런치나 페이스북에 글을 쓰며 글쓰기 자체를 즐거워하던 내가 점점 내 글에 대한 '좋아요' 수를 체크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생각했다. 이것 또한 본질에서 벗어난 것 중 하나가 아닐까 하다가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엄마는 단지 글을 쓰고 싶었는데, 요즘은 블로그며 인스타며 페이스북이며 해야 할 게 참 많아 지는 것 같더라. 너한테 조언을 듣고 인스타도 블로그도 시작은 했는데 다시 글만 쓰면 안 될까 싶은 생각이 드네."
"엄마가 글로 돈을 벌고 싶은 게 아니라면 그런 거 다 안 하고 글만 써도 되지."
"물론 돈도 벌 수 있다면 좋겠지만 글을 쓰고 싶다는 자체가 본질이라..."
"근데 엄마, 수박도 껍질이 있잖아요."
앗...!
너무나 잘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었던 것인지.
이 한 문장이 너무 강렬해서 그 뒤로 이어진 말이 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이는 글 쓰는 것에 대해서 하는 말이었지만, 그 말을 듣는 나에겐 가치관을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적어도 내 최근 수년이 그랬겠구나. 수박 과육에 집착해서 껍질 따위는 전혀 필요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겠구나. 과하게 큰 과일 바구니, 여러 겹의 비닐 포장, 커다란 리본. 처음에는 이런 것이 수박을 가린다고 생각했을 텐데 어느새 정작 과육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수박 껍질까지도 과한 포장과 구별하지 못하게 되었구나.
머릿속 전체가 뒤섞여 버렸지만 나쁘지 않았다. 고마웠고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덕분에 수많은 껍데기 중 하나는 버릴 수 있게 되었다.
수박 덕분에, 수박의 껍질을 볼 수 있는 아이의 시선 덕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