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이 드라마를 보고 난 뒤, 영업 3팀이 퇴근 후 모이는 그 자리에서 함께 소주잔을 기울여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마시지도 못하는 소주가 그들과 함께라면 사이다보다 달 것만 같았다. 얼음 가득한 아이스아메리카도 보다 시원해 보였다.
각 인물이 보여주는 캐릭터가 좋아 다시 봐야지 했던 것이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렇게 다시 장그래와 장백기를 보았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스펙을 가지고 공채로 입사한 장백기. 장백기가 가진 빛나는 스펙이라곤 전혀 없는 낙하산 장그래. 드라마 초반에 장백기는 진심을 숨기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급이 다른' 장그래를 차갑게 대한다. 아니 아래로 내려다보려 한다. (처음부터 대놓고 장그래를 저 아래에 두고 내려다보는 인물도 있다.)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장백기가 쌓아온 노력을 폄하하려는 마음은 없다. 낙하산을 달고 내려온 장그래를 싫어하는 마음이 오히려 이해되었다. 다만 대한민국의 수많은 장백기들이 해온 노력과 다른 노력을 해온 장그래들을 보는 시선에 계속 감정이 쓰였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 청년들을 볼 때면 안쓰러울 만큼 열심이다. 누군가는 노력을 공부에 쏟고, 누군가는 노래에, 누군가는 춤에, 누군가는 사람에, 누군가는 상상에, 누군가는 바둑에 노력을 쏟고 산다. 어디에 쏟는 노력이 더 가치로운지 따질 수 없다. 얼마나 쏟은 노력인지 함부로 측정할 수도 없다. 하지만 드라마 속 현실에서 10년이 지난 지금도 좋은 성적 - 명문 대학 - 대기업으로 이어지는 노력에만 가치를 두는 것을 주변에서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드라마 속이라서 그럴까. 결국 장백기는 자신과 다른 장그래의 시간을 인정하게 된다.
"나는 아직도 장그래 씨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같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내일 봅시다."
어렵사리 뱉은 말이었지만 진심을 담은 인정이었다. 시간의 모양은 다르지만 그 시간에 쏟은 치열함을 인정하겠다고. 그래서 이 장면이 좋았고 계속 떠올랐다. 장백기뿐 아니라 대부분의 구성원이 장그래가 가진 조건에서 그의 진정한 열심으로 시선을 옮긴다.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너와 나. 서로 다른 속도로 가고 있는 아이들. 서로 다른 색을 칠하는 청년들.
오늘도 보고 내일도 보며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야 할 구성원이다.
더운 날씨에 종일 외부에서 일하며 흘린 땀과 종일 노트북 화면 앞에서 일하며 충혈된 눈이 만나, 서로 더할 나위 없었다고 어깨를 두드리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이라면 완생일까. 다시 10년 후에는 조금 더 그런 현실에 가까이 갈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게 믿고 가는 사람들이 쏘아 올리는 희망이 모여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