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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툇마루 Oct 31. 2024

이런 나도 괜찮다고 말해주겠니

엽편 소설_2

넌 알지?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용기는 없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영 찜찜하고 그런 거.

아니야, 용기 없다는 것도 핑계고 게으른 거지 뭐.

게으름이 양심을 이기는 건가, 창피하네.

근데, 저녁 시간 다 되어가는데 통화 괜찮은 거야?

그렇구나. 오늘 저녁은 뭐 먹어? 

그런 요리를 할 재료가 집에 다 있다고? 

놀랍다야.

아까 어디까지 말했지? 

맞아, 넌 역시 기억력이 탁월해.

철들기 전부터였으니까 거의 내 인생 전체였다고 할 수 있지.

그때는 생각하지도 못했지.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몸 담았던 공동체를 나올 줄이야.

근데 그렇게 나오고 나면 내 일상에 눈에 보이는 변화가 있을 줄 알았다?

누가 봐도 "아, 쟤 뭘 하긴 하는구나' 이럴 정도로 말이야.

'저런 거 하려고 꿈틀거린 거구나' 이런 거.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알겠더라고.

내가 몸만 나왔지, 여전히 사람들 시선 의식하는 건 벗어나지 못했더라고.

뭐라도 해서 사회에 보탬이 되고, 피켓 하나라도 들고 서있는 그런 거 하고 싶었지.

근데 여태껏 문턱도 못 넘었네.

문턱? 그러네. 

언제 적 단어냐, 요즘 문턱 보기도 쉽지 않은데.

지금? 벌써 2년쯤 됐지.

난 사실 나이 먹어도 시간이 빠른지 잘 모르겠는데, 뭔가 큰 일은 또 엄청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

2년이 다 되어가는데 이러고 있는 내가 실망도 되고 자책도 되고, 그렇지 뭐.

연말이 다가와서? 

그런가, 정말 그래서 요즘 더 그런 건가 싶긴 하네.

모르겠어. 

근데 진짜 다행인 건 뭔지 알아? 

글이라도 쓰고 있다는 거.

기껏해야 책상 앞에 앉아서 키보드만 두드리는 것인데도 이거라도 해서 덜 자책하긴 해.

세상에 소리 내고 싶었는데, 글만 쓰면 소리 없는 아우성인가? 

역시 통화가 길어지니 실없는 소리가 나온다.

근데 그 요리는 오늘 처음 하는 거야, 원래 자주 하는 거야?

오호, 새로운 도전이라~ 대단해.

나? 아무 생각 없없는데, 나도 도전 한 번 해봐?

알았어. 번도 사보지 않은 재료를 하나 골라보라 이거지?

난 마트 간다. 

알았어. 오늘은 부담없이 문턱 넘어가볼게.

고마워, 너도 맛있는 도전 성공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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