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크고 작은 *강박이 있다고 들었다. 그 말이 위로가 되었다.
나는 손톱을 쓰다듬는 강박이 있는데, 엄지 손가락이 의도치 않게 어떤 손가락의 손톱을 쓰다듬듯 스치면 양손의 엄지가 동시에 나머지 손톱 모두를 쓰다듬어주어야 하는 강박이 있다. 엄지 손가락의 손톱은 약지가 마지막 순서로 쓰다듬어준다. 그렇게 해야만 완료한 기분이 든다. 어쩌다 이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그랬다. 내가 좀 이상한 건가 생각했는데, 모두들 한 가지 이상의 강박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마음이 편해졌는지 그것이 강박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친구와의 대화 중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강아지를 산책시켜줘야 하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어딘지 모르게 다르게 들렸다. 지금까지 내가 들어온 다른 사람들과의 강박과는 달랐다. 많은 경우를 들어본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몸에 대한 것이거나 행동 패턴에 대한 것이었다. 강아지 산책 또한 행동 패턴에 대한 것이었지만 자신보다 강아지를 위한 것이었다.
다른 주제로 대화가 흘러갔지만 집으로 오는 길에 다시 그 주제를 떠올려 생각했다. 나에게는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위한 강박적인 행동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타적인 강박적 행동이 있다면 어떨까 싶었다. 운전석에 앉으면 차선과 정지선에 대한 강박이 생기고, 길을 가다 손에 쓰레기가 생기면 꼭 가방에 넣어야 하는 강박이 생기고, 임산부를 보면 자리를 양보하고 싶은 강박이 생기는 그런 건... 어떨까.
강아지 산책으로 시작해서 생각이 너무 멀리까지 와버렸지만, 누군가(무언가)를 위한 마음을 늘 가지고 있다는 것이 따뜻하게 전해졌다. 배려를 받는 대상이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에도 그 마음을 유지한다는 것은 한층 더 고귀한 마음이라 생각되었다.
이타적인 강박에서 시작된 것이 더 이상 강박으로 느껴지지 않고, 모두의 기본 에티켓으로 자리 잡는 어느 멋진 날을 꿈꾸었다. 잠시나마 행복하게 글 쓰는 시간이었다.
*전문 의학적으로 강박이라고 할 수 없는 사소한 반복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일상 대화에서 강박이라는 단어로 표현되기도 하기에, 다른 단어를 찾지 못하고 그대로 사용하였습니다. 행여 이 단어 사용이 불편하신 분이 있으셨다면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미지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