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몸 구석구석 불편한 부분이 생긴다. 병원 가기를 미루다 결국 병원을 예약하고 다녀오고 또 다른 과의 진료 예약을 잡으면서 사람의 몸이 소모품인 것을 실감한다. 이런 상황이 잦아지는 것은 번거롭고 불편하지만, 한편으로는 차분하고 숙연해지게 한다. 삶에 집착하던 뜨거움에서, 힘을 빼게 되는 포인트가 된달까.
아직은 일반적인 노화로 삶을 마감하는 평균 나이에 가깝다고 할 순 없지만, 그럼에도 곁에 두고 자주 떠올리는 것이 죽음이다. 차분하게 죽음을 떠올리는 시간이 나쁘지 않다. 나의 장례식에 틀 플레이리스트를 정해 보기도 하고, 죽음을 하루 앞두고 무엇을 하고 있을지 상상해보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읽게 될 소설은 무엇일지, 그때가 되면 누구를 만나고 싶어질지.. 주로 고상한 생각들이다. 하지만 '어떤 마지막을 원하느냐'라는 질문엔 고상한 것을 떠올릴 틈이 없다. 망설임 없이 아주 현실적인 답변이 튀어나온다. 마지막까지 화장실은 셀프로 말끔하게 사용하는 것! 그래서 매일 땀 흘리며 운동하는 시간을 우선순위에 둔다.
그럼에도 소모되어 가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지만, 최대한 셀프 궤도에 머물 수 있게 노력한다. 그 노력 중 하나는 커피 끊기였다. 매일 아침 집 안 일과 운동을 끝내고 책상 앞 일과를 시작하기 전, 나의 머리끝부터 발 끝까지의 세포들에게 '이제 시작이야' 하고 알람을 주는 시간이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었다. 물을 끓이고 10g의 원두를 갈고 그날 내 시선을 끈 컵에 천천히 커피를 내리는 것은 오늘 하루를 잘 보내리라는 신성한 다짐이었다. 이 신성한 시간을 일과에서 지운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심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인내하며 신호를 보내오던 내 예민한 장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다. 오랜동안의 무시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커피를 끊기로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커피에 대한 의사의 진단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지극히 개인적인 히스토리에 기반한 진단임을 밝힙니다.)
그렇게 매일 아침 시작에 변화를 준 것이 한 달여 지났다. 익숙했던 것을 끊어내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미리 준비해 두었던 차는 꽤 도움이 되었다. 커피 향이 아니어도, 카페인이 없어도 아침을 시작하는 것이 허전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소하지만 큰 변화를 이룬 사실이 정신을 개운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간혹 커피 향이 많이 그리울 때는 내게 커피 마시는 시간을 선물해 준다. (실제로 한 달 동안 두 번 선물했다.) 너무 비장하지는 않게 이 정도로 미지근하게 가볼 생각이다. 이러다 커피 향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 때가 올 수도 있고, 그보다 더 매력적인 차를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결심 또한 너무 뜨겁지 않게 힘을 빼게 된다. 미지근함이 좋은 나이. 이제는 여름 아침에도 시원한 물보다 전자레인지에 15초 정도 돌린 물 한 컵의 미지근함이 참 좋다.
너무 비장하고 뜨거운 만큼 빨리 꺾이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적당히 식어서 미지근해져 가는 지금이 좋다. 미지근한 은근함으로 뭉근하게 셀프 궤도로 쭉~
(이미지: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