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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툇마루 Oct 24. 2024

사랑에 관한 서명

엽편 소설_1

아냐, 이제 막 집에 들어오는 중이야. 지금 신발 벗어.

나 이제 겨우 삼일밖에 안 된 거 실화야? 이렇게 힘들어서 일주일을 어떻게 버티냐.

더 나이 들기 전에 좋은 일 한번 해보려 했더니 쉬운 일이 없다, 정말.

좋은 마음으로 나섰는데 이게 뭐냐. 

거절당하는 건 참을 만 한데, 속이 타들어가는 거 같어. 

아, 내가 어떻게 시작했는지 말 안 했나? 

3년 전부터 월간지 받아보고 있는 건 말했었나? 

웹으로도 받아볼 수 있는데 아직 종이책이 좋아서 말이야.

암튼, 거기서 지난달에 "차별 없는 사회 만들기" 서명을 받아줄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글이 있더라고.

항상 좋은 일이 앞장서는 출판사에서 하는 일이라 나도 도움이 좀 되어볼까 싶었지.

그래, 이 소심한 사람이 거리에 나가서 서명받을 생각을 했다니까.

차별, 그래. 

맞아, 서명받아서 뭐 세상이 달리지진 않겠지.

그래도. 잠깐 설명 듣고 서명하면서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하면 세상이 바뀌는데 영향은 좀 있겠지.

진짜 진심으로 꾹꾹 눌러 서명해 주고 가는 사람들도 있어. 

신기하게 눈빛부터 따뜻하더라.

아니, 근데 서명받는 곳 옆에서 매번 그렇게 방해를 해대네.

생각도 못했지. 그것 때문에 이 일이 이렇게 힘들 줄은.

근데 오늘은 힘들다기보다 너무 슬프더라.

옆에 동료들 몰래 눈물 훔치느라 혼났다니까. 

그 사람들 철벽 같더라, 정말. 

사랑, 사랑 노래를 하더니 그 사랑은 어디다 갖다버렸다니. 

차별 없는 세상보다 차별 만연한 세상이 정말로 좋아서 그러는 걸까?

미안. 오랜만에 통화했는데 내가 너무 길게 늘어놓았네. 

너는 어떻게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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