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년 전만 해도 상상으로 존재하던 일들이 이토록 빠르게 현실화된 것을 보면 날아다니는 자동차도 멀지 않은 미래에 일상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불과 10여 년 전쯤이었을까. 아이의 그림책 내용 중에 화면 앞에 서서 버튼을 누르면 곧바로 원하는 물건을 받을 수 있는, 미래를 상상하는 장면이 있었다. 아마도 그 무렵 미래에 대한 그림책 속에 많이 등장한 장면일 것이다. 그때는 그 편리함에 놀라 아이와 함께 마냥 신기하게만 생각했다.
그 미래가 어느새 현실이 되어서 물건을 주문하면 당장은 아니지만, 당일에 받거나 늦게 주문하더라도 새벽에 받을 수 있는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모두가 잠든 이후에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뛰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간밤에 산타가 왔다간 것처럼 기쁘고 행복하게만 받을 수 없는 상자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시급을 더 내려도 일하려는 사람이 있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친 사람이 있었던 것처럼, 새벽에 일자리가 있으면 일하려는 사람이 있다는 논리를 들이댄다면 그 논리를 반박할 말은 내게 없다. 솔직히 그런 반박을 들이대는 논쟁은 말 한마디도 섞고 싶지 않다.
생각해 보면 "새벽"이나 "로켓"이라는 이름이 붙은 배송이 생긴 지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 일상에 너무 깊숙하게 들어와 있다. 노동 환경이 좋아지는 쪽으로 가야 하는데, 지나치게 빠른 배송이 생기면서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놀랍도록 편리하지만, 누군가의 숨 가쁜 수고까지 들여야 하는 일인지 이 사회가 다 함께 양보해 줄 수 있다면 좋겠다.
너무 철 지난 이야기일까. 우리가 어렸을 땐 우표를 붙여 편지를 보내면 1주일이고 2주일이고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 택배가 처음 생겼을 땐 물건을 주문하면 3일을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었다. 거기서 멈췄더라면, 소비자가 더 빠른 속도를 원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것을. 아니 그 마음을 들키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을 기업은 소비자의 욕구를 어찌나 빠르게 알아차리는지 신속정확하게 낙야채 버렸다.
교육의 질이 향상되려면 학교, 교사, 학원뿐 아니라 학부모와 학생도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노동의 질이 향상되려면 정부, 기업뿐 아니라 소비자도 노동자와 함께 동참해야 한다.
쿠팡이 고유명사가 아니라 택배를 지칭하는 보통명사로 대체되어 버린 현실이 안타깝다. 바라기는 택배를 대표하는 회사로 자리를 지키고 싶다면, 소비자가 불편하지 않은 마음으로 배송을 기다릴 수 있게 해 주면 좋겠다. 다시 새벽배송, 로켓배송이 없던 시절로 조금 거슬러 간다고 하더라도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다면 다 같이 그 길로 갈 수 있다면 좋겠다.
소중한 가족의 한 사람 (이미치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