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툇마루 Sep 02. 2021

의무교육 졸업하기까지

중학과정 졸업 & 스물아홉 번째 책수다

지난 8월 11일 아이는 중졸 검정고시를 치렀고, 8월 30일 교육청 홈페이지를 통해 합격임을 확인했다. 아이는 “축하해!”라는 말보다 “이제 의무교육 졸업이다!”라는 말에 더 실감이 난다며 좋아했다. 그리고 어제, 정원 외 관리를 받던 중학교 담당 선생님께 합격증명서를 제출함으로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모두 끝냈다. 시원섭섭하지 않았고 그저 시원하기만 했다. “의무”라는 단어를 벗어난 것만으로 가벼워진 느낌.  

   

합격 확인을 했던 날, 아쉽게도 남편이 휴가를 낼 수 없어서 조촐하게 아이와 둘이서 여느 졸업식 날처럼 시간을 보냈다. 다들 하듯이, 졸업 당사자가 좋아하는 메뉴가 있는 식당에 가서 졸업을 기념하기.

꽃다발은 없었지만 평소보다 살짝 차려입고 살짝 흥분된 마음으로 카페 도착. 막 팬케이크를 먹기 시작한 아이에게 소감 한 줄을 요청했더니, 처음엔 “좋아”라는 한 단어가 돌아왔다. 허기를 조금 채운 후에 다시 물었을 땐 조금 더 진지한 답변이 돌아왔다. “처음에 검정고시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시간을 잊으면 안 될 것 같아. 그래야 나중에 중졸 검정고시 준비한다는 아이가 있으면 내가 뭐라도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올챙이 적을 기억하잔 말이지.”

그래, 나도 순탄치만은 않았던 그 준비 기간을 아이와 함께 꼭 기억해야지. 어느 집 아이가 검정고시를 고민한다고 물어올 때 나도 그 엄마에게 해줄 말이 있도록.     




두어 달 검정고시 집중 준비기간으로 잠시 놓았던 수다 시간을 지난 주말 책수다재개했다. 이번 책은 동해안 쪽으로 갈 때마다 참새 방앗간처럼 들르는 문우당 서점에서 남편이 발견해서 구입하고는 그날 저녁 단숨에 읽고 아이와 나에게 추천한 책이다. 이 책이 우리 집에 온 지 한참인데 이제야 책수다 시간을 가졌다.     


2021년 8월 29일, 스물아홉 번째 책수다는 심채경 박사의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문학동네). 이번 수닷거리는 오랜만에 아이가 준비했는데 수다시간을 끌어가는 걸 보면서 그 사이 또 조금 자란 느낌을 받았다. (편의를 위해 표기를 이렇게 표기합니다. 남편:훈, 아내:화, 아이:안)     


1) 별점주기

안: 별 네 개.

이과생의 글은 딱딱할 거라는 편견을 깨어줌.

중간중간 아직 어려운 내용이 있어서 별 하나 뺌.

작가의 문체에서 조곤조곤함이 느껴져 좋았고, 작가가 도덕적으로 잘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여서 좋았다.   

화: 별 네 개.

잘난 거 맞는데 잘난 척하지 않아 좋았고, 작가가 나누는 삶에 대한 이야기들도 좋았다.

아이와 동일하게 과학자가 쓴 책이라 딱딱하고 어려울까 봐 살짝 겁먹고 읽기 시작했는데, 읽는 동안 따뜻함마저 느껴져서 좋았다.      


훈: 별 네 개 반.

문우당 서점에서 책을 샀던 날 바로 다 읽어버릴 만큼 좋았던 책.

평소에 좋아하는 천문학 이야기라서 좋았음.

한 분야의 전문가가 그 분야에서 외롭게 잘 버텨가는 모습이 보였다.

소수자와 약자를 응원하고 싶게 만드는 글이었다.     


2)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면?

훈: 과학 논문에서는 항상 저자를 ‘우리(we)’라고 칭한다. (중략)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은 학위를 받고도 한참이 지난 후였다. 연구는 내가 인류의 대리자로서 행하는 것이고, 그 결과를 논문으로 쓰는 것이다. 그러니 논문 속의 ‘우리’는 논문의 공저자들이 아니라 인류다. (중략) 그토록 공들여 얻은 우주 탐사 자료를 전 인류와 나누는 아름다운 전통은 그래서 당연하다.” (p.265-266)

-> 인류의 대표로서 과학자들이 우주의 비밀을 밝혀내는데 “우리”라는 인류의 대표 대명사를 써줌으로 나도 거기에 동참하는 느낌이 들도록 해줘서 감동했고, 국제공조로 함께 연구한다는 사실에도 감동했다.     


안: “0보다 작은 수를 쉽게 뺄 수 없는 학생과 멈춰 있는 축구공도 제대로 못 차는 내가 무엇이 다른가.” (p.39:6-7)

-> 역지사지할 줄 아는 작가의 겸손이 보여 이 문장이 좋았다.     


화: “떠난 이들은 남지 못한 게 아니라 남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고, 남은 이들은 떠나지 못한 게 아니라 떠나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다. 이제는 안다. 어느 쪽을 선택했든 묵묵히 그 길을 걸으면 된다는 것을. (p.31:14-18)

-> 요즘 ‘선택’과 ‘책임’에 대한 생각이 깊었던 터라 이 문장이 크게 공감되었다.    

 

3) -그때의 나를 오늘날의 나로 만든 바로 그 주문을. 그건 아주 짧고 간단한 문장이었다. “저요!”  - 이 순간의 작가님처럼 “저요!”라고 했던 기억에 남는 순간은, 선뜻 도전에 나섰던 일은? (p.20)   

  

안: 컵스카우트 선서식 준비 기간에 대표로 선서를 해보겠다고 손들었던 일.

하고 나니 ‘별 거 아니었네’하고 피식 웃게 했던, 그래서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게 된 의외의 계기가 되었다.     

훈: 결혼 1주년 즈음 유럽 여행을 선택했던 순간. 한 달의 여행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부부가 함께했던 기억. 그 한 달여의 여행이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자양분이 되었다. 덕분에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시간에도 살아있는 이야기를 해줄 수도 있고.     


화: 첫 해외여행. 처음 비행기를 탄 경험이 혼자 플로리다까지 갔던 것. 처음 비행기를 타면서 두 번의 경유, 친구 가족에게 부탁받은 짐으로 내 몸보다 더 커진 가방. 오로지 친구를 만나기 위한 일념으로 도전했던 것 같다. 그때 냈던 용기는 나의 몰랐던 면을 발견하게 해 준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4) 우주에 혼자 남겨졌을 때 듣고 싶은 단 세 곡만 골라본다면? (p.254-259)

훈: 향수(이동원, 박인수) - 지구에 대한 향수를 노골적으로 드려낼 수 있어서.

지금까지 지내온 것(찬송가) - 할머니, 어머니가 좋아하셔서 본인까지 좋아하게 된 곡. 그분들을 기억할 수 있는 곡이어서.

우리가 어느 별에서(안치환) - 우주에서 듣기 딱! 인 곡.

    

안: 나의 안에 거하라(CCM) - 든든함을 주는 곡이 필요할 것 같아서.

생일 축하송 - 날짜를 기억하기 어려울 텐데 매해 생일을 기념하면서 우주에서 한 해가 가는 것도 느낄 수 있도록.

Best of me(BTS) - 힘든 상황을 잊게 해주는 신나는 곡.


화: 밤 편지(아이유) -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을 것 같은데, 불안함에 잠 못 이룰 때 필요한 곡.

그것만이 내 세상(알리 버전)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꾼 꿈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주는 곡.

바람이 분다(이소라) - 우주에는 바람이 없을 텐데 바람을 느끼고 싶을 때 이 곡이라면 충분할 것 같아서.   

  

5) 내가 행성 이름을 짓는다면? (가능하면 우리말로)

훈: 혜성- "ㅇㅇ(아이 이름)" 혜성: 아내와 함께 이룬 가장 큰 선물로 이름을 짓고 싶다.

안: 쌍성- "안중근" 행성, "윤봉길" 행성: 오래오래 지나도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이름이니까.

화: 혜성- "봄" 혜성: 희망을 뜻하기도 하고, 언젠가 봄이라는 계절도 없어질 수도 있을 텐데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도록. (훈의 의미 추가: 우리가 그 별을 봄(see)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도 좋을 듯.)  



책수다가 끝나고 수다 중에 나눈 곡들은 우리 가족이 한 아이디로 사용하는 뮤직 앱에 "우주 고립 플레이리스트"란 이름으로 저장되었다.


이전 10화 오늘은 검정고시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