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홈스쿨을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지난 즈음, 우리 집 오전 풍경은 딸과 엄마가 함께 하는 수학 수업이었다.가르치는 사람은 EBS 인강 선생님, 배우는 사람은 엄마, 딸 이렇게 두 명. 인강은 40분 분량이지만, 새로운 문제마다 멈춰가며 각자 미리 풀어본 후 선생님의 풀이과정 보고 하느라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다. 강의가 끝나면 엄마는 엄마의 할 일로, 아이는 복습 문제 풀기로 각자의 시간이 이어졌다.
이 풍경이 만들어지기까지 갖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이 방법을 찾은 후 아이도 나도 만족도가 가장 높았다. 내 입장에선 처음엔 무척 귀찮은 마음이었지만 갈수록 -학교 다닐 적 쩔쩔매던- 문제가 풀리는 재미가 쏠쏠했다. 심지어 학습 성취감을 느낄 정도로.
이 방법에 만족도가 높을 수 있었던 중요한 요건은 엄마가 중학 수학을 공부하기 괜찮은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를 풀다가 막히는 부분이 생길 때 엄마와 아이 중 조금 더 잘 이해한 사람이 가르쳐주고, 엄마는 아이에게 배우는 것이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방법을 쓰기 전 오랫동안 아이가 혼자 강의를 듣고 풀어둔 수학 문제집을 채점해주고, 어떤 류의 문제를 어떤 식으로 틀리는지 체크해주는 방식을 주로 했다. 아이가 틀린 문제 중 나도 이해가 되지 않는 문제는 풀이를 보고 겨우 설명해주기도 하고, 늦은 시각 퇴근하고 온 아빠 찬스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아빠 찬스는 몇 번쓰지 못하고 사라졌다. 아빠의 퇴근 시간 쯤이면 아이는 이미 하루 일과를 끝내고 한참 쉬던 중이라 다시 수학책을 펼치는 건 잔인한 일이었고, 퇴근하고 온 아빠에게도 피곤한 일이었다.
아이가 푼 문제를 체크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수평적일 수 없는 형태였다. 더군다나 비슷한 부분에서의 연이은 실수를 보게 될 때는 목소리 조절이 어려워 더더욱 고압적인 시간이 되었다. 그런 시간이 이어지면서 아이는 점점 더 수학을 싫어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엄마 몰래 답지를 보고 쓰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그 순간은 큰 실망에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우리가 지금 "홈스쿨 중"임을 생각했다. 급할 것 없는, 속도 조절이 얼마든지 가능한 홈스쿨. 그 일을 계기로 우리는 다시 수학 공부법을 고민했다. 공부 분량도 대폭 줄이고, 엄마도 같이 공부를 해보기로 했다. (여기서 답지 보고 쓰기 사건이 있던 시기의 공부 분량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홈스쿨 초기에 아이의 수학 진도는 앞으로 전진할 줄을 몰랐고, 그 문제를 의논하던 중에 아이가 제안을 해왔다. 일주일에 세 번 "수학만 하는 날"을 가져보겠다고. 하루에 인강 3개를 예습, 강의, 복습을 해보겠다고. 수학을 워낙 싫어하던 시점이라 역효과가 날 것이 예상되었지만 별말 없이 그렇게 해보자 하고 그렇게 해오던 차였다.) 진도를 위해 하루에 많은 양을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조금 하더라도 제대로 알고 넘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몸소 느낀 아이는 하루에 1강씩 같이 해보자고 했다.
내 시간이 많이 들어간다는 크디큰 단점이 하나 있지만, 이 방법을 시작한 이후에 발견하게 되는 장점들이 그 단점을 쉬이 덮고도 남음이 있었다.가장 큰 장점은 그전에 수학 공부로 인해 감정이 좋지 않았던 아이와의 관계가 오히려 수학으로 인해 더 돈독해졌다는 점이다! (이런 일이 가능할 줄이야!) 어려운 문제를 비슷한 타이밍에 풀고 서로의 연습장을 확인하는 순간, 같은 숫자가 쓰여있을 때의 희열! 쉬운 문제임에도 단순한 계산 실수로 나온 엄마의 오답은 아이에게 묘한 기쁨이 되기도 했다. 한 문제 한 문제 함께 고민하고 풀어내며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그런 순간이 주는 힘은 그 하루를 웃으며 살게 할 만한 힘이 되기도 했다.
홈스쿨을 시작하면서 나는 내 시간, 아이는 아이 시간을 독립적으로 구분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에 비하면 정말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간들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들로 인해 독립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 머지않아 아이와 함께할 시간이 확연히 줄어들 생각을 하면 함께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시간조차도 종종 즐겁다. 영 답답할 땐 가끔 각자 일부러 스케줄을 만들어 나가기도 하니까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