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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이 Jul 04. 2024

내 남편에게

이 글은 천하제일 남편 대회를 열어서 누구누구 남편이 더 잘났는가를 자랑해 보자는 글은 아니다. 이 글은 또한 남편의 자상함을 뽐내며 누가 최고의 최수종인가를 가려내자는 글도 아니다.


이 글은 오히려 내가 편지를 써주지 않기에 본인도 이제 편지를 써주지 않겠다는,

아파서 병원에 가는 나를 보며 말 더럽게 안 듣더니 그럴 줄 알았다며 툴툴거리는,

그러면서 밤늦게 퇴근하는 나의 저녁을 차려주고,

아침 일찍 일어나 종종 도시락을 싸놓고 출근하는,

일하고 공부하는 아내의 밥과 빨래를 도맡아 해주는 착한 남편에게 보내는 뒤늦은 아부성 편지에 가깝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대상에 대한
자신의 욕망의 특이함을
이름 짓지 못하여
조금은 바보 같이
“근사해”라는 말에 귀착한다.

-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박사 1년 차 나는 결혼을 했다. 남편과의 연애는 아주 길었으므로 그와 결혼을 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수순으로 생각되었다. 연애 9년 차에 국수 말아먹듯 후루룩 결혼을 해버린 우리는 이젠 2년 차 부부이다.


내 눈에 비친 남편은 가끔 못마땅할 때도 있지만 근사한 구석도 많은 사람이다. 유쾌한 성격의 남편은 인간관계가 좋고, 아침마다 러닝을 하며 체력관리도 하고, 요리도 잘한다. 긴 여행을 다녀온 우리 부모님을 공항까지 픽업 가겠다고 먼저 말해주고, 얼떨결에 맡게 된 언니의 고양이랑도 잘 지내준다.


내 일에 치여 남까지 잘 돌보지 못하는 성격의 나는 가끔은 그런 남편이 정말 신기하다. 해주고 생색내는 경우도 잘 없는 남편을 보며 ‘역시 다정함이 세상을 구하는구나’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어쩌다 바쁜 박사연습생과 결혼해 수발을 들고 있는 남편. 늘 받아먹는 게 미안해서 ‘수발’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써본다. 있지도 않은 딸을 키우는 것 같다며 불평할 때도 많지만 그럼에도 내 끼니를 늘 걱정해 주는 우리 남편. 남편의 음식 맛도 참 근사하다.

남편의 9주년 요리
일생을 통해 나는 수백만의 육체와 만나며,
그중에서 수백 개의 육체를 욕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수백 개의 육체 중에서
나는 단지 하나만을 사랑한다.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에서 ‘단상’은 fragments, 즉 파편이다. 바르트는 그의 책을 사랑의 단상들, 파편들로 채워둔다. 알파벳 순으로 나열되어 있는 파편들은 사랑에 대한 이러저러한 바르트의 단상을 담고 있다.

남의 말을 빌리지 않고서는 낭만적인 연애편지를 쓰는 것이 힘들어 바르트의 생각을 빌려온다. 문학 비평 열 장은 분기별로 척척 써내면서 흔한 편지는 왜 한 장을 못썼을까? 바르트의 언어를 빌어 남편에게 마음을 전한다.


내가 욕망한 단 하나의 육체가 이다지도 다정한 사람임에 감사한다. 밤늦게 퇴근하는 나를 기다려주고, 주말에도 공부하는 나를 기다려주고, 내가 부탁하는 일은 열중에 아홉은 들어주는 따뜻한 사람. 수많은 사람을 만나도 그가 건네주는 단상이 가장 반짝이고, 사랑스럽다.


그의 파편과 나의 파편이 만나고, 부딪히며 일상을 떠다닐 테다. 10년, 20년이 흘러도 늘 다정한 미소를 서로에게 지어줄 수 있기를 바라본다. 지난한 박사과정도, 일도 남편의 도움이 없었다면 절대 다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남편이 시대의 이상향과 같은 완벽한 남자라거나, 우리가 세기의 사랑 같은 거창한 걸 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러이러한 단점과 저러저러한 장점을 가진 보통 인간들이기에 지지고 볶으면서 살고 있다.


우리의 결혼 생활도 일상 속 파편들의 연속에 불과하겠지만, 그 파편들은 순간순간의 사랑으로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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