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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이 Jul 11. 2024

세상에 쓸모없는 일은 없다

7월의 단상

일반적인 공부와 대학원 공부의 가장 큰 차이를 꼽으라 한다면 주저 없이 ‘지식의 생산’이라고 말한다. 입시를 비롯한 각종 시험공부는 으레 누군가가 정리해 둔 정련된 지식을 습득하고, 그것을 잘 이해했는가를 점검하는 과정이다. 이런 경우 ‘이해-정리-암기-적용’의 고된 시간이 있을 수 있겠으나 소위 ’창작의 고통‘이 요구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학원에 입학하는 순간, 갑자기 나는 지식의 생산자가 되어 예술가들이나 겪는 줄 알았던 창작의 고통을 몸소 겪어내야 했다. 원하든 원치않든, 모든 분야의 대학원생은 연구자로서 연구 결과물을 생산해 내야 하고, 주제와 내용이 ‘상큼’할수록 주목을 받을 수 있다.


석사부터 시작해 벌써 4년째 이어지는 지난한 연구 과정에서 가장 힘든 것은 바로 이 창작의 고통이었다. 수많은 논문과 작품, 이론서들을 읽고 공부해도 결국에 그것을 글로 승화시키지 못하면 공들인 모든 시간은 무용지물이 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써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나에게 늘 빚지고 산다.


박사 공부와 입시 교습소 운영을 동시에 하는 김씨. 6월은 학생들의 시험으로 주 7일을 출근하는 와중에 대학원 페이퍼까지 써내야 했다.


하지만 페이퍼를 누가 대신 써줄 수 있을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챗gpt에게 도움을 요청해 봤지만 하등 도움이 되진 않았다.


그럼에도 두드리는 자에겐 언제나 길이 있다. 살인적인 스케줄을 견뎌야 했던 김씨에게도 기댈 곳은 존재했으니, 그것은 바로 ‘과거의 나’였다.


페이퍼를 쓰기 위해서는 명확한 주제와 그를 뒷받침할 이론적 지식, 작품의 선행연구에 대한 공부가 기본값으로 깔려 있어야 한다. 물론 이 모든 과정에는 아주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마감기한에 시달리는 대학원생이 강구할 수 있는 방법은 본인이 과거에 해두었던 자료 정리와 발표문을 다시 읽고, 읽고, 또 읽으며 그 안에서 쓸모 있는 생각과 증거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중 몇 가지 아이디어와 문장만 얻을 수 있어도 아주 귀중한 인사이트가 된다. 결국 과거의 내가 나를 구한다.


박사 공부라는 것은 왕도가 없어 어떤 주제는 이것을 다시 써먹을 수 있을까 회의적인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다. 한 사상가의 이론이나 작가를 연구하는 데만 해도 억겁의 시간이 들어가기에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들곤 한다.


하지만 4년 차 대학원생이 얻은 교훈은 ‘세상에 쓸모없는 노력은 없다’이다. 나의 노력과 시간이 온전히 들어간 결과물은 돌아 돌아 나를 돕는다. 과로에 시달리는 박사연습생을 마감기한 직전에서 살리기도 하고, 그에게 또 다른 연구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과거의 나에게 늘 빚지고 산다. 그러니 매 순간순간 주어진 일에 진심을 다하기를! 그것이 언젠가는 나의 구원자가 되어 나를 도울 것이다. 스스로를 도울 수 있음에 감사하며 박사연습생의 짧은 단상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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