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곤충을 잡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동네에 있는 반딧불이 숲 체험장에 갔다.숲 체험장이어서인지 자연친화적인 재료인 나무, 밧줄, 모래와 같은 놀잇감이 가득했다. 그리고 나무들이 울창해서인지 많은 나무가 그늘을 드리워서 쨍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숲은 매우 시원했다. 아이들도 모처럼 숲에 와서인지 신이 나서 밧줄에 매달리고 통나무 위에도 올라탔다.
반딧불이 숲 체험장 밧줄 놀이터
큰 아이는 나비를 잡기 위해 나비를 따라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둘째 아이와 나는 모래밭 근처에 있는 나무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그때 눈 앞에 4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와 어떤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할머니는 마치 미술 놀이 선생님처럼 아이에게
"OO야, 모래에다가 고양이를 그려볼까?"
하시며 나뭇가지로 모래 위에 귀여운 고양이 한 마리를 뚝딱 그리셨다.
뒤이어 아이와 함께 모래성을 만들고 나뭇가지를 그 위에 꽂아 모래를 가져가는 게임을 하고 계셨다. 할머니와 여자아이가 모래를 번갈아가며 조금씩 가져가다가 할머니가 모래를 가져가는 순간. 나뭇가지가 툭! 하고 쓰러졌다. 그러자 여자아이는 그 모습이 무척 재미있었는지 신이 나서 깔깔거리며 웃었다. 할머니도 아이의 웃음소리에 기분이 덩달아 좋아지셨는지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해 보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큰 아이가 나비 두 마리를 잡았다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할머니는 우리 아이들을 보고 나에게 다가오셨다. 내 예상대로 할머니는 미술놀이치료 수업을 하는 선생님이셨고 아이들이 도화지에만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이렇게 큰 모래밭에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면 아주 다양한 생각과 그림이 나올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맨발로 모래를 밟으면 아이의 촉감 발달과 정서적으로도 안정이 되어 좋다고 하셨다. 바닷가 해변을 거닐 때를 빼고는 나도 아이들도 모래를 맨발로 밟아본 경험이 없어서 아이들에게 맨발로 모래를 한 번 밟아보자고 제안을 했다.
큰 아이는 남자아이고 활달한 성격이어서인지 거침없이 신고 있던 운동화와 양말을 벗고 모래밭 위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반면 둘째인 딸아이는 옷에 물이라도 묻으면 옷을 갈아입을 정도로 깔끔한 성격이다 보니 내 예상대로 모래밭 위에서 맨발로 노는 게 조심스러워 보였다. 그래서 내가 먼저 운동화와 양말을 벗고 모래를 맨발로 밟아보았다. 처음에 모래를 맨발로 밟을 때는 자그마한 돌들이 발바닥에 까슬까슬하게 느껴져 조금은 거친 느낌이었지만 이내 촉촉하고 시원한 모래에 적응을 해나갔다. 그래서 둘째 아이의 운동화와 양말을 조심스레 벗겨서 우선은 내 발등을 밟아보라고 했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한 발씩 발바닥으로 모래를 조심스레 밟아보자고 얘기했다. 둘째 아이도 시원하고 부드러운 모래의 촉감이 좋았는지 금세 모래에 적응을 해나갔다.
나와 우리 아이들 모두 모래밭에 들어가자 할머니가 성큼성큼 다가오셨다. 보통은 할머니가 모래 위에서 신발을 벗고 노는 게 아이들의 정서에 좋다고 얘기를 해도 바로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렇게 바로 신발을 벗고 모래밭으로 들어오니 좋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몇 해전 뉴스에서 놀이터에 있는 모래에 길고양이나 강아지의 배설물들이 있어서 세균이 많다고 들은 적이 있어서 혹시나 아이들에게 안 좋을까 봐 놀이터에서 모래놀이를 주저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평소의 나라면 모래 위에서 맨발로 걸어볼 생각을 못했을 텐데 할머니의 제안으로 평소에 하지 않던 육아방식을 취하니 나부터도 오늘 놀이가 설레고 기대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 세 가족은 할머니와 여자 아이와 함께 놀기 시작했다.
큰 아이는 나뭇가지로 점을 그리고, 또 점들을 연결해서 선을 그었고, 마법천자문에서 나온 한자들도 모래 위에 큼직하게 써가면서 이런저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말씀대로 작은 도화지가 아닌 커다란 모래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니 아이의 표현이 평소와 다르게 거침이 없었고 잘못 그리면 손으로 쓱쓱 지우고 다시 그리면 되어서 아이도 무척 신나 보였다. 그다음에는 거미 한 마리를 그려보고 거미가 사는 거미줄을 크게 같이 그려보았다. 대왕 거미줄이 완성되자 거미줄에 걸린 나비와 잠자리, 사슴벌레 등을 그리고 다 같이 거미줄에 발이 걸리지 않게 손을 잡고 껑충껑충 뛰어보았다.
모래성 위에 꽂힌 나무를 쓰러트리지 않고 모래를 가져가는 게임 중
그다음에는 아이들과 모래성을 쌓고 그 위에 나뭇가지를 몇 개 꽂아 모래를 서로 가져가는 게임을 했다. 처음에는 큰 아이가 게임 요령을 잘 몰라서 졌다. 하지만 아이도 금세 요령을 터득했는지 조심해하며 조금씩 조금씩 모래를 가져가서 아이가 나머지 경기는 다 이겼다.(사실 일부러 내가 모래를 많이 가져가서 이 게임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 내가 어렸을 때 즐겨했던 놀이를 아이들과 같이 해서인지 나도 어느새 놀이에 흠뻑 빠져들었다. 아이들과 "놀아준다"는 게 아니라 "같이 놀면서" 다시 유년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었다.
다음에는 왼손등 위로 모래를 켜켜이 쌓아서 오른손바닥으로 모래를 두드리며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다오"
라고 노래를 부르며 모래놀이를 했다. 아이들도 이쯤 되자 모래밭 위에 두 발로 쪼그려 앉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철퍼덕 앉아서 옷에 모래가 묻어도 개의치 않아하며 편안하게 모래놀이를 즐겼다. 두꺼비가 정말 집을 가져다주는 게 아닌데도 아이들은 마치 소원을 빌듯이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를 열심히 외쳤다.
그 할머니를 그 장소에서 아마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날도 어김없이 평소의 육아방식대로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모래를 만지게 하더라도 손으로만 살짝 만지게 하고 이내 수돗가에 가서 손을 깨끗이 씻겼을 것이다. 아마도 신발과 양말까지 벗으며 재미있게 놀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날 그분을 만나서 평소와 다른 육아방식을 취해보니 평소보다 더 즐겁고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 세상 모든 곳에 내 스승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인생을 살다 보면 가끔 여러 갈래의 길을 만나곤 한다. 여태껏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에 대해서 가보고 싶은 열망은 있지만 늘 자주 가서 익숙한 그 길을 또 선택하곤 했다. 육아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자주 해서 더 익숙하고 편한 육아방식을 고수했었다. 하지만 그날 그 장소에서 그 할머니를 만나서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육아방식을 택했더니 조금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었고 아이들의 "깔깔깔"거리는 웃음소리를 더 오랫동안 들을 수 있었다. 앞으로도 조금은 덜 익숙하더라고 누군가가 나에게 새로운 방식을 제안해준다면 기꺼이 하지 않았던 육아방식을 시도해보면서 그동안 놓쳤던 새로운 즐거움을 느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