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구별소녀 Aug 05. 2021

주말부부가 되자 남편은 집을 고치기 시작했다.

코로나 19가 창궐한 지 어언 1년 8개월째.

남편의 회사도 코로나로 인한 직격탄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이 모여야 행사가 진행이 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을 하면 할수록 쌓여만 가는 적자와 임대료, 인건비, 유지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회사는 결국 서울에 있는 사무소의 문을 닫게 되었고 남편은 갑자기 지방발령이 났다.


지방으로 내려가기 전.

남편은 집안 곳곳을 자세히 살펴보고 손 볼 곳이 없는지 찾기 시작했다. 아마도 본인이 집에 없을 때를 대비해서 이미 고장 난 곳과 고장이 날 것 같은 곳을 미리 고쳐놓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제일 먼저 신발장을 손보기 시작했다. 이사를 와서 6년 넘게 사용해서인지 문과 선반이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에 있는 망치와 십자드라이버만으로는 이미 내려앉을 때로 내려앉은 신발장의 선반을 원래대로 되돌리기가 힘들어 보였다. 결국 집 근처에 사시는 외삼촌께 전동 드릴을 빌려와서 외삼촌과 함께 신발장 전체를 다 떼어내어 복도에서 다시 조립을 하고 나서야 신발장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었다.

내려앉은 신발장/ 다시 멀쩡해진 신발장

신발장을 다 고치고 나자 이번에는 싱크대가 말썽이었다. 설거지를 할 때마다 물이 내려가기는커녕 자꾸만 역류해서 물이 위로 위로 계속 차올라서 설거지를 몇 번이나 새로 다시 했다. 베이킹 소다와 식초, 과탄산소다, 막힌 싱크대를 뚫어주는 세제를 아무리 들이부어도 싱크대는 단단히 체한 것처럼 뚫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88 서울 올림픽이 개최되던 시기에 지어진 오래된 아파트라 하수관이 안 막히는 게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었다. 결국 남편은 5미터 길이의 스테인리스 줄이 달려있는 싱크대를 뚫을 수 있는 장치를 구입해 여러 번의 물리적, 화학적인 자극을 가해 막힌 싱크대를 뚫을 수 있었다. 약 1개월 만에 싱크대에서 물이 콸콸콸 잘 내려가자 그동안 답답했던 내 마음도 함께 뚫리는 것 같았다.


싱크대를 해결하고 나자 모든 게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주방 후드 또한 "윙윙~~~"거리며 거대한 탱크 소리를 꾸준히 내며 아프다는 존재감을 뿜어냈다. 이쯤 되니 우리 집도 남편이 지방발령이 난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은 눈치였다. 결국 새 후드를 주문해서 깔끔하게 달고나자 집은 다시 예전처럼 아늑하고 편안한 장소로 되돌아갔다.

집 안 곳곳을 찬찬히 둘러보니 우리의 손이 안 간 곳이 거의 없었다.

보일러가 터져서 얼음장처럼 차가웠던 바닥이며 베란다 창틀에서 빗물이 새서 베란다가 물바다가 되어 물건들이 다 물에 젖었던 일. 세월의 흔적으로 더러워진 벽지를 남편과 셀프 도배를 했고 이번에는 신발장, 싱크대, 후드까지 고치고 나자 우리의 손이 지 않은 곳이 거의 없어서인지 집에 더욱 마음이 가고 애착이 생겼다.


집수리를 다 끝내고 나서야 비로소 남편은 한결 마음이 가벼운 표정이었다. 이제는 남편은 지방에서 나와 아이들은 서울에서 적응할 일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나와 아이들도 남편 회사 근처에 집을 구해 같이 살고 싶었지만 남편이 언제까지 지방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르고 큰 아이도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또 낯선 환경에 적응이 조금 느린 아이라 주말부부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동안은 평일에 종종 이틀 정도는 남편이 지방에 출장을 간 적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평일 내내 남편이 지방에만 머물러 있었던 적이 없었기에 앞으로 내가 8살, 5살 아이들을 혼자서 잘 보살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나 또한 시간이 날 때마다 지금은 쓰지 않는 물건들을 나누고 비우면서 아이들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집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했다. 집안일을 할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아이들에게 집중하기 위해서이다. 아빠의 부재로 아이들이 느낄 허전함을 엄마인 내가 채워줘야 했기 때문이다.


주말부부를 한 지 아직 2주도 안되었기 때문에 남편도 나도 아이들도 모두 조금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지방에 있는 남편은 일이 끝나고 숙소에 들어올 때마다 외로움을 느끼고 아이들이 보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 또한 저녁에 아빠와 영상통화를 하다가도 아빠가 보고 싶다며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곤 한다. 나 또한 결혼 전에 느꼈던 외로움과는 다른 차원의 외로움, 고독함, 책임감, 부담감 등을 느끼고 있다. 이번에 주말부부가 되고 나서야 주변에 우리처럼 먼 거리에서 주말부부를 하고 있는 경우가 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경제상황이 좀 나아져야 남편이 서울로 올라올 수 있는 상황이라 언제까지 주말부부를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빠의 부재로 인해 아이들이 정서적인 결핍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해야겠다.

 막상 남편과 먼 거리에 떨어져 있다 보니 평범했던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 우리 앞에 어떤 일상이 펼쳐질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서로 몸이 함께 있지 못해서 늘 아쉬워만 하기보다는 비록 몸은 떨어져 있더라도 마음만은 함께 있기를. 이 힘든 시기를 우리 가족 모두 현명하게 잘 넘겨서 먼 미래에는 그땐 그랬었지... 라며 웃으며 회상할 수 있게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본다.

이전 10화 울상이 아니라 다행이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