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지난달 도장에서 승급심사 예행연습을 하다가 평소와 다르게 엄숙하고 근엄한 분위기에 짓눌렸는지. 아니면 심사를 통과하지 못할까 봐걱정이 되었는지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울면서 엄마를 찾고 있는 아이에게 사범님은
''준혁아, 엄마가 오셔도 이걸 대신해줄 수 없어. 그리고 이건 네가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과정이고 사범님은 네가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해''라고격려해주셨다고 했다.
아이는 전날 연습을 한 덕분인지 다행히 심사 당일에는 덜 긴장했고 심사를 무난하게 통과해서 노란띠를 당당히 선물로 받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전. 아이는 두 번째 승급심사를 보게 되었다.
'아이가 행여나 지난번처럼 심사 도중에 울음을 터뜨리면 어떻게 하나? 심사를 잘 못 보면 아이가 실망을 많이할 텐데...' 하는 걱정이 앞서면서 엄마인 나도 덩달아 긴장이 되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아이는 두 번째 심사여서인지 떨지 않고 잘하고왔다며자신 있게 얘기를 했다.
'잘했는데 울상이라니...'
아직 어려서 관장님의 말씀을 잘 못 알아들은 것 같았다. 아이가 건넨 심사 용지 위에는 영어와 한자가 섞인
All上이라고 쓰여있었다. 아마도 모든 심사항목(All)에서 상(上) 등급을 받은 것 같았다. 영어와 한자의 합성어인 올상을 아마도아이가 울상이라고 알아들은 듯싶었다.
다음날 합기도 사범님께 여쭤보니 모든 항목에서 자세도 좋고 낙법도 잘해서 올상 등급을 받았다고 하셨다. 올상 등급을 받으면 노란띠 다음 단계인 초록띠가 아닌 초록띠 윗단계인 파란띠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해주셨다.
한글을 다 떼지 못하고 학교에 입학해서인지 수업시간에 집중을 잘 못하고 수업을잘 따라가지 못한다는 얘기를 담임선생님께 얼마 전에 들어서 아이도 나도 요즘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합기도에서 생각지도 못한 좋은 결과를 얻으니 아이의 표정이 모처럼 밝아 보였다.
며칠 후 아이가 합기도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 왜 오늘은 합기도 띠를 안 매고 왔지? 도장에 놓고 왔나? '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란 도복에 파란 띠에 파란 운동화까지 신은 아이의 모습은 마치 스머프처럼 보였다. 아이는 파란 띠 속에서 햇살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열심히 노력해서 거둔 첫 결실 속에서 아이는 행복해 보였다. 그런 아이를 보고 있자니 나도덩달아 기분이 좋아져서 오늘은 "송준혁"이 아닌 "송올상"이라고 부르기로 약속했다. ''올상이''라고 불릴 때마다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그 이름으로 불리는 게 싫지 않은 눈치였다. 하루 종일 "올상아~"라고 부르면서 앞으로는 매일매일 새로운 이름으로 불러보자고 아이에게 얘기했다. 동생과 사이좋게 잘 놀면 "송배려", 엄마 심부름을 잘 도와주면 "송효자", 그림을 뚝딱 멋지게 잘 그리면 "송화가" 등 아이에게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다고 예를 들어주었다.
아이도 온종일 "올상이"라고 불려서 기분이 좋았는지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노력해보겠다고 했다. 올상을 받은 기념으로 아이가 평소에 갖고 싶었던 자그마한장난감도 하나 선물해주니아이는 온종일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며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어른인 나조차도 흥미 없는 과목을 배우는 것보다는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과목들을 배울 때 더 재미있고 흥미가 있는데 하물며 아이는 일주일에 단 한 번뿐인 체육시간을 제외하면 한글 공부, 수학등을 배우는 수업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을까? 아이가 힘든 줄 알면서도 학교가 끝나고도 아이의 부족한 한글이나 숫자공부의 공백을 집에서 꾸역꾸역 메꾸려고 애썼던 지난날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면서 아이에게 많이 미안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앞으로는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억지로 보완하려고 애쓰기보다 아이가 잘하고 좋아하는 부분을 극대화시키려고 노력을 해야겠다.
아이가 저번처럼 긴장을 해서 울상을 지을까 봐 걱정이 되었는데 이번에는 올상을 받은 덕분에 환하게 웃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조금은 느릴지라도 아이가 정한 목표를 하나씩 하나씩 달성해나가면서 아이가 소소한 행복과 성취감, 만족감을 꾸준히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