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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무용_ 성인도 할 수 있는 건가요?

어릴 때, 배워야 하는 게 아닐까요?

by 움직이기

네, 물론입니다. 무용을 배우는데 있어서 정해진 시작 나이라든가, 제한 나이라는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누구라도 할 수 있고, 언제라도 시작하고 배울 수 있습니다. 다만, 어릴 때 시작하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좀 더 유리할 수는 있겠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신체를 도구로 삼아 내면에 깃든 정신들을 표현해 내는 무용의 특성상, 신체와 정신이 부드럽고 말랑말랑하게 열린 상태가 이상적이니까요.

어린 아이의 신체는 말랑말랑하고 유연하게 열려 있습니다. 신체 내외부를 명확히 가르는 경계나 막 같은 것이 딱딱하게 자리잡혀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유연하게 열려있어서, 외부와 자연스럽고 조화롭게 하나가 되다보니 잘 다치지도 않습니다. 마치 찰흙처럼 만지는대로 빚어지는 거지요.

정신 또한 자유롭게 열려있어서 몸을 쓰는데 있어 신체의 가동범위나 제한범위, 한계에 대한 개념도 딱히 없습니다. 시도하고 몸을 던지는데 주저함이 없지요. 그러다보니 시간과 경험과 함께 한계지어지고 다소 축소되고 고정되고 딱딱해진 신체와 정신을 갖게 되는 성인보다는 춤추는데 좀 더 수월하고 유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릴 때 시작해야 한다는 법칙이나, 나이가 들어서는 배울 수 없고 잘할 수 없다는 법칙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히려 성인이 되서 시작했기 때문에 내 몸에 대해서, 내 몸의 움직임에 대해서, 내 정신과의 연결성에 대해서 섬세하고 깊게 자각하고 인식하며 성찰하는 부분들이 훨씬 많을 수 있습니다.

어릴 때, 아직 몸과 정신이 온전히 인지되고 발달되지 않은 상태에서 움직임을 수행하면, 수행 자체는 잘할 수 있겠습니다만, 동작 수행에 따르는 전체 과정에 대한 인지가 부족할 수 있습니다.

동작은 잘하는데 자신이 어떻게 잘하고 있는 건지, 왜 잘하게 된 건지 잘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풀어낼 수도 설명할 수도 없지요.

또한 움직임의 의미에 대한 나의 탐구나 동작수행이 나에게 내포하는 의미에 관한 성찰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움직임의 섬세성이 무뎌지고, 깊이감이나 밀도감 없이 움직임이 너무 얕고 가볍게만 표현될 수 있지요.

자각하고 인식하면 움직임에 대한 의미가 탐구됩니다. 좀 더 섬세하고 깊은 차원에서 몸의 움직임과 표현을 바라보게 되지요. 그것이 움직임에 밀도감과 무게감 같은 것을 실어줍니다.

또한 자각하고 인식하기 때문에, 어떤 움직임의 본질적인 원리나 메커니즘을 잘 관찰할 수 있고, 발견하고 이해해서 풀어내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쌓인 것들이 전체로 이어지고 꿰어지는 통찰력도 갖게 되지요.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으로, 다른 세계로 연결되고 확장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집니다.

무용을 시작하는데 있어서 나이가 엄청나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저는 봅니다. 일찍 시작하면 어떤 지점에 좀 더 빨리 다다르고, 어떤 목표를 좀 더 빨리 성취할 수 있겠으며, 어떤 포인트에서 좀 더 일찍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어릴 때, 자신의 열정과 원함이 온전히 탐구되지 않은채로 자의반 타의반 무용을 시작하는 경우도 많고, 그런 경우 어떤 지점까지의 단기적 목표를 이룬 뒤에, 혹은 중간에 그만두는 일이 허다합니다.

실제로 무용을 시작하고 전공하여 30대 40대 50대 60대 끝까지 계속 하는 경우는 정말 드뭅니다. 백 명이 시작하면 일정시간이 흐른 뒤에 한 명만 끝까지 남게 됩니다. 결국 그 끝까지 계속 한 사람이 일찍 시작해서 일찍 찬란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그 사람과는 비교할 나위없이 훨씬 높고 깊은 경지와 수준에 다다르게 되지요.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 조금 더 빠른 시작점이 인생을 뒤집어 놓을만큼 엄청나게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빨리 시작하느냐보다는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갈 수 있느냐의 문제, 내 속의 정열과 의지를 끝까지 끌고나갈 수 있느냐의 문제가 훨씬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이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춤 뿐만 아니라, 삶의 다른 분야와 영역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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