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엔 둔하지만, 생각은 많은 사람
생각이 많고, 예민한 편이지만, 감정과 몸의 감각은 유난히 둔했다.
곤도 마리에는 물건 정리를 할 때, 머리가 아닌 몸의 반응을 느껴보라고 말한다.
‘내 몸은 좀 둔한 편인데…’
어릴 적에 드라마를 보면서 언니하고 엄마가 같이 울었던 날이었다. 그런데 언니는 울지 않는 나를 보고 말했다.
“넌 독한 애야. 찔러도 피도 안 나올 거야.”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그날 이후 나는 ‘울면 안 되는 사람’이 되었다. 슬픈 장면에 눈물이 나오려 하면 눈에 힘을 주고 울음을 꾹 참았다.
초등학교 때, 스케이트를 타다 다리에 금이 가서 병원에 갔던 날,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아이고, 많이 아팠을 텐데, 잘 참았네.”
그 말이 이상하게 기뻤다. 그때부터 장점을 쓰는 칸에는 ‘참을성이 있다.’라고 쓰게 됐다.
그렇게 나는
슬픔도, 아픔도, 잘 참는 아이로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회사 식당에서 먹성 좋은 대리님 앞에 앉아 쌈을 싸 먹는데, 나도 모르게 식탁 밑에서 다리를 신나게 흔들고 있었다.
몸은 솔직했다.
‘나 지금 기분이 좋나 보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여전히 내 몸은 늘 긴장되어 있었다.
가슴에 손을 얹어도, 심장이 뛰는 게 잘 느껴지지 않았다. 허리와 어깨에는 힘이 들어가고, 배는 단단히 굳어 있었다. 나는 그게 복근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느 날 찾아간 한의원 간호사 선생님이 내 배를 보고 말했다.
“편한 걸 모르니까 불편한 줄도 모르죠.”
그렇게 오랜 시간, 나는 ‘편안함’이 어떤 건지 잊고 살았다.
그런 나는 인사이드 아웃의 ‘기쁨이(조이)’를 닮았다는 말을 들었다. 늘 밝고 웃음을 잃지 않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영화를 보며, 나 또한 기쁨이처럼 슬픔을 돌보지 않은 채 살았다는 것을 알았다.
피트 닥터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슬픔을 느끼는 것을 자신에게 허락한다면, 우리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도움을 청하는 법을 몰랐던 건, 내 슬픔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둔한 게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을 느껴서 감각의 문을 스스로 잠가버린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물건을 하나하나 만지며 진짜 ‘정리’를 다시 시작했다.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듯,
내 몸이 다시 반응하기 시작했다.
눈물에도 질량 보존의 법칙이 있을까.
나이 들면 눈물이 많아진다는데,
어쩌면 나는 지금
그때 울지 못했던 몫까지
흘리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 눈물은
내 몸이 다시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신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