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이라는 말이 내 언어사전에 들어오던 날
곤도 마리에의 넷플릭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를 봤을 때, 나는 그저 ‘정리 기술’을 배우는 마음으로 화면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말하는 설렘이란 말을, 그때의 나는 머리로만 이해했다.
‘설렘’이란 단어가 내 언어세계에는 없었다.
‘설레임’이라는 아이스크림 이름은 알았지만, 올바른 표기가 ‘설렘’이라는 것도 몰랐다.
새로운 옷을 입을 때나, 여행을 떠날 때, 오랜만에 친구를 만날 때 느꼈던 그 기분 좋은 느낌은
기대된다.
두근두근.
떨린다.
일본어로는 도키도키, 와쿠와쿠.
이게 전부였다.
그런데 어느 날, 미국에는 ‘설레다’라는 말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곤도 마리에의 책을 번역할 때, 동화작가가 ‘ joy’ 앞에 ‘spark’를 붙여 표현했다고 했다.
‘기쁨에 스파크라니, 너무 귀엽잖아.’
Spark joy.
그 말이 내 마음에 불꽃을 일으켰다.
‘설렘’이라는 한국어보다 먼저, 그 리듬이 내 마음을 두드렸다.
‘언어가 이렇게 생생하게 다가온 건 처음이야.’
영어와 일본어,
그리고 내 국어사전에 ‘설렘’이라는 단어가 추가됐다.
그리고 이제야 보인다.
공항 근처 대형 광고 간판에도, TV속에서도, 일상 대화에서 ‘설렌다’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다.
단어 하나가 세상을 새롭게 비추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언어로 인식한 것에 불과했다.
곤도 마리에가 말한 ‘설렘’을 온전히 이해하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설렘은 말보다 빨랐다.
이미 매일
조용히 느끼고 있던 감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