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시도별로 조금씩 다른 형태지만 2013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2022년 경상남도까지 대구를 제외한 전국 모든 시도의 학교에 학부모회를 설치하도록 하는 조례 제정이 완료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다 학부모회장이 된 전국의 수많은 학부모들에게 위로(?)와 축하를 전하고, 학부모회 운영에 대한 고민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 이 글을 씁니다.
대부분 학부모 총회 당일까지는 잘 모릅니다.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까짓 껏 해보자고 호기롭게 도전한 이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저것 해보겠노라 큰소리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하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한 경우는 상황이 좋은 편입니다.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아이가 학생자치회장이라는 이유로 억지로 끌려 나오듯 학부모회장이 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경우는 단호하게 못한다고 하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학교에 보낸 죄로 마음 약해진 대부분의 학부모는 등 떠밀리듯 학부모회장이 됩니다.
어찌어찌하여 학부모회장에 뽑히고 나면 내가 잠시 미쳤었나 하고 후회가 밀려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못하겠다, 없던 일로 하자고 하기에는 너무 멀리 왔습니다.
법적으로나, 제도적으로 학부모가 학교 교육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 그런데 많은 학부모들이 자신에게 그런 권리가 있는지 잘 모릅니다. 또 맞벌이가 많은 요즘에는 학부모회 임원은 고사하고 학급대표도 선뜻 나서서 하겠다는 학부모가 없습니다.
그래서 학부모회장으로서 역할은 시작부터 무척 바쁩니다. 각종 봉사 활동에 학부모 참여를 독려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위원회는 왜 그렇게 많은지 내용도 모르는데 이름만 올리면 된다, 하는 거 없다는 흔하디 흔한 선생님의 레퍼토리에 속는 셈 치고 참여하게 됩니다.
< 학교에 있는 위원회 현황 >
- 학교교육과정위원회, 교권보호위원회, 교원능력개발평가관리위원회, 학교규정개정심의위원회, 학교평가위원회, 물품선정위원회, 학교폭력전담기구 등
- 학교운영위원회 산하 소위원회: 예결산소위원회, 급식소위원회, 방과후학교(소) 위원회, 교복선정위원회, 졸업앨범제작추진위원회, 체육소위원회, 학교도서관운영위원회 등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위에 언급된 위원회를 보더라도 학교에는 절대로 이름만 올려도 되는 그런 바지사장 같은 위원회 일은 없습니다. 물론 담당 선생님들의 고충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위원회는 구성해야 하는데 하겠다는 학부모가 없으니 이름이라도 올려달라고 읍소를 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그런 고충을 아는 학부모들이니 못하겠다고 거절도 못합니다. 악순환의 반복입니다. 차라리 교육부에서 TV 공중파로 학교에 있는 각종 위원회 좀 참여하라고 방송이라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니면 위원회를 통합해서 몇 개로 줄이던지 말입니다.
물론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법적으로 각종 위원회의 위원 추천을 어떻게 하도록 되어 있는지 학교 규정을 살펴봐야 합니다. 별도의 추천 기준이 없는 경우에는 학부모 총회날 총회자리에 모인 학부모들에게 직접 자원을 받거나, 대의원회 등에서 자원을 받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 나서기 어려운 분위기라면 총회나 대의원회에서 제비 뽑기를 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렇게 하는 곳도 더러 있더라고요.
아무튼 각종 직책을 정신없이 맡고 나누고 나면 진짜 학부모회장 역할이 시작됩니다.
무엇부터 해야 할까? 손에 잡히는 대로, 학교가 요구하는 대로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좀 더 체계적으로 학부모회를 운영하고 싶다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각 시도별로 제정된 학부모회 조례입니다.
포털 검색으로 국가법령정보센터(https://www.law.go.kr/)에 접속한 후 자치법규 코너에 학부모회 조례를 검색하면 각 시도별 학부모회 조례가 나옵니다.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위치한 시도의 조례를 보면 학부모회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대략적인 구조와 방법을 알 수 있습니다.
학부모회 조례를 보고 나면 또 각 학교별로 제정되어 있는 학부모회 규정을 봐야 합니다. 이렇게 조례와 규정을 보아야 정확한 학부모회 운영 절차를 알 수 있습니다. 간혹 작년에 운영한 대로 똑같이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대로 운영하는 경우가 있는데, 조례나 규정대로 하지 않은 사례가 발견되어 민원이 되는 경우도 있으니 꼭 한 번은 살펴보는 게 좋겠습니다.
일단 여기서는 학부모회 조례를 중심으로 학부모회 역할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시도별로 약간씩 다르지만 내용은 거의 비슷합니다.
각 시도별 학부모회 조례에 의하면 학부모회의 기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학교교육 모니터링과 의견제시(강원도와 세종시 조례에는 빠져있습니다)
2. 학교교육 참여지원 활동
3. 학부모 교육 운영 등
첫째, 학교교육 모니터링과 의견제시는 학부모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원봉사와 같은 학교교육 참여지원 활동과 학부모교육은 조례 제정 전에도 운영되었습니다. 하지만 학부모회가 학교 교육 운영에 대하여 전체 학부모들의 의견을 모아 학교에 건의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조례 제정 전에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학교교육 모니터링과 의견제시 항목이 학부모회의 기능에 포함됨으로써 학부모회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학부모회의 제도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학교교육 모니터링을 민감해합니다. 이러한 기능이야말로 학부모회가 교육 주체로서 자기 권리를 행사할 근거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조례제정이 되었다고 학부모회가 곧바로 학교 운영에 대해 전체 학부모의 의견을 모아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학부모회장도 학부모 전체의 의견을 모으고 학교에 전달하는 절차나 방법에 대해 잘 모르고 서툴기 때문입니다. 또 이로 인해 자칫 학교와 갈등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학교 관리자들은 학부모회의 의견 제시 기능에 대해 불편해합니다.
하지만 학부모 입장에서는 개별적인 의견 전달이 아닌 집단적 의견 전달 기구를 가짐으로써 학교 교육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이 분명해진 것이므로 반드시 필요한 기능이라고 생각합니다.
학부모회장은 학교 운영에 대해 학부모 전체에게 의견을 묻고 이를 학교에 전달하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적어도 1년 임기동안 최소 1회 이상 전체 학부모 설문을 통해 학부모들이 학교 교육 운영에 대한 의견을 모아 낼 수 있도록 하는 게 좋겠습니다.
절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정통신문이나 온라인 설문 등을 통해 학교 운영에 대해 궁금한 점이나, 건의사항을 모은 후 학부모회 대의원회 등을 통해 공통된 사항들은 모으고 정리하여 학교장이나 학교운영위원회에 '의견서'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학부모회의 의견에 대하여 학교는 각각의 항목을 살피고 수용, 불수용, 보류 등 학교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나눠 답변할 수 있습니다. 학부모회가 의견을 냈다고 학교가 무조건 수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법적 문제라던지, 예산문제라던지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여 수용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면 됩니다.
학교 측에서 답변이 오면 학부모회장은 이를 전체 학부모들에게 가정통신문으로 안내하여 학부모들의 궁금증과 애로사항 등을 해소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면 어려운 절차는 아닙니다. 학교와 학부모회가 소통할 때 이런 활동이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소통은 처음이 어렵지, 한번 이뤄지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문화가 됩니다.
물론 학부모회장이나 임원 한 두 명이 교장선생님을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문제 해결을 도모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방법은 말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오해가 생길 수도 있는 만큼 가급적 공식적인 의견서 교환 또는 대의원회 정담회 등을 통해 소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학교교육 참여 지원 활동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가장 활발한 학부모회 활동 중 하나입니다.
학교교육 참여 지원 활동은 가장 잘 알려진 녹색 교통 봉사를 비롯하여 학부모 폴리스, 명예사서, 체험활동 보조, 체육대회 지원, 시험감독 지원 등 학부모회가학교 교육에 필요한 다양한 자원봉사와 각종 행사 참여, 교육 보조참여 등이 있습니다. 이 밖에도 아버지 캠프, 재능기부 등도 많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학부모회장들이 행사나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 게 학부모회를 잘 운영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부모회 활동의 기본은 교육주체로서 학부모가 학교 교육 운영에 학부모 전체와 소통하고 의견을 내어 학교 교육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학교 교육 참여 지원 활동은 학부모와 학교 간의 원활한 소통과 참여를 기본으로 하고 좀 더 지원이 필요한 경우에 필요한 만큼 하면 됩니다. 지나친 학교 참여 지원 활동은 학부모들의 피로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학교도 불편하게 할 수 있습니다. 적절한 수준에서 활동이 이루어지도록 조절이 필요합니다.
셋째, 학부모교육 운영입니다.
학부모교육 운영은 가장 쉬운 활동처럼 보이지만 제대로 하자고 하면 만만치 않은 활동입니다.
일반적으로 '자녀와의 대화법', '사춘기 성교육' 등 학부모 관심주제로 학부모 교육을 합니다. 때로는 학습지도나 교육정책 등에 관한 교육을 하기도 합니다. 학부모들의 관심 사항이니 무엇을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학부모교육은 자칫 잘못하면 교육의 효과는 없고 활동을 위한 활동이 될 수 있으니 주제나 강사 선정 시 주의해야 합니다. 특히 세대별로 관심사가 다르다 보니 학부모들의 수요에 맞는 학부모교육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학부모교육 수요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수요조사는 별도로 실시해도 되지만, 앞서 학교교육 모니터링을 위한 설문을 진행할 때 함께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입니다.
또한 참여 학부모들의 상황에 맞게 학부모교육을 학교에서 진행할지, 온라인으로 진행할지도 검토해야 합니다. 체험이나 실습 등 소규모로 진행하는 교육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다수 학부모의 관심사인 경우에는 온라인으로 운영하고, 시간대도 맞벌이 학부모를 배려하여 저녁시간대에 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학부모교육을 하고 싶어도 주제에 맞는 강사를 적절하게 섭외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이럴 경우 뒤에 설명하겠지만 교육지원청이나 교육부에서 운영하는 학부모지원센터에 문의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학부모회 활동을 하려면 알아야 할 것과 고려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처음 학부모회장을 하는 사람은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도 처음부터 잘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할 수 있는 만큼 하나씩이라도 한다라는 생각으로 하면 됩니다.
활동이 많이 없다고 태클 거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가장 무서운 건 학부모회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학부모회가 활동하는 모든 사항들을 가급적 학교 홈페이지나, 가정통신문. 네이버밴드나 단톡방,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 널리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적어도 학부모회 활동이 '치맛바람'으로 오해받는 상황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활동 홍보에 적극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튼 학부모회장이 된 이상 어떻게든 꾸려가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알고자 하고 해 보고자 시도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거나, 내가 하는 활동이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일단전임 회장에게 물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전임 회장도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니 가장 현실적인 답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전임 회장이 졸업해서 물어볼 수가 없다면 학부모회를 했던 다른 임원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그런 상황도 되지 않는다면 학부모회를 담당하고 있는 담당선생님께 물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런데 담당선생님도 처음 맡는 분이라면 난감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포기하기는 이릅니다. 이런 어려움에 대해 교육부와 각 시도교육청은 일찌감치 학부모지원센터라는 기구를 만들어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학부모회 운영에 대해 모르는 게 있으면 걱정 말고 학부모지원센터에 전화하면 됩니다. 시도별로 이름이 조금씩 다르니 정확한 검색이 안될 때는 전국학부모지원센터 홈페이지 학부모 온누리(http://www.parents.go.kr)에 접속하면 하단 배너 아래 패밀리사이트 목록에 시도 학부모지원센터 홈페이지 주소가 링크되어 있습니다. 각 시도교육청에는 시군구별로 학부모지원센터를 운영하는 곳도 있으니 가까운 시군구 센터의 도움을 받으면 됩니다.
지금까지 학부모회 운영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학부모회장들에게 학부모회 운영 방법을 짧게 소개해 보았습니다. 짧은 글 속에 내용과 사례를 많이 담지 못했기 때문에 학부모회장 입장에선 어렵게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학부모회는 이해한 만큼,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것을 하기보다는 하나라도 제대로 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경험을 다음 학부모회장에게 잘 전달해 더 잘할 수 있도록 기록을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의 배움에 함께 협력하기 위해 어떻게 학부모회를 운영해야 할지 그 방법을 찾고 노력한 활동들이 다음 연도에도 계속 이어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