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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연 Aug 01. 2021

지극히 서적인 다큐

언니의 매력

  언니의 매력


얼마 전에 정년퇴직을 한 언니와 점심을 먹었다.

그녀의 근황이 궁금하기도 하고 종종 함께 먹었던 미역국이 먹고 싶기도 했기 때문이다.

"언니 이렇게 입고 나오니까 멋쟁이네요."

얇은 청색 천으로 된 바지와 셔츠에 햇빛을 가릴 수 있는 창 모자를 쓴 언니는 예뻤다.

60이 넘은 언니지만 예쁘다는 생각을 회사 다닐 때부터 했다.

나이 듦에 따라 생기는 주름보다는 소녀처럼 잘 웃고 이야기도 잘하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는 그녀의 예쁜 행동들이 더 눈에 띄게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언니는 모든 사람들이 좋아했다.

동료들은 물론이고 관리자들도 좋아했다.

조직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열 명의 친구를 두는 것보다 한 명의 적을 두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그 정도로 원만한 대인관계가 나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회사에서 종종 경험하는 일이 있다.

똑같은 일을 두고도 나와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비난하면서 친한 사람에게는 후하게 평가하거나 좋게 말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언니가 가진 최대의 장점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성실하고 일도 잘하고 동료를 잘 챙겨주는 것 외에 무엇이 있을까?

그중에서 가장 탁월한 언니의 장점을 최근에 알아낼 수 있었다.

이것을 알게 된 것은  '어쩌다 어른'이라는 티브이 프로에서  '어쩌면 우리가 거꾸로 해왔던 것들'의 저자  김경일 교수의 강연을 듣고 나서였다.

나는 지금까지 여자가 남자보다 말을 많이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자가 여자보다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단 남자는 목적이 있을 때 말을 많이 하고 여자는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심리학 교수는 목적이 없는데도 아무 말이나 많이 해야 친밀감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인간은 용건이 없는데도,  목표가 없는데도 말을 걸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한다.

언니의 최대의 장점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언니는 타인과 말하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아저씨와 싸웠던 이야기부터 오늘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까지 재미있게 이야기했다. 우리 회사 동료는 물론이고 다른 회사 사람들과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재미있고 실감 나게 했다. 그래서 언니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모든 사람의 인생은 한 권의 소설책이라는 말이 있듯이 언니의 인생도 그러했다. 언니와 함께 있으면 심심할 틈이 없었다.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웃고 동조하고 같이 욕하기도 하면서 한 편이 되는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어느 누구와도 소통을 열심히 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언니의 탁월한 능력이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결론을 내렸다. 


"아저씨랑 여행 갔다가 그저께 왔어."

아저씨랑 여행 갔었던 이야기를 신나게 풀어놓는 언니를 보니 안심이 되었다.

한창 일할 수 있는 나이인데도 정년이라는 이름으로 일을 그만두어야 했기 때문에 내심 걱정을 했다.

갑자기 늘어 난 많은 시간들로 인해 무료해하거나 우울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시키든지 간에 아무 말 없이 그 일을 해 냈고 주위 동료들에게 하루도 빠짐없이 커피를 챙겨 주는 정 많은 언니였다. 3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해서인지 어떤 일에 대해 조언을 구하면 가장 현실적이면서 도움이 되는 말을 해 주곤 했다.

"노인 요양보호사 자격증 따려고 신청했는데  그거 딸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밀려서 언제 내 차례가 올 지 모르겠다."

"앞으로  노인과 관련된 일자리가 늘어날 거라더니......."

"지금은 코로나도 유행하고 하니 집에서 쉬다가 이것저것 알아봐야지."

웬만한 40대보다 건강하고 힘도 센 언니가 앞으로 살아갈 날이 적어도 30년은 될 것이다.

언니 남편 되시는 분은 공직에서 일하다가 언니와 비슷한 시기에 정년퇴직을 했고  언니도 30년 넘게 직장생활을 했기 때문에 노후자금은 충분하다고 한다.

"아저씨랑 손 잡고 여행 다니면서 살아가요.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까."

"아저씨도 그러자고 하는데 내 성격에 매일 놀면서 그렇게 못살지 싶다. 밖에 나가서 일해야 덜 늙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언니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언니 커피숍 가서 이야기해요."

커피숍에서 언니 이야기를 듣다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언니 담에 또 만나서 이야기해요."

다음에는 시간을 좀 더 많이 가지고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는 언니의 어떤 이야기보따리가 풀어질까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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