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지난 20대를 돌이켜보면, 수많은 감정과 별거 아닐지 모르는 사소함 속에서도 혼란스럽고 복잡한 순간들이 많았다. 따지고 보면 별거 아닌데 말이다. 돌이켜보니 작게 보일 수도, 지나온 내가 성장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리며 요동치듯 버티고 견디던 순간들이 마냥 우습지만은 않다.
그 순간의 내가 할 수 있는 고민들이 있다. 이를테면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친구가 내 전부인 것만 같다. 매일을 학교에서 보는 친구들의 한 마디, 밥 한번 먹으러 가는데 나를 빼놓고 가는 일 조차 그때의 나에게는 세상이 무너질 것만 같은 큰일이다.
20대는 어땠을까?
미래를 열심히 그리며 이젠 무언가의 성취감을 맛보아야 할 때지 않나 싶지만, 생각하지 못했던 대학교라는 자유함 속에서 열심히 놀기도 하고, 겪어보지 못한 일들을 ‘성인’이 되었다는 이유로 누리며 살았다. 대학교 과정까지 마치는 23살이 되면, 그 이후 세상에 무책임하게 내던져진다.
진짜 ‘성인’은 그때부터 시작인 것이다.
첫 직장을 다니며, 세상의 쓴맛은 이런 것이구나를 깨닫게 된다. 매일을 출퇴근하며 자식들까지 키워주신 부모님의 노고에 감사해하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아는 여전히 연약하고 미성숙해서 내면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감사해할 부모님에게는 여전히 틱틱거린다. 세상은 나에게 온갖 시련을 다 가져다주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밥벌이는 해야 하지 않겠냐라며, 돈을 벌기도 하고, 쉽게 직장을 때려치우기도 한다. 다시 새 직장을 구하기 전엔 열심히 여행도 다녀보고, 힐링이라는 이유로 집안에 처박혀 부모님이 주는 쉬운 밥상을 차려먹으며 남몰래 눈물을 훔친다.
왜 나는 여전히 어른스럽지 못한가. 내면도, 외적인 환경도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에서 여전히 ‘성인’이라는 굴레에 쌓여 나를 이리저리 굴려댄다. 결국 남는 것은 성취감보단 앞으로 80-90년은 더 살아야 한다는 막막함과, 답답함. 이렇게 평생을 노예처럼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드는 억울함이다.
한편, 이 복잡한 세상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살아내겠다는 마음은 놓치지 않는다. 죽지 않고 오늘 살아서 내일을 준비한다. 이제 더는 친구들의 말 한마디에 흔들리지 않는다. 나를 빼고 밥을 먹고 가도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러 갈 수 있어 좋다.
서른이 넘은 나이가 되면 슬슬 부모님의 곁을 떠날 준비를 한다. 혼자 독립을 해서 나만의 공간을 갖고, 나만의 집에서 눈치 없이 라면을 끓여먹는다. 따뜻한 밥보다 차라리 내가 번 돈으로 없이 살아도 내 밥벌이 해내는 스스로를 나름 대견해한다.
내면은 어떠한가.
회사에서 일어난 하나의 실수에 일희일비하고 울고 웃던 순간은 이제 없다. 실수하면 그저 수습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잘못을 시인하고, 그 이후의 일 처리까지 대비한다. 그리곤 죄송하다 한마디 한다. 퇴근 후에는 맛있는 맥주 한 캔을 따서 시원하게 마시고, 재미있는 예능을 보며 웃어넘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때의 고민이 있다. 그리곤 30대가 되어 또 다른 고민을 한다. 이를테면 결혼이라든가, 아이를 갖는 것, 혹은 홀로 살아야 하는 대비라든가. 나이가 들어 건강이 좋지 않고, 자주 아프다든가 하는.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런 것 같다.
한고비 넘어서면, 또 다른 한고비가 있다. 한고비 넘어선 것 같다가도 갑작스럽게 생각지 못한 폭풍우가 휩싸이기도 한다. 그럼 정말 무기력하다. 특히 내가 죽어라 노력한 순간에 자연재해처럼 몰아치는 어이없고도 재수 없는 재난 같은 일들 말이다.
반면 생각하지 못하게 생기는 좋은 일도 있다. 아주 가끔이지만.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다 아는 척할 뿐이고, 아는 것마냥 살아갈 따름이다. 여전히 어리고, 미성숙하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나는 지난 20대의 내 고민들을 가감 없이 정리해 보려 한다.
왜 이렇게 힘들었을까. 그때는 분명히 되게 힘들었는데.
그때는 정말 힘들어서, 매일 천국에 가고 싶다 생각했는데(대충 죽고싶었던 순간이 많았다는 말이다)
정답은 알고 있어도, 본인이 와닿지 않으면 그만이다.
본인이 와닿을 때까지 직접 부딪혀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
나이 든 어른들의 말이 내게 크게 와닿지 않는 이유와 똑같을 것이다.
고작 20대를 지나 30대 중반에 가까워지는 나이가 되었지만,
폭풍 같고 지독히도 어두운 것만 같던 지난 20대를 버텨낸 내 스스로가 기특해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별것처럼 기록해 볼 테다.
20대의 내가 아니라, 20대를 지나온 나의 생존기 같은 글 말이다.
어쩌면 지금도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한 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된다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