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잃게 될까 봐 불안했고, 결국 잃었지
누구나 자신의 불행을 상상하면서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믿으며 살아간다.
나는 그가 너무 좋았다.
스무 살이 아니라 서른쯤에 만났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곧바로 결혼했을 텐데. 스무 살은 너무 어렸다. 졸업과 취직, 군대까지, 우리가 무언가를 책임질 능력을 갖추기 전에 헤어질 것이라고 예상하긴 쉬웠다. 그 쉬운 길을 놔두고, 우리는 연애 십 년 만에 마침내 결혼했다. 우리가 함께 하면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서로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였다. 그의 다정함과 섬세한 배려심은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고, 나는 그게 좋았다.
나는 그가 너무 좋아서,
그래서 그를 잃을까 봐 무서웠다.
연애 초기, 친구들과 한창 술을 마시던 중에 그가 나를 집에 데려다주었는데 같이 술자리에 있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가 돌아오지 않았으며 연락이 안 된다고 했다. 친구들은 술을 마시다 말고 그를 찾아 우리 동네까지 왔다. 마침내 그를 찾은 곳은 동아리방이었다. 그는 난로까지 끌어다 놓고 천진하게 잠들어 있었다.
군대를 갔다 온 그는 복학을 미루고 한동안 공장에서 일을 했다. 2교대로 고되게 근무하다가 다니던 공장을 때려치우고 군대 동기의 추천으로 어떤 회사를 가게 되었다. 공장보다 낫겠다 싶었는데 나는 왠지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입사 첫날, 그는 꽤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다. 가까스로 통화가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이 노래방이라며 전화를 끊자고 말했다. 전화를 끊겠다고? 그는 노래방이라면 질색하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노래방에 가는 상황이 생기면 일부러 밖에 나와서 나에게 전화를 걸곤 하던 사람이, 노래방이라며 전화를 끊자니… 나는 초조하게 그의 전화를 기다렸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연락이 닿았다. 다단계였다. 그는 계속 빠져나오려 했지만 회사 측에서 집요하게 사람이 붙어 노래방까지 끌려갔다고 했다. 그래도 눈치챈 시점이 빠른 편이라 다행이었다. 어쨌거나 빠져나왔으니까.
결혼얘기가 나오면서 친정아빠는 그 사람과 단둘이 술자리를 갖고 싶어 했다. 그는 미련하게도 빼지 않고 친정아빠의 속도에 맞춰 술을 마셨다. 그러곤 집에 가는 길에 연락이 끊겼다. 십오 분이면 충분히 집에 도착했을 거리였는데 삼십 분이 넘도록 연락이 안 됐다. 잘 도착해서 자고 있겠거니 했는데 그의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가 아직 귀가하지 않았다고 했다. 멀리서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아찔한 생각이 들어 숨을 들이켰다.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하던 차에 그로부터 전화가 왔다. 술에 취해 인도에 쭈그려 앉아 깜박 잠이 들었단다. 이십 분인지 삼십 분 정도 졸다가 집에 간 모양이었다.
어느 날은 술집에 휴대전화를 놔둔 채로 주변사람들에게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사라졌다. 같이 술 마시던 사람들이 동네방네를 찾아 헤매다 이제쯤 실종신고를 해야 하나 고민할 때쯤 그가 집에 돌아왔다. 술을 깰 겸 한 시간 거리를 걸어왔다고 했다.
나는 당신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차츰 적응하기 시작했다. 가끔 전화를 안 받을 때면 여전히 걱정되고 답답했지만, 그래도 끝내 그가 안전하게 돌아올 것이라는 걸 믿게 되었다.
어쨌든 이 사람은 술을 많이 마셔도 안전한 데로 기어들어가긴 해. 잠깐 연락이 안 되더라도 항상 내 곁에 돌아왔지. 내가 걱정하는 진짜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지도 몰라. 다 웃기고 귀여운 에피소드들이잖아.
그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 사건이 일어났다.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났다.
앞으로도 그런 불행이 있을 수 있을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방금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났으니까 분명하다.
나는 그런 것들을 모두 이겨낼 만큼 강한 사람이 못 되는데 정말 큰일이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꾸준히 시간이 지났다.
아직까지 그를 잃은 것보다 더한 불행은 없었는데도, 나는 시시때때로 아플 만큼 고뇌하고 치열하게 걱정했다. 사람은 특별한 불행이 없어도 불행하고, 특별히 행복하지 않아도 웃을 수 있었다.
사는 건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