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같은 걸 잃고 다르게 슬펐다
남편을 잃고 난 뒤 어느 날, 시어머니와 통화 중에 어머니가 그랬다.
너는 언젠가 그 애를 잊겠지만 나는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갈 거라고. 나는 그 말이 야속했다. 아버님과 금슬이 안 좋던 어머니가 심장을 다져 짓이기는 이 고통을 어떻게 짐작하겠느냐고, 속으로 원망했다.
그 원망은 적절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또 어떻게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고통을 짐작했겠는가. 참척의 마음을, 어찌 감히.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은 우리들은 어쩌면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서로를 맹렬하게 할퀴었고
그건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남편이 죽기 전까지 수년간의 결혼 생활을 하는 동안 어머니와 나는 팽팽한 줄 위에 서 있었다. 누구 하나 양보는 없었다.
어머니는 철저하게 당신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었고, 본인의 가치관만을 옳다고 믿었다. 자신의 말이 관철되지 않는 걸 못 견뎌했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도 있다는 걸 괘념치 않았다. 투박한 본인의 말들이 솔직한 성격 탓이라 생각하셨는데 그 말들은 때론 솔직함이었겠지만 대부분 무례함이어서 나를 상처 입혔다. 어머니는 나를 무시했고, 그리고 내가 당신을 무시한다고 느끼셨던 것 같다. 그 사이에서 남편은 어리둥절했다. 그에겐 어머니도 아내도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둘이 고부가 아니라 모녀처럼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단순히 좋은 사람 둘이 만난다고 둘이 사이좋게 지낼 수 없다는 걸 알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몇 번인가 시어머니 때문에 남편이랑 싸웠을 때 나는 남편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어머니를 이해는 못해도 존경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없는 말을 지은 것은 아니었다. 존경보단 존중에 가까웠지만. 고단했을 삶을 우직하게 견뎌 자식들을 착하고 좋은 사람들로 길러내신 것을 대단히 여기긴 했다. 남편은 '이해 못 한다'는 말에는 시무룩했지만 '존경한다'는 말에 위안을 받는 듯했다. 자신의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자식이 있을까, 누구든 자신의 근본을 사랑하지 않을 순 없으니까. 나의 존경은, 나에겐 억척스러운 시어머니이더라도 그에겐 희생적인 엄마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말이었다. 내가 어머니의 방식을 싫어하더라도 어머니를 존경하고 있다는 것이 그 남자를 안심하게 했다. 그건 별건 아니지만 그와 나 사이의 어떤 선을 지키는 일이었다.
어찌 됐든 그 남자는 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나 때문에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맞섰고, 어머니는 연을 끊자 하고서도 아들을 이길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그것은 양보가 아니라 포기였다. 그래서 잘 알았다. 그 시어머니를 자식 잃은 어미로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견딜 수 없는 어떤 구멍에 발을 디딜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직감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남편을 잃은 젊은 과부 따위는, 자식 잃은 어미에게 반드시 질 것이라는 것을. 이건 단순히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라, 생존의 영역이었다. 나는 죽고 싶지만 살아야 했다. 무너지지 않은 채로.
사별 이후 힘든 것 중에 하나는 시댁과의 관계였다. 정확히 말하면 시어머니였다. 두려웠다. 남편이 있었을 때도 감당하기 어려웠던 어머니의 고집과 간섭을 남편 없이 견딜 자신이 없었다. 예상대로 어머니는 내가 아이를 키우는 방식에 참견하려 했다. 당신의 말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반복하며 사람을 지치게 하던 그 익숙한 태도는 어김없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나는 그 사소하지만 집요한 간섭이 남편이 없는 공간을 채울 거란 걸 직감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선을 그었다.
어머니는 만날 때마다 아이를 키워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게 대단한 인사인 듯 말했으나, 나는 그 말조차도 '어머니 손주'를 나에게 맡겨놓은 것처럼 들려 듣기 싫었다. 남편을 잃자마자 너는 재혼할지도 모르니 아이 몫의 돈을 자기에게 달라했던 어머니여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결국 남편의 사망으로 나온 보상금의 상당 부분을 어머니한테 드렸다. 젖먹이 아이를 키우려면 한 푼이 아쉽겠지만 어머니에게도 무언가 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머니를 미워하고 연민했다.
아이가 있으므로 나는 마지못해 어머니와 주기적인 만남을 가진다.
붙임성이 좋고 애교도 많은 아이를 본 어머니는, 오랜만에 만나도 핏줄을 알아봐서 낯가림이 없다고 좋아했다. 나는 속으로 구시렁댔다. 얘는 원래 저렇게 사람을 잘 따르고 좋아하거든요.
어머니는 내 아이에게서 남편을 보고 싶어 했다. 그건 당연했다. 남편 잃은 내가 아이를 키우며 살 힘을 얻은 것처럼 어머니도 그러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어머니의 집착 어린 애정이 부담스러웠다. 나는 내 아이를 그 사람의 자식으로 키우고 싶었다. 그 사람 대신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 속도 모르고 예쁜 짓 잔뜩 하고 온 아이에게 괜히 삐죽 대며 물었다. "너는 저 할머니가 좋으니? 몇 번 만났다고 그렇게 좋으니?" 그러자 아이가 말했다. "나를 예뻐하잖아..."
이 아이는 나보다 낫다.
나는 이제 와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화해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시어머니의 삶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려는 것뿐이다. 어떤 피해의식 없이, 당신이 정말 소중한 자식을 잃은 어머니라는 것을 인정하려 노력하는 것. 그것은 이기적인 나를 용서하는 과정이기도 하다.